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칠월 초, 직원들과 대천해수욕장에 다녀왔다. 단합대회 차원이었다. 해수욕장에 지정 휴양원이 있어 숙박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지금도 대천해수욕장을 생각하면 밤에 들끓던 모기의 끔찍한 기억이 먼저 앞선다. 비수기에 온갖 시설의 정화조 또는 지하수로 같은 데에서 기생한 모기떼가 해수욕장 개장과 함께 일시에 출몰한 까닭이다. 이는 사전에 환경문제를 간과한 보령시와 해수욕장 관계자들의 잘못이 크다. 이 문제는 보령시 홈페이지및 대천해수욕장 홈페이지에도 올렸으니 스스로 알아서 고치든가 하리라.
현지에서 직원들끼리 족구와 축구 시합이 있었다. 2,30대와 4,50대의 대결이었다. 얼른 보면 2,30대가 압도적으로 승리했을 거라 믿겠지만 족구는 4,50대가 이겼고, 축구는 연장전까지 2:2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에서 3대2로 2,30대에게 패했다. 당시 내가 운동화를 신고 뛰었거나 -맨발이었음- 동료 직원이 엄지발톱 빠지는 부상을 입지 않았다면 4,50대가 이겼을 것이다. 막상 붙어보니 2,30대 젊은 피도 별 것 아니었다.
진땀을 흘리고나니 정년을 앞둔 선배 직원께서 나를 향해 '류종호 씨 정말 잘 뛰네' 하신다. 나 자신이 잘 뛰었는지는 모르지만 축구 시합 도중 쓴내가 목젖까지 차오르는 경험을 몇 번 했다. 나이 들어 뛰려니 무척 힘들었다. 한데 4.50대에선 나만큼 뛰는 사람이 없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직장 체력검정에서도 전항목 요구조건 안에 들었다. 가만히 생각하니 어릴 적 성장환경 덕분이 아닌가 싶다.
내가 자란 시골에선 학교까지 거리가 최소한 십리 밖이었다. 초등학교가 십리 조금 넘고 중학교는 십리가 훨씬 넘는다. 초등학교 시절엔 다리가 시원찮은 큰 개울을 두 번이나 건넜고 산허리길을 돌아 높다란 고개를 넘어야 했다. 십리길 걸어 등교하면 하루종일 공부만 하는 게 아니었다. 쉬는시간마다 공을 차고 놀았다. 우린 벽지학교라서 일반과 이반뿐이었다. 만날 두 반의 축구 경기가 이어졌다. 운동장이 부족하면 학교 밖 논에서 뛰었다. 벼를 수확한 포기턱에 걸려 넘어지고 굴러도 변함 없었다. 하긴 달리 마땅한 놀이가 없었다.
초등학교 5-6학년 땐 담임 선생님이 한 분이셨다. 일반도 담임 선생님이 한 분이셨다. 근데 우리 이반 담임 선생님이셨던 조O연 스승님(현 부O상업고등학교장)은 공부보다 스포츠를 좋아하셨다. 점심시간에 일반과 축구 시합이 붙으면 교무실 바깥에 나와 끝까지 보고 계시다가 오후 수업 시간에 십 분 이상 잘된 점을 칭찬해주시고 잘못된 점을 지적해주셨다. 지는 날은 얼굴 표정부터 일그러져서 오후 수업이 편치가 않았다. 그런 날은 수업이 끝나고 다시 붙어 기어이 이겨야만 직성이 풀렸다. 반 편성 없이 6년을 한 교실에서 공부한 동창들은 지금도 끈끈한 우정으로 결집되어있다.
