1.
어렸을 적에 선생님은 오줌도 똥도 안 싸고 사시는 분으로 알았습니다. 선생님은 누구도 감히 범할 수 없는 분이셨지요. 제 아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아들 녀석이 중 2학년 때 학교 선생님 인솔로 청도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밤에 선생님 한 분이 그러더래요.
"너희들 절대로 선생님들 방엔 접근하지 마라이?"
"넵!"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급우 한 명이 밤중에 심한 배앓이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 아들 녀석이 선생님께 말씀드리려고 선생님들 숙소에 가게 되었답니다.
문 앞에서 노크하려던 아들이 다음과 같은 말을 엿듣게 되었대요.
"에이, 씨발. 똥이네."
"에이, 씨발. 뻑이네."
아들은 방을 잘못 찾아왔나 싶어 다시 확인했지만 선생님들 방이 맞더랍니다. 선생님들이 그 정도로 욕할 줄을 몰랐다고 하더군요. 그래 제가 당시 들려준 말이 있습니다.
"선생님도 된똥을 쌀 때가 있고 물똥을 쌀 때가 있느니라!"
2.
10년은 지나고 15년은 안됐을 겁니다. 인천문협 송년회에서 경험한 일입니다. 주안1동 교보생명 건물 뒷편 해물탕 집에서 송년의 밤 행사가 있었습니다. 그 날도 늦게 도착하여 여성 문인들 자리에 '꼽사리' 끼어 앉았습니다. '꽃밭'에 앉은 셈이지요. 당시 메뉴가 해물탕으로 산낙지가 핵심이었습니다. 주인이 꿈틀거리는 낙지를 냄비 속에 넣고 버너 불을 켜자, 잠시 후 낙지가 온 몸을 비틀어대는 거였습니다. 유리 뚜껑 아래에서 처절한 몸부림으로 죽어가고 있었지요. 훤히 보였어요. 그런데 좌중의 반응이 뜻밖이었습니다. 여성들이 한 마디씩 내뱉는 것입니다.
"호호, 낙지가 아주 발악을 하네."
"지금쯤 몹시 뜨거울거야."
"맞아. 호호호..."
"낄낄낄..."
순간 저는 혼란에 빠졌습니다. 소위 글을 쓰는 사람들이, 시를, 소설을, 수필을 쓴다는 시인, 소설가, 수필가들이 죽어가는 한 생명 앞에서 그 정도 반응 밖엔 취할 수 없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 그 일을 기억하고 있다가 오늘 이곳에 옮깁니다.
혹자는 말할 지 모릅니다.
"네가 그리 대단해? 그럼 너 혼자 다 해먹어!"
문제는요. 정말 혼자 세상 일을 다 해치워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법도 제 마음대로 정해 죽어가는 산낙지 앞에서 숙연해질 수 있는 조항을 만들고 싶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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