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안경을 놓치다

펜과잉크 2010. 10. 11. 13:49

 

 

 

 

휴대폰을 받으니 악기상 주인이다. 그제서야 어제 트럼펫 내부 청소와 점검을 맡긴 일이 생각난다. 1961년 소띠생으로 50세가 되어 건망증인지 정신을 깜빡 놓칠 때가 있다. 포경수술할 때와 어금니에 금 덧씌울 때 부분 마취해본 게 전부인데 뭔가를 잊어버릴 때가 있다. 어려서 집 앞 감나무에서 떨어진 후유증인가? 나무에서 떨어진 걸 합치면 도합 다섯번은 될 것이다.

 

가급적 직업적인 얘기를 피하려 하는데 오늘은 일부 취급해야 할 것 같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인천광역시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바쁘다. 사건도 많다. 오늘 아침에도 칼부림이 나서 한 놈이 길병원으로 갔다. 죽진 않을 것 같다. 모르겠다. 말하다가도 숨이 멎는 게 실혈사(失血死)이니... 길바닥을 물들인 검붉은 선혈로 생명이 위태로울 것 같아 응급실에 전화를 거니 '지금 검사중'이란다. 그럼 죽지 않은 것이다.

 

또 어디서 남자가 다방문을 걷어찬다 하여 갔더니 조선족 아내가 가출했다면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어지간하면 설득하여 보내려 했는데 놈이 우릴 잡고 시비다. 별의 별 일 다 겪는 직업이라 끝까지 이해하려 하였으나 차량 본네트를 막고 10분 이상 욕설을 퍼부으려 비켜줄 생각을 않는다. 그래 차에서 내려 놈을 패대기 치는데 -패대기 치기가 갈수록 힘들다- 이놈의 발버둥에 그만 안경이 날아갔다. 마침 길을 가던 '김여사' 스타일의 운전자가 차로 안경을 밟고 가버렸다. 완파(完破). 그래 지금 안경이 없는 상태에서 돋보기에 의존하여 혼신으로 글을 쓴다. 안경을 맞춘지 한 달이 채 됐을까? 주안역 지하도에서 행인에게 행패 부리던 놈이랑 붙었다가 깨져 맞췄는데 이번에 또 날아갔다. 안경이 차량 바퀴에 으깨어지는 걸 목격한 순간 내 몸에서 마징가-Z의 괴력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었다. 그래 놈의 팔을 뒤로 꺾어 번쩍 들어 차량 뒤칸에 내던지듯 싣고 사무실로 왔다.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힘이었다. 차량 운전자 아주머니는 내버려뒀다. 사실 잡는다 한들 실수로 남의 물건을 손괴한 걸 물어내라 할 수도 없다.

 

며칠 전 체력검정에선 1,200미터 달리기 선두로 들어왔다. 숨이 끊어지는 줄 알았다. 우리 나이에 마라톤을 뛴다는 게 고역이다. 어떤이처럼 달리기를 취미로 하는 몸이 아니니 말이다. 아무리 군시절 장거리 마라톤 선수로 뛰었다 치더라도 오늘날 허리 35인치 사이즈로 과거를 유념하는 건 허욕이다. 팔굽혀펴기에서도 30초 동안 37번을 했다. 전 종목 다 만점이었다. 그래 아직은 힘이 남았다고 본다. 이것도 시골서 자라며 물지게, 똥지게, 나뭇짐, 담뱃짐, 비료지게를 져본 경험의 악발이 남은 때문이다. 도시 출신들은 우리랑 겨뤄 이기지 못한다. 중학생 시절에도 아버지 따라 야산을 개간해본 몸이다. 다방문 앞의 놈이 사람을 잘못 봤다. 공직이라면 시민 앞에 최선의 도리와 예의를 갖추되 더럽게 굴욕적일 것까진 없다고 본다. 개같은 놈 하나 건드려 집으로 가라면 훌훌 벗고 고향으로 내려가 칠갑산자락에 오미자나 심자. 구기자도 좋고 청양고추도 좋다. 그래 나는 처음부터 아쉬운소리를 할 줄 모르고, 그런 식으로 살지도 않았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지난번엔 안경을 깨뜨린 놈이 새로 맞춰줬다. 이튿날 직장으로 쫓아가 따졌더니 얼른 해주는 것이었다.

"당신, 요즘 시국이 어떤지 알죠? 사람이 술에 취해도 그렇지, OO에 있는 몸이 행인들에게 발길질을 합니까? 우리 사무실에 와선 바닥에 누워 바지에 오줌을 싸더만... 직장에 통보하면 당신은 정화교육 1순위야. 구조조정! 알죠? 내 안경값이나 줘요. 안경점에서 25만원이래. 다초점입니다. 안경값만 받아요."

"더 드리면 안될까요?"

"더 받으면 피차 곤란합니다. 안경값만 계산하세요."

그가 넙쪽 인사를 했다.

  

사실 타인의 물리적인 행사로 인해 안경이 깨지면 기분이 나쁘다. 안경이 없으면 글씨 하나 보이지 않는 다초점이다.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그런데 술 취한 사람들은 대충 보이는 게 없는 것 같다. 동물적인 본능으로 호흡하는 건 아닐까. 개, 돼지처럼...

 

그저께 자유공원 글짓기 행사 때 일찍 가신 조영숙 사무국장께 전화를 걸었다. 몸이 안좋아 먼저 가셨다는 말을 들은 때문이다. 다행히 전화기속 목소리에 생명력이 살아있었다. 당일 몸살 기운이 좀 있었단다. 어쨌거니 완쾌되어 활기찬 음성을 들어 좋았다. 사람이 아프면 안된다. 인천문협 운영에도 지장이 따를 것이다. 

 

밥 먹고 세 시간만 자야지. 집에 오자마자 주안에 있는 인간 둘한테 시민회관터 뒷편의 대형 안경점 전화번호를 알려달라 했는데 아직까지 감감 무소식이다. 자고나서 직접 나가봐야겠다. 어떤 새끼든 안경을 건드리는 놈은 골통을 부숴버리고 싶다. 솔직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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