아무튼 시골 환경은 도시와는 달랐다. 수업이 끝나 배가 고픈 지경에도 십리 길 걸어 집으로 가야 했다. 집으로 갈 때도 옳게 가는 경우가 드물었다. 저수지에서 미역을 감거나 개울에서 송사리를 잡을 때가 허다했다. 그뿐인가? 산허리 묘마당에서 한바탕 싸움을 붙는 날도 수두룩했다.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십리 길을 통학했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쉬는 시간마다 공을 가지고 놀았으며 하교길 중간 저수지에서 수영을 하고 고기를 잡았다. 아버지가 자전거를 사 주셨으나 중간에 높은 고개가 있어 1/3 구간은 끌고 다녀야만 했다. 이런 환경에서 체력이 향상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중학생 시절엔 지게질도 많이 했던 것 같다. 대규모 엽연초 재배 농가였던 우리집은 봄철 비료만 해도 수 백 포대를 사들였다. 비료는 담배밭에서 가장 가까운 도로변에 트럭이 내려놓고 간다. 거기서 밭까지 지게로 져 날라야 했다. 아버지 혼자 나르시는 게 안타깝기도 했지만 그런 상황이면 시골 아이 누구든 지게를 지고 동참한다. 아무튼 한 번에 3-4포대를 지고 산비탈 언덕을 올라 담배밭 군데군데 떨어뜨렸다. 숨이 끊어질 듯한 고통이었지만 오기로 올랐다. 이런 것도 정신력과 하체 근육에 큰 영향을 주었으리라 믿는다. 질소비료, 복합비료 막론하고 한 포대 25kg이니 세 포대 짊어지면 75kg을 지는 셈이다. 네 포대 100kg을 지면 다리가 후들거렸고 이따금 지게멜빵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투둑~'
지금은 75kg쯤 지고 겨우 일어서기나 할까?
군 시절엔 장거리 마라톤 선수로 뛰었다. 육본본부 전투력 측정에서 군단 대회에 나가 2위를 했는데 변명 같지만 1위와의 차이가 2미터도 채 안됐을 것이다. 막판 스퍼트 구간을 너무 짧게 잡은 게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1위로 골인한 전우가 현재 국정원에 근무하는 김O용이다. 양평 출신인데 공을 아주 잘 찼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조금 일찍 기치를 올렸어도 그 전우를 제꼈을 것이다. 한 번 뛰고 나면 며칠 동안 기력이 소진하는 무력증이 따랐지만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지나친 보호 속에서 자란다. 유치원 시절부터 공부에만 내몰린다. 초등학교에 진학해도 공을 차고 노는 일이 흔치 않다. 공부가 끝나면 곧바로 학원으로 가야 한다. 학원에서 돌아오면 인터넷 게임을 하거나 별도 과외수업을 받는다. 이렇게 성장한 아이들은 중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달라지지 않는다. 사실 어느 보도에서 '요즘 학생들은 축구를 할 줄 모른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축구만이 아니다. 장시간 걸을 줄도 뛸 줄도 모른다. 신세대 군인들은 훈련에 임하는 정신자세도 다르다고 들었다.
요즘 연예인들은 가슴살과 뱃살 키우고 나타나는 걸 가문의 영광쯤으로 여기는 눈치들이다. 병역문제로 미국으로 쫓겨난 유승준도 며칠 전 인터넷에 '王'자(字) 복근을 하고 나타나 사람들을 웃겼다. 뱃때기에 '王'자(字)만 새기면 다냐? 국민의 신성한 국방 의무조차 결략하는 놈이... 어떤 놈은 뱃때기에 '임금 王'자(字)를 새기고 해수욕장에서 옷 벗고 다니는 게 꿈이라나? 별 희한한 놈이 다 있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지명의 나이에 이르러 허리 사이즈가 36인치에 육박한다. 32인치 정도만 돼도 원이 없겠다. 뱃살만큼 복원하기 힘든 부위도 없을 것이다. 누군 나이 들어 적당히 배가 나와야 점잖다고 하는데 뱃살이 나오면 게을러 보인다. 아무 쓸모 없는 부위다.
나이 어린 사람들이나 우리 같은 사람들이나 건강문제는 영원한 화두나 다름없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건강해야 가정의 화목도 사회에서의 위치도 지켜갈 수 있다. 개들의 세계에서도 비실이는 늘 꽁무니에 처져 다니더라. 건강한 놈이 제일 앞서 나가 원하는 목적을 취한다. 건강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