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인사의 상대성

펜과잉크 2010. 10. 1. 23:52

 

 

 

 

 

인사성도 나이를 먹으면서 달라진다. 어릴 땐 밖에서 어른을 뵈면 인사부터 드렸다. 인사의 중요성은 집에서도 수없이 강조되었다. 할머니나  아버지로부터 어디 나가 어른을 뵈면 인사부터 드리라는 말씀을 귀 아프게 들었다. 뉘집 자손은 인사를 깎듯이 잘하더라 혹은 뉘집 새끼는 눈만 멀뚱멀뚱 뜨고 가더라는 말이 밥상의 이야깃거리로 회자되곤 했다. 그래 인사에 관한 한 류종호도 동네에서 뒤로 밀리는 이름이 아니었다. 자전거 비비고 가다 어른 계시는 논배미 지날 때면 안장에서 잽싸게 뛰어내려 '안녕하셔유?' 인사하고는 가던 길을 마저 달렸다. 그땐 몸과 마음이 젊어 페달을 밟지 않고 공중으로 붕 날아 안장에 올라타도 불알이 터지거나 깨지는 불상사가 없었다. 내 나이 사십의 후반에 이르기까지, 그러니까 아버지께서 돌연 몹쓸병환으로 자리에 누으실 때까지 고향에 가면 곧잘 다음과 같은 말씀이 이어졌다.

'사람이 인사를 잘허야 허는 법여. 밖에 다니다 어른들 뵈면 싸게 쫓아가 인사부텀 드려라.'

인사성 바른 자손은 마을회관에서도 칭찬의 주인공이 되었다.

 

객지살이 삼십년에 내 나이 오십이 되어 인사하는 법이 바뀌었다. 인사 받는 태도가 불성실한 상대에겐 극히 인색하거나 아예 꿈도 꾸지 않는다. 아파트 단지에서 이웃과 마주치면 인사하기 전에 계산부터 한다.

'저 사람은 인사를 아주 잘 받아. 그러니 이번에도 정중히 인사하자.'

하는가 하면

'저 지지배는 인사할 때 받는둥마는둥 하더만. 뭐가 그리 거만해? 에이, 인사 안 해.'

속으로 씹으며 먼데를 보고 지나쳐버린다. 

아이러니한 건 내가 정중히 인사할 땐 건성으로 받던 상대가 내쪽이 거만해지자 의외로 공손해지더라는 것이다.

'아저씨, 요즘도 나팔 부세요? 한 번 듣고 싶어요!'

뭐 그런 식이다.

그리하여 나는 앞으로도 철저히 계산하면서 인사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도 도시에 살면서 얻은 병이다. 대략 상대적이다. 어서 고향으로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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