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개의 아빠로도 불린다. 유기견 출신 우리 집 개 꿈돌이의 아빠가 된 것이다. 과연 정상인가 싶지만 달리 부를 것도 없다. 그래 나는 꿈돌이의 아빠, 아내는 꿈돌이의 엄마, 딸은 꿈돌이의 누나, 아들은 꿈돌이의 형이 되었다. TV에서 애견을 끌안고 다니며 '엄마가 밥 줄게' '엄마가 똥 딲아 줄게' 어쩌고 하는 소리들을 비정상적인 개급(* 級)으로 인식하곤 했는데 어느새 나 자신이, 아니 가족 모두 비슷한 개념의 소유자가 되었다. 세상에, 나와 아내가 개의 부모가 되다니... 합작으로 개를 낳았나?
언젠가, 거실에서 아내가 개를 불러 '꿈돌아, 아빠한테 가 봐라'하는 것이다. 그러니 꿈돌이가 방울소리를 울리며 내 방으로 쪼르르 달려온다. 아내는 꿈돌이를 불러 '정말 착하다. 간식 하나 먹어라'면서 호의를 베푸는 눈치다. 개가 마냥 좋아 방울소리를 울리며 별 아양을 떠는 것이었다. 그때 아내에게 '내가 개 아빠야?'하고 반문했지만 실은 마땅히 대처할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주인님' 어쩌고 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나도 어느새 꿈돌이한테 '야, 형한테 가 봐라' 혹은 '누나 일어났나 보렴' 하는 식이 되고 말았다. 그런 식으로 대하니 개의 눈빛, 표정 같은 것들이 예사롭게 안 보인다. 시선이 마주치면 내가 먼저 피할 정도다. 개의 눈빛이 너무도 진지해보이기 때문이다. 개는 말하는 것 같다.
"간식 먹고 싶소. 어제 사 온 돼지귀때기는 아직 냉장고 있소? 언제 또 줄 거요? 다음엔 가위로 적당히 자르시오. 너무 커서 사이즈가 안 맞아. 애인도 사귀고 싶소. 털 곱고 엉덩이 탄탄한 애인 말이오. 이빨 고운 애인이면 더욱 좋겠소. 단물이 녹아 흐르는... 아랫도리 질펀..."
오늘 아침 당직을 마치고 퇴근하니 맨 먼저 개가 반긴다. 그냥 반기는 게 아니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를 때부터 이미 안쪽에선 문을 긁고 난리가 났다. 문을 여니 곱사등이 재주 부리듯 콩콩 뛰고 뒹굴고 비비고 제 정신이 아니다. 아내와 아들은 저만치서 '왔어요?' 소리만 하곤 각자 TV 속으로 시선을 꿇어박는다. 여전히 유기견 출신의 꿈돌이만 반길 뿐. 나는 사람보다 개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눈다.
"꿈돌아. 예쁘다. 착하다. 잘 잤니? 밥은 먹었니? 오~, 그래. 그래. 오냐. 그렇지. 오케이~! 멋지다. 다리 벌려 봤! 오케이! 멋져. 손! 손! 크하하... 예쁘다. 착하다. 오른손! 왼손! 크하하... 착하다. 우리 음악 들을래? 싫어? 똥 마려워? 아냐? 섹스하고 싶다고? 그저께 밤 깔개방석 올라타고 씩씩대는 거 봤다. 재밌든? 진짜 하는 거 같았어? 해보긴 했냐? 우리집 오기 전에 애 낳아봤어? 임신 시킨 적 있어? 너도 예비군 훈련 가서 정관 했냐?"
그러고 보니 오늘도 꿈돌이와 가장 많이 대화를 한 것 같다. 사람과 짐승간에 무슨 언어가 있겠는가. 인간의 언어와 짐승의 몸짓이 교감을 이룬다는 게 신기하다. 벽(壁)이 벽(壁)에게 말했단다. 우리 구석에서 만나자고... 나와 꿈돌이도 그런 관계는 아닐까? 구석진 곳에서 만나 서로 몸을 의지하고 외로움을 나누는... 마냥 아니라 부인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세상 외진 낯선 땅에도 푸른 하늘 호흡할 구석이 있으리라! 그리하여 오늘도 개의 영역 가까이 두리번대는 것이다. 킁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