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스크랩] 어느 시인의 아날로그적 일상과 고향생각 - 등나무집 우체통

펜과잉크 2008. 9. 29. 17:47

 

등나무집 우체통
카테고리 시/에세이/기행
지은이 류종호 (학산문학사, 2008년)
상세보기

 

 지난 주 내가 활동하고 있는 인터넷 카페 "오프로드캠핑"의 자유게시판에 글이 올라왔다. 최근 가입한 한 회원이 자신의 책 출간을 알리는 소식이었다. 그의 닉네임은 '류삿갓'. 유명작가가 아닌지라 간략한 프로필만으론 그가 누구인지 알기 어려웠고 트럼펫 연주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 등을 통해 캠핑과 음악을 좋아하는 사십대 후반의 문학가 정도로 파악되었다. 수필의 경우 유명작가나 그 해의 베스트셀러로 소문나지 않으면 잘 읽지 않는 터였지만 같은 관심사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도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 동호인간의 끈끈함은 분명 실체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부쳐 줄 책을 사러 서점에 들렀다가 에세이 코너를 찾았다. 작가의 이름을 'ㄱ,ㄴ,ㄷ...' 순으로 정리해 놓았는데 'ㄹ'란에서 이 책을 찾았다. "등나무집 우체통". 무척 서정적인 제목의 수필집이란 생각을 했다.

 

 작가의 고향은 충남 부여의 농촌이라고 한다. '둔터골'로 시작되는 그의 고향 이야기는 책을 읽는 내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짤막짤막한 글들은 하루를 보내고 늦은 밤 컴퓨터 앞에 앉아 자신의 블로그에 일기를 쓰거나 인터넷 카페에 게시글을 올리듯 써놓아 친근하다. 다른 소재의 이야기가 나오다가도 불쑥 그의 고향 이야기가 이어지곤 한다. 어찌보면 고향 이야기만 계속하면 지루하고 재미없을까봐 중간에 다른 이야기를 끼워놓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고향 이야기는 풍성하고 정겨운데다 놀랍게도 또렷하여 기사를 보는 듯하기도 하며 때론 멀리서 들리는 섹소폰 소리처럼 아련하고 감동적이기도 하다.

 

 군 시절이었다. 지방 그것도 시골 출신 병사들과 야간근무를 서게되면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그 사람의 고향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교대시간이 되곤 했던 것이다. 서울에서 자란 나에겐 그들과 같은 고향의 추억이 없다. 기껏 도시 변두리 뒷골목의 기억 정도.. 그때 나는 고향을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한 사람의 정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얼마나 커다란 자산인지 알게 되었다. 추석이 되면 둥근 보름달 아래 보초를 서며 고향생각에 눈물을 떨구는 덩치 큰 후임병이 부러웠다. 부모님의 힘겨운 서울살이에 여러 차례 이사를 다녀 서울에서조차 고향을 찾을 수 없었던 내 입장에선 더욱 그랬다.

 

류종호 작가의 수필집, '등나무집 우체통'을 한 마디로 소개한다면 "고향생각"이다. 발문을 써 주신 모 회장님이 "思鄕曲"이라고 표현해 주셨는데 적합한 말이다. 어찌나 고향 이야기를 소상하게 풀어놓는지 내가 그 고향사람이 다 된 느낌이 들 정도다. 세세한 지형과 지명 소개에다 실명으로 생각되는 고향 사람들의 모습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사실적이다. 작가의 성품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리라. 글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모습은 다부진 인상에 낮은 음색에 또박또박한 말씨를 가졌을 듯싶다.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엔 결코 무릎 꿇거나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성격이지만 곡차 들어가면 문학과 음악으로 밤 새울 것같은 낭만의 소유자. 충남 사투리속에 간간이 드러나는 그의 능청스러움은 즐거운 발견이다. 정상의 코메디언 중 충청도 사람이 많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

 

 캠핑이라는 공통분모가 책을 읽게 했는데 예상대로 텐트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하나 배운 것은 모닥불을 지필때 돌을 좀 달구어 놓았다가 밤에 잘 때 텐트 바닥에 옮겨 놓으면 동절기 난방에 좋다는 것이다. 조만간 야영을 하면서 활용해 볼 생각이다. 또 하나 뽕나무 열매인 '오디'를 보드카에 60일간 담가 '오디주'를 만들어 마시면 관절염에 좋고 흰머리가 검게 된다는 것도 관심가는 이야기다. 강원도 전방 근무생활, 철모, 판초우의 등으로 이어지는 국방색 소재는 대한민국 남성 독자의 군생활에 얽힌 추억을 떠올리기에 충분하고, 섹소폰이나 트럼펫 등 악기와 음악에 대한 소재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남성들에게 호기심을 이끄는 소재들이다. 판매부수를 올리기에는 지나치게 제약이 많은 소재일 수 있겠지만...

 

 밀리터리와 빈티지 수집, 캠핑과 도끼질 그리고 전원주택, 트럼펫과 클라리넷과 섹소폰과 기타 연주, 시와 소설과 수필로 나눠지는 글쓰기. 참으로 다양한 취미와 관심사를 가진 작가의 일상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어찌 그리 멋지게 사신답니까? 이쯤에서 내 글도 정리에 들어가야겠다. 총평하자면 단아한 그의 글에서 풍겨지는 느낌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그는 단단한 인격이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앞만 보고 걸어가는 발걸음이 느껴진다. 또 다른 하나는 너무도 아날로그적으로 다가오는 고향의 선율이다. 결국 작가의 글은 그의 인생을 대변하며 삶의 표상일 수 밖에 없는 것임을 느낀다. 40대 중년남성에게 추천할 만 하다.

 

 아쉬움도 하나 있다. 수 십 편의 글에 작성일이 적혀있지 않다. 모년 모월 모일에 작가가 어떤 사건을 접하여 누구에게 이 글을 남겼었는지 기록해 두었다면 수 년, 아니 수 십년 지난 뒤 이 책을 읽게 되는 독자에게도 좀 더 의미있는 글로 기억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고향이야기는 모르되 인천 문인협회나 시사적인 사건에 접해 쓰게 된 글의 경우는 그렇게 느껴진다.

 

 앞으로 수 년 뒤, 작가의 소망대로 고향에 돌아가 산자락 밑에 아담한 전원주택을 짓고 화목난로 옆 창가에 앉아 음악을 벗 삼아가며 좋은 글을 쓰며 지내시길 기원한다. 혹시 내가 그 곳에서 멋진 섹소폰 연주를 들을 수 있을까?

출처 : 창 밖을 보다
글쓴이 : 하늬 원글보기
메모 :

'雜記 > 이 생각 저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再建  (0) 2008.10.13
국군의 날 시가행진  (0) 2008.10.01
[스크랩] 키스에 관한 충고  (0) 2008.09.16
[스크랩] 추석 보너스  (0) 2008.09.13
[스크랩] 찌질이 YTN 놈들  (0) 2008.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