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안경에 관한 불편한 진실

펜과잉크 2010. 10. 13. 00:35

 

 

 

 

중학생 시절,

어느 하교길에 안경을 주었다. 까만 뿔테 안경이었다. 그걸 쓰고 멋지게 가고 있었다. 근데 산허리를 돌자마자 자전거 타고 면에 나오시는 큰아버지를 뵈었다. 뜻밖의 상황이라 안경을 쓴 채 인사드렸더니 자전거를 세우시고 나를 부르신다. 

"종호야, 언제부터 네가 안경을 썼느냐?"

큰아버지 말씀에 아무 말 못하고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쫓기듯 그 장소를 벗어났다. 그땐 안경을 쓰면 멋있는 줄 알았다.

 

불혹을 넘으면서 안경을 쓰기 시작한 게 지금은 다초점 안경 없이는 신문조차 읽지 못한다. 누진다초점렌즈는 사람 눈에 가장 가까운 렌즈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40대 중반이 넘으면 수정체의 굴절력 조절에 한계가 와 가까운 곳에 있는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된다. 바로 노안인데 노안은 대체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는 사물은 잘 보지 못하고 먼 곳에 있는 사물은 잘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고안해낸 것이 바로 누진다초점렌즈인 것이다. 렌즈를 3등분으로 나눠 윗부분은 먼곳을, 가운뎃다리(가운데 부분)는 평상시 보이는 정도의 초점을, 맨아래 부분은 블록렌즈로 초점을 갖춘 다기능렌즈이다. 3가지 안경의 기능이 하나에 전부 들어 있으니 참으로 편리할 것 같지만 이 안경에 잘못 길들여지면 헤어나기 힘들다.

 

그동안 학익동 단골 안경점에만 가다가 직원의 소개로 주안1동 <GLASSBABA>라는 안경점에 들렀다. 마침 한가한 시간이라 안경사와 오랜시간 얘기할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착용한 누진다초점안경을 보더니 누진다초점안경은 장시간 책상 업무를 -컴퓨터, 독서, 글쓰기 등- 하는 사람에겐 맞지않다는 지적이었다. 몸에 해롭다기보다는 업무용 렌즈가 따로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시력의 정밀검사를 위해선 20분 가량 시간이 필요하단다. 그의 말에 의하면 평소엔 누진다초점안경에 의존하고 원고를 쓰거나 책을 읽을 땐 업무용 안경을 써야 맞단다. 궁극적으로 안경 두 개를 번갈아 써야 한다는 결론이니 얼마나 귀찮은가?

 

누진다초점 안경은 책상 업무시 렌즈의 하단을 통해 사물을 보기 때문에 자칫 '거북이목'이 되기 쉽다. '거북이목'은 경추신경을 압박할 우려가 있고 고질적인 피로를 불러올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신중히 고민하면 내가 만난 안경사의 말에 무게감이 실린다. 그래 앞으로는 안경을 두 개로 나눠 상황에 따라 쓰려 한다.

 

 

 

 

 

 

 

안경없이 생활할 수 있는 기회는 잠 잘 때 뿐이다. 안경을 벗으면 얼굴 근육이 홀가분해지는 느낌이다. 그때 비로소 심신의 아늑함을 맛볼 수 있다. 안경이 눈을 밝게 해주는 건 분명하지만 인간 본성이 희구하는 문제까지 해결해주진 못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항공기로 러시아의 안토노프사에서 만든 AN-225 므리야 -므리야는 러시아어로 '꿈'을 의미한다고 함- 를 꼽는다. AN-225는 대형 수송기인 AN-124를 더욱 대형화 시킨 버젼으로 본래는 군용수송 및 우주왕복선 수송등에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기존의 AN-124에 비해 전체적으로 크기가 늘어났고 엔진이 4개에서 6개로 늘어났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비행기가 커지면 공항 활주의 폭과 길이도 커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문명의 한계다. 안경도 그와 같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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