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사촌아우 석원에게

펜과잉크 2011. 3. 28. 12:44

 

 

 

석원,

다정했던 사촌아우야. 이틀만에 접속하여 블로그 방명록에 남긴 아우의 글을 읽고 깜짝 놀랐네. 잘 지내고 있지? 생각하면 반갑고 안타까운 마음이 함께 일곤 한다네. 아우가 과거의 영화를 되찾아 꼭 재기하길 나는 진심으로 바라네.

 

옛날에 우린 둘 없는 사이였지. 방학 때마다 아우가 큰집에 놀러오면 늘 나랑 어울렸어. 오죽하면 할머니께서 둘의 사이를 염려하실 정도였을까? 만날 붙어다니니 행여 사고를 칠지 몰라 불안해하시는 표정이었지. 겨울방학 내내 마을 뒷산을 헤매고 다니며 토끼몰이도 했지.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점심을 거른 채 눈밭의 토끼를 쫓아가 사로잡은 적도 있었지. 두 번이나... 병목안 저수지 위 민자네 산에서 내리막길을 질러 눈밭에서 퍼덕대는 토끼를 사로잡았고, 구렁터 병용이네 뒷산에서도 지친 산토끼를 쫓아가 붙잡았어. 낯선 사람이 내 글을 읽으면 더러 믿지 못하겠지만 우린 정말 야생마나 다름없이 컸지. 자연에 길들여져 무서울 게 없었지. 환경은 자네가 나보다 월등히 나았지. 작은아버지께서 일찍부터 뛰어난 수완으로 장사하신 덕에...

 

1978년 2월 중순으로 기억하네. 그 해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고 아우가 대천고등학교에 진학했지. 어느날, 대전에서 식모살이하던 누님이 휴가를 나왔더군. 그런데 누님을 따라온 주인집 딸이 그림처럼 예쁜 거야. 말수 없이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곤 오직 공부만 하더군. 누님에게 살짝 물으니 대전여고 2학년이 되었다는 거야. 나랑 동갑이더군. 솔직히 묘한 설렘에 빠졌다네.

 

누님이 집에 온지 이틀 후, 어머니께서 용돈을 쥐어주시며 누님과 주인집 딸을 데리고 나가 부여읍내 고적지를 구경시켜주라 하셨지. 마땅히 걸칠 옷이 없었던 나는 큰집으로 가서 자네 코트를 빌려 입고 읍내에 다녀왔던 기억이 나네. 물론 누님의 주인집 딸과는 한 마디 말도 않은 채...

'이년아. 네가 공부를 잘하면 얼마나 잘하냐? 나도 모범생이다'

묘한 경쟁심이 도발하더군.

 

20년이 흐른 1998년,

장편소설을 집필하던 중 일부 자전적인 내용을 삽입하면서 그녀 얘기를 썼다네. 그러면서 '우린 사십이 되기 전에 다시 만납니다'라고 여운을 달았지. 그 소설은 대전의 대형서점을 통해서도 판매됐는데 당시 책을 구입해 읽은 막역지우 환교가 그녀를 수소문하여 책을 보내주면서 기적같은 반전이 싹텄지. 아우도 갓골 환교를 알지? 대전에서 20년 이상 공무원으로 재직중이라네. 대전 동구 삼성동 삼성초교 근처를 훤히 알고 있던 친구가 내 말을 듣고 삼성초등학교 정문 일대를 수소문하여 - 그 친구 성격이 원래 대범하네- 본가를 찾아내 서울의 주소를 알아내어 책을 보낸 거였지. 그러니까 그 책을 누님이 식모살이하던 주인집 딸이 읽고 먼저 내게 연락을 해왔다네. 난 친구의 공작(?)에 의한 결과라는 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네. 다만 책이 나오고 친구가 누님이 식모 살던 동네에 대해 몇 번을 반복해 묻길래 이상하다 했을 뿐...

 

우린 소설처럼 사십이 되기 전에 만났지. 딱 한 번 만난 그녀, 말 한 마디 나누지 않았던 그녀가 전화를 걸어 대뜸 누님의 소식부터 묻더군. 자신의 어머니가 하반신 마비로 고생할 때 '언니 덕에 탈없이 공부할 수 있었다'면서 꼭 한 번 보고 싶다는 거야. 그 해 추석날 충북 영동에서 전화한다면서 전화로 흐느끼던 그녀를 기억하네. 어머니 산소라고... 시간이 좀 더 흘러 우린 서울 압구정동과 인천에서 만났지. 국민대학교에 나가더군.

 

트렌치코트 얘기를 하다가 한참 빗나갔군. 대천엔 자주 가나? 아아, 이제 대천에 특별한 연고가 없는 셈이군. 유순 누님마저 그곳을 떠나셨으니... 아우의 집에 한 달을 생활하면서 대천 읍내와 -당시만 해도 읍내였지- 해수욕장을 다니며 값진 시간들을 보내던 기억이 어제 같네. 궁촌동에서 다리 건너 조금 더 가면 도심이었지. 모든 게 그립네. 세월은 강산의 변화와 함께 우리의 끈끈한 정도 갈라놓았지.

 

이 나이에 나는 항상 시골을 꿈꾼다네. 다만 고향으로는 가지 않을 작정이네. 청양군 대치면 금전리 아버지 산소 근처에 조그만 집을 짓고 여생을 보내는 게 꿈이라네.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나는 가급적 화려한 도시 생활에 물들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어. 인연에도 얽히지 않으려 하네. 어느날 홀연히 고향으로 돌아가도 마음에 걸리는 게 없도록 하기 위해서야. 고향에 가면 칠갑산 기슭의 조상님들이 굽혀 살펴 주시겠지. 아버지도 하늘나라에서 나를 내려다 보실 거야.

 

조용히 깃들어 살며 고향의 벗 몇과 각별한 정을 나누며 살 생각이야. 그때도 악기를 연주할 걸세. 집 근처에 조그만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하거나 읍내에 아담한 연습실을 차려서 말일세.

 

문득 옛날의 추억이 떠오르네. 우리집 안방에서 이불에 발 묻어놓고 포크기타를 치던 일들 생각나나? 그 날이 어제 같은데... 아아, 모든 게 눈 깜짝할 새 흘러가버렸군. 할머니 돌아가시고, 큰아버지, 아버지, 작은아버지, 고모부... 다 돌아가셨어.

 

아우야, 마지막으로 조심스레 할 말이 있네. 아우는 지금 작은어머니가 어디 계신지 알고 있지? 나도 알고 있다네. 지금이라도 작은어머니께 잘해드려. 얼마 사시지 못할 것 같은데... 몇 달 사이 거동을 못할 정도로 악화되어 간병인 도움없이는 아무 것도 못하신대. 젊은날 아우랑 헤어졌지만 작은어머니가 아우를 버린 게 아니잖아. 어쨌든 자네를 낳아준 어머니일쎄. 제사도 모셔야 하지 않겠는가? 내 말을 서운하게 듣지 말게. 작은어머니가 참으로 불쌍해. 그 분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젊은날 작은아버지랑 이혼하시고 재혼하여 남의 자식을 낳은 것도 아니고...

 

아우야, 우리가 자유롭게 다시 만날 날을 그리네. 그 때 소주 한 잔 하세. 우리 둘이 만나도 2홉 소주 한 병을 채 비우지 못하겠지만... 부디 건강하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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