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벌초

펜과잉크 2008. 8. 31. 15:57

 

 

 

 

 

추석을 앞두고 조상님들 산소 벌초하기에 바쁩니다. 저희 고향에도 많은 '벌초꾼'이 다녀갔답니다. 저희집은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만 있어 아버지 혼자 하십니다. 윗대 조상님들 산소는 청양군 대치면에 있으므로 따로 모여 벌초합니다. 벌초도 큰 행사입니다. 집안 어른이 지정해주신 날짜에 모두 모이니까요. 

 

큰아버지 산소와 작은아버지 산소는 청양군 대치면 선산에 모셔졌습니다. 큰집 사촌동생과 작은집 사촌동생은 각기 두 분 산소만 다녀갈 뿐입니다.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는 언제나 아버지 몫입니다.

 

어려서 할머니는 큰집 사촌동생(장손)과 작은집 사촌동생을 뉘어놓고 '금붕어가 논다. 은붕어가 논다 ♬~' 하시며 좋아하셨답니다. 제가 봐도 큰집 사촌동생은 어려서 땅에 발이 닿지 않을 정도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아우 위로 딸만 넷이었거든요. 작은집도 큰집과 함께 살았는데 -큰집 규모가 상당했어요- 거기 두 사촌아우도 할머니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다시피 했습니다. 저는 제일 큰손자였지만 바른소리 잘하시는 어머니 때문에 큰집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제 아우들은 아예 열외였구요.

 

오늘날 큰집 사촌아우와 작은집 사촌아우들은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벌초엔 나타나지도 않습니다. 수 십 년 째 오직 아버지께서 도맡아 하십니다. 제가 연락을 드리면 아버지께서 식전에 오토바이 타고 가셔서 후딱 하셨다 하십니다. 매년 그런 식으로 진행됐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대규모 벌초가 이루어지는 청양군 대치면쪽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글이 빗나갑니다만 어느 집안이든 둘째의 성품이 제일 원만한 것 같아요. 아버지도 사형제 중 둘째이신데 성품 좋으시기가 면내에 파다합니다. 유지로 알려진 게 아니고 성품 좋으시기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봐도 법 없이 사실 분이십니다. 남에게 싫은소리 한 번 안 하세요. 남 헐뜯는 말씀도 안 하십니다. 반면 아버지는 둘째로 자라시며 많은 불이익-어머니 말씀에 의함-을 당하셨습니다. 사실 작은아버지 두 분은 젊어서부터 큰집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곡물장사와 대형 잡화점으로 안정된 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직계 조상님 산소를 돌보고 집안의 대소지사를 도맡아 하시는 분은 아버지뿐입니다. 온갖 귀여움 받고 자란 큰집 사촌아우와 작은집 사촌아우들은 각기 청양군 대치면 선산의 큰아버지 산소와 작은아버지 산소만 달랑 벌초하고 갑니다. 

 

둘째의 성품이 제일 낫더군요. 저희 형제들 중에서도 제 아래 아우가 가장 원만한 성격을 지녔습니다. 성격이 원만하니 사회생활도 잘 합니다. 어려서 제 헌옷과 헌책만 대물림 받던 아우가 오늘날 제일 낫습니다.

 

제목을 '벌초'라고 했으나 이런저런 단상들이 끝없네요. 내년부턴 사촌들에게 연락하여 고향 벌초까지 겸하려 합니다. 벌초 가서 '왕탱이'* 벌이나 쐐기 쏘이는 일 없도록 각별히 조심하세요. 뱀 조심은 말할 것도 없구요.

 

 

 

 

* : '왕벌'의 충청 내룩 일원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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