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 단합대회 목적으로 대천해수욕장에 다녀왔다. 일박이일이었지만 나름대로 의미있는 시간들이었다. 업무로만 대하던 직원들도 각자 마음의 여유를 갖고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리라 믿는다.
대천해수욕장은 백사장 길이가 3.5km로 매우 길고, 폭이 상당히 넓은 대형에 속한다. 백사장 남쪽에 기암괴석이 있고 -비경 정도는 아니지만- 수온이 적당하여 누구나 부담없이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백사장 경사가 완만하고 지면이 일정하다는 점, 모래의 질이 아주 깨끗하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을 수 있겠다.
대천해수욕장(남쪽)
개인적으로 대천해수욕장은 약관시절의 추억이 있는 곳이다. 대천읍 -당시만 해도 대천은 읍(邑)이었다- 에 작은집이 있어 한 살 어린 사촌아우를 만나러 가곤 했다. 대천은 유순 누님이 평생토록 교편 생활을 한 곳이기도 하다. 작은집과 유순 누님집 모두 궁촌리(현재의 궁촌동)에 있었으나 작은집의 경우 뒤늦게 고향 큰집에서 분가하여 정착했고, 유순 누님은 처녀시절부터 인연이 있었다. 고등학교도 대천여고를 나왔으니...
작은집은 해수욕장 방향 철도 건널목 못미친 주택가 오른편이었다. 작은아버지가 일찍부터 장사로 돈을 많이 모았다고 고향에까지 소문이 자자했다. 내가 대천에 다니기 시작한 훨씬 이전부터 장사를 했으니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작은아버지는 새벽기차를 타고 홍성과 광천 혹은 웅천까지 다니셨고, 우리 고향 부여장까지 오셨다.
해수욕장에 모인 아이들
유치원생들인 듯...
성수기 대천해수욕장은 늘 인산인해였다. 읍에서 해수욕장 가는 버스는 항상 만원이었다. 콩나물시루가 따로 없었다. 욕장 입구에 내려 조금만 걸어가면 백사장이었다. 언덕 아래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던 기억... 이쪽부터 저쪽까지 천천히 걸으면 언제 닿을지 모르는 모래밭이었다. 썰물 땐 운동장 몇 개를 합쳐놓은 것처럼 넓었다. 우린 해수욕장 끄트머리까지 걸어가 소라껍질을 입에 대고 웃거나 돌멩이를 주워 호주머니에 담는 등의 꿈같은 시간들로 보냈다. 내겐 파도소리를 들으며 걷는 자체가 특별한 경험이었다.
솔밭의 오래된 집
훗날, 사촌아우는 특전사에 자원 입대한다. 13여단에서 단기하사관으로 복무하였다. 전역 후 작은아버지의 도움으로 서울 강남에 화장품 대리점을 차려 잘 나가다가 부천 고강동 신도시에다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부도를 당하고 말았다. 그때부터 사촌아우는 연락이 쉽지 않은 관계가 되었다. 재기하려는 과정에 나를 찾아와 대출 보증을 서 달라는 사정을 거부했던 것과도 무관하진 않으리라 본다. 하지만 노름하지 말라, 보증을 서지 말라는 부분은 아버지께서 누누이 강조하신 말씀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 형제들은 지금까지 서로 돈을 빌리거나 보증을 서주는 일을 하지 않았다.
하룻밤을 보내는 동안 바닷가 산책을 하며 많은 생각을 했다. 사촌아우가 그리워 휴대폰 문자도 띄웠다. 회신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서운하지 않았다. 우리가 다시 예전의 사이로 재회하리라 믿어졌던 까닭이다. 머지않은 날, 꼭 다시 만나리라 확신한다.
대천해수욕장에 다녀온 사람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지금 대천해수욕장은 모기 천지다. 발을 옮기는 곳마다 모기가 득실거려 잠시 서 있기가 난감할 정도다. 걸음을 멈추면 어느새 모기가 달라붙어 쏘아댄다. 늦은 밤, 썰물 따라 멀리 떨어진 바닷물까지 나아갔지만 거기까지 모기가 날아다니며 성가시게 굴었다. 하룻밤을 지내고 온 입장에서 끔찍했다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불야성의 해수욕장 : 모기에 뜯겨가며 찍은 사진들이다
광활한 백사장
누가 남긴 구두일까?
사촌아우에게
대1 막내아들 지석이
사촌아우에게
대천해수욕장에 모기가 우글거리는 이유가 있다. 욕장엔 각종 시설이 움집해있다. 민박집, 여관, 모텔, 콘도, 팬션, 수련원, 횟집, 한정식집, 유흥음식점, 커피숍, 편의점, 당구장, 포장마차... 비수기엔 유령의 마을이나 다름 없지만 전자의 시설들이 밀집한 특성으로 하수도 역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으리란 추측이다. 하수도뿐이 아니다. 시설마다 정화조가 있다. 바로 이런 환경이 오늘날 대천해수욕장을 모기 터전으로 만들었다고 봐도 과언 아니다. 대천시와 상인들은 해수욕장 개장에만 열을 올릴 뿐 정작 환경을 위한 노력엔 소홀하였다. 이 글을 읽고 아무렇지 않게 대천해수욕장으로 향하는 사람은 스스로 모기지옥으로 들어가는 꼴을 면치 못하리라. 온화하고 기름진(?) 정화조 환경에 길들여진 모기는 생김새부터 특이하다. 시커먼 침으로 무장하고 날쌍한 자세로 인체의 피를 노리는 비상을 위한 몸짓은 상상만으로 오싹하다.
머드체험관 홍보문
아침 솔밭의 청설모
추억을 회상하는 걸까?
야영장의 텐트
현지엔 단체로 학습을 온 학생들이 많았다. 주로 유치원생들과 초등학생들이었다. 어린 아이들이 모기판에서 하룻밤 혹은 이틀밤을 지내며 겪을 고통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일박을 하면서 모기를 몇 마리나 잡았는지 모른다. 모기가 있으면 잠을 자지 못하는 성격 탓도 있지만, 성격을 논하기 전에 대천해수욕장의 무방비에 가까운 방역체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천시 공무원들이 이 글을 읽고 하룻밤 해수욕장에서 자면서 현장 체험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도망 가는 사람들이 숱하리라. 나도 밤새 십 수군데를 물렸다. 환경을 온통 모기 세상으로 만들어놓고 돈에만 눈독이 오른 대천시와 해수욕장 상인들의 상혼이 한심할 뿐이다.
함평의 나비축제가 왜 유명해졌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함평은 축제가 끝나면 그 즉시 다음 연도 축제를 위해 준비한단다. 낡은 구조물을 철거하고 새롭고 신선한 축제를 위한 노력으로 담당 직원 모두가 함께 뛴다는 것이다. 한낱 '함평고구마사건' 정도로만 인식했던 소읍이 나비축제 하나로 대한민국을 넘어 국제적인 지명도로 발돋음한 데에는 공무원들과 지역 주민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친 결과다. 대천시와 해수욕장 관계자들이 좀 배웠으면 한다.
이런 소리를 하면 마지못해 방역차 붕붕거리며 말 자지만 한 배기구로 연기만 내뿜고 폼 잡고 다닐지 모르겠다. 나 다섯살 때 어머니 손 잡고 시장에 나가 보았던 연막 살포 방제작업은 아직도 그 모양 그대로다. 외견상으로만 거창해보이는... 연막 소독만으로는 부족하다. 방치된 시설이나 오랫동안 쓰지 않은 건물의 정화조, 혹은 지하도 뚜껑을 열고 그 속에 우글거리는 모기 성충까지 섬멸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