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옆사람

펜과잉크 2009. 7. 27. 01:52

 

 

 

 

 

어느 조사 결과다. 아파트 거주민들에게 ‘호감이 가는 사람’을 묻자 가장 많은 대답이 ‘옆 집 남자’ 혹은 ‘옆 집 여자’였다고 한다. 행복이 저 산 너머 언덕 위에 있는 게 아니라더니 기실 마음의 연인도 근처에 있었던 것 같다. 글을 읽고 맨 먼저 생각한 게 옆 집 여자였다. 그리고 보니 그녀도 괜찮은 여자다. 가슴 푹 파인 블라우스도 어울리고…. 조사 결과에 놀랐지만 도시인들에겐 가까이 있는 대상으로부터 위안을 삼으려는 어떤 잠재욕구가 숨쉬는지도 모르겠다. 하더라도 이웃끼리 자주 부부 동반 식사를 한다든가 여흥을 즐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가끔 아내 때문에 고민 아닌 고민에 빠질 때가 있다. 바로 부부 동반 모임인데 처음부터 가고 싶어 간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럴 것이 아내가 몇 살 연상이다 보니 아내 친구들이 거의 누님뻘이라 낯설기 그지없다. 그뿐 아니다. 그녀들이 동반한 남편들은 얘기조차 편히 나눌 수 없다. 마치 내 고향 부여군 이장님들 같다. 예순을 바라보는 그들은 자기들끼리 ‘박 사장’ ‘김 회장’하며 각별하다. 그러면서 나를 ‘아우’로 취급한다. 그냥 ‘아우’라고 부르면 실례라고 생각하는지 ‘아우님’ 하며 술을 따른다. 호칭이 뭐 그러냐? ‘아우님’이라니…. 나는 처음부터 이 모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현대인들의 식사 모임을 진단해보자. 냉정히 짚어보자 이거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식당을 나와 노래방으로 향한다. 거기서 마이크 돌려가며 노래를 부른다. 네길 헐, 저희들이 무슨 동남아 공연 마치고 귀국한 가수들이냐? 왜 그리 폼을 잡고 그러냐? 몸집들은 36〃 이상 되어 가지고 기름기 반질거리는 표정들이 느끼하기만 하다. 그리고 웬 여자들이 아랫배를 들이대며 블루스 추기를 좋아하는가. 아, 정말 잠이 안 오려고 하네. 스텝도 맞출 줄 모르면서 자꾸만 갖다 붙인다. 그렇게 비비면  한 곳이….

 

어제도 아내 친구 남편의 생일이라고 부부들이 모였다. 나는 핑계거리를 찾다가 휴대폰 문자로 ‘해운대 왔어. 개의치 말고 혼자 다녀와’하고 말았다. 아들이랑 구월동 CGV에서 『해운대』영화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는 내 성격을 알고 더 이상 보채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집에 와서 기타를 꺼내 세 시간 가량 연습했다. 그런데 예상 외로 아내가 일찍 귀가하는 것이다. 술도 그리 취한 것 같지 않다. 의외라는 생각에 반가운 마음이 겹쳐 웬일이냐 물었더니 내가 없어 중간에 일찍 왔단다. 친구들이 자꾸 데려오라 하더라나. 그런데 나는 그런 모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혼자 점잖아서가 아니라 시끄러운 노래방 마이크 돌려가며 소리 지르는 게 싫고 조명에 끈적대는 분위기 자체가 역겹다. 저마다 ‘사장’ ‘회장’ 하는 자리에 왜 내가 있어야 하나? ‘사장’ ‘회장’들은 ‘사장’ ‘회장’ 클럽에서 놀면 되는 것이다. 하긴 정육점 사장도 있던데…. 우리 고향에선 육간을 천직으로 규정하여 가까이 가지도 않았다. 백정 ‘칼잡이’ 아닌가.

 

내게 악기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잘하지 못하지만 포기할 수가 없다. 마음에도 없는 모임에 나가 시간 허비하느니 집에서 조용히 기타줄 튕기는 연습이 백배 낫다. 그걸 꼭 경지에 이르려 한다기보다는 나 자신에 대한 도전이다. 시작했으니 갈 데까지 가야 한다. 에베레스트 빙벽에서 추락사한 고미영 씨는 생전 인터뷰에서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있는 말’이라고 했다. 어렵고 힘든 과정일수록 성취감이 크기 마련이다. 아무튼 악기를 빼고 얘기하기 싫다.

 

글을 맺을 때가 됐다. 서두에 언급한 바대로 이웃집과 필요 이상 접촉해서도 좋을 것이 없다는 주장을 펴고 싶다. 꼭 이웃집을 말하는 게 아니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다. 사람은 너무 멀게 대해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가까이 둘 것도 아니다. 속내를 건넸다가 후회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속내뿐이 아니다. 매사 정도를 벗어나면 무리가 따른다. 지나치면 넘치는 결과와 맞닥뜨리는 것이다. 일찍 귀가하여 잠든 아내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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