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에 관한 얘기를 하지 않으려 다짐하면서도 연중 1-2회는 특별한 분위기에 취한다. 근래 들어 이러한 횟수가 잦았던 건 아닌가 되짚어본다. 이 직장에 있는 한 모든 이가 나를 필요로 원하는 사람으로 존재하고 싶다. 있어도 그만이거나 없으면 좋을 사람으로 낙인 찍힌다면 얼마나 서글픈가? 딱히 누굴 위해서라기보다 나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밥도 열심히 먹고 일도 열심히 하자. 색소폰이랑 트럼펫도 열심히 불고 기타 연습도 부단히 하자. 좋은 친구를 사귀자. 예의를 깎듯이 갖추면서, 매사 정열적으로. 다만 스스로 바람직하다고 믿는 쪽으로 전력할 것! 하지 말아야 할 짓은 하지 말자. 담배를 피우지 말자. 사람을 필요 이상 만나지 말자. 밖에선 술을 마시지 말자. 퇴폐업소에 출입하지 말자. 부적절한 인간들과 교제하지 말자. 별로 각별하지 않은 동창생들에게 가식적인 말로 친절을 베풀거나 사교적인 언행을 남발하지 말자.
출근할 때마다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 오늘은 어디 가서 수배자를 잡을까 연구한다. 수배자를 한 명이라도 잡지 못하고 퇴근하는 날엔 나 자신이 원망스럽다. 좀 더 열심히 뛸 것을, 어느 순간 방심하진 않았는지 후회한다. 그래 지난 몇 년 동안 수배자를 잡겠다고 마음먹어 한 명도 잡지 못한 날이 손으로 꼽을 정도에 그친다. 수배자 검거에만 주력하고 살아서인지 세상에 오직 수배자만 보인다. 동료들은 내게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 줄 안다. 없다! 그냥 발로 뛸 뿐이다. 이 직업으로 출입할 수 있는 곳은 어디든 간다. 찜질방, PC방, 당구장, 미용실, 결혼식장, 기획부동산, 오피스텔, 빌딩 공사장, 지하상가 매장... 욕설도 숱하게 들었다. 감정이 개입되지 않는 한 민감하게 대립할 필요 없다. 수위가 지나치면 모욕죄로 처벌하면 그만이다. 나라고 육두문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운전대만 잡으면 해방되는 입인데...
* 얼마 전, 봉변을 당했다. 취객이 사무실에서 소란(난동 수준) 피우는 걸 말리다가 한 방 맞았다. 입술 안쪽이 2센티가량 찢어졌다. 인천사랑병원 응급실에서 조치 후 근무... 나와 동갑인 소띠였는데 좀 안쓰러웠다. 맞은 건 맞은 거고, 동갑나기 취객을 공무집행방해죄로 입건했다. 합의는 없음. 대신 벌금폭탄으로 국가 재무에 기여하길...
아무튼 이 땅의 수배자를 다 잡고 싶다. 여기엔 철학이 있다. 어디든 다니지만 절대 민원을 야기하지 말자. 민원인이 내 행동거지를 빌미 삼는다면 일단 내게 문제가 있다고 반성하자. 또한 목표만을 위해 정진하면서 동료 직원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철저히 지키고 싶다. 수배자 검거에 주력한다는 이유로 직원들에게 짐이 되거나 불만을 제공하는 사례가 없는지 조심한다. 당구장에서 검문을 하다가도 상황이 떨어지면 후다닥 출동해야 한다. 그래 동등한 환경에서 수배자를 많이 잡으려면 남보다 몇 배 뛰어야 가능하다. 이게 노하우다. 하루를 근무하면서 얼마나 많은 건물을 오르내리는지 모른다. 막상 수배자를 잡으면 도주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놓치면 한 순간에 도루아미타불이다. 모든 신경세포를 곤두세운다.
특별한 기지로 거물을 잡은 적도 있다. 오후 두 시경, 지원근무 나온 의경 중 단거리 육상에 자신있는 사람 손 들라하여 한 명을 데리고 지하상가로 향했다. 지하철역 개찰구를 빠져나오던 젊은이가 나와 눈이 마주치며 살짝 방향을 틀길래 이상하다 싶었는데 순간 이 젊은이가 전력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 때 내 곁에 있던 의경... 정말 잘 뛰더라! 세퍼트처럼 반응하고 쫓는데 과연 단거리 육상 실력의 진면모가 드러나는 것이었다. 젊은이를 붙잡아 조회해보니 수배내역이 시래기 다발처럼 우수수 쏟아졌다. 지체없이 사무실로 돌아와 주공자 명단에 그 의경의 이름을 넣었다. 나중에 들으니 특박을 다녀왔다고... 의경도 나도 그 날을 잊지 못할 것이다. 이런 경우 특별한 기지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 방에 걸어둔 사진이다. 2년 전, 수봉공원에 갔다가 소풍나온 유치원 아이들과 만났다. 아이들의 좋아하는 모습에 손을 흔들다가 함께있던 후배 직원의 카메라에 잡혔다. 저 사진을 보면 왠지 흐뭇하다. 하루의 피로가 사라진다.
어제도 수배 6건짜리 젊은이를 붙잡았다. 켄밴션웨딩홀 앞을 마주오는 젊은이 표정에 긴장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게 명백하여 -모자 챙 밑으로 시선을 은폐시켜 관찰하면 다 보인다-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니 수중에 없다면서 주민등록번호를 얘기하는 것이었다. 휴대용 조회기로 조회하니 특가법위반(도주차량)으로 벌금 8백만원이 수배되어 있었다. 동행을 요구하자 뭔가 석연찮은 표정이다. 남의 주민등록번호였던 것이다. 그래 비로소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받아 조회해보니 체포영장 발부 등 수배가 6건이나 되었다. 즉시 할 수 있는 조치를 다해서 사무실로 데려왔다.
현재 근무하는 지역은 인천에서 바쁘기로 둘째라면 서러운 곳이다. 전국적으로 봐도 처지지 않는다. 그래도 일할 맛 난다. 사람이 북적거리는 곳엔 이런사람 저런사람 뒤섞여있기 마련이니까. 내가 찾는 사람도 많을 수 있다. 그만큼 시장성이 열려있다는 얘기...
작년 2월, 인천지검에 불려가 -불려갔다는 표현이 어색하지만- 표창을 받았다. 수배자 많이 잡았다고 주는 상이었다. 부상은 '검찰' 로고가 찍힌 손목시계였다. 막내아들에게 채워주었다. 내겐 손목시계가 있어 별 의미가 없었다. 며칠 전, 다시 인천지검에서 표창을 받았다. 이번에도 수배자 검거 유공이었다. 금년 실적이 인천청 전체 2위였는데 1위와 3위가 각 29세와 31세인 점을 보면 51세 나이로 20세 젊은 직원을 눌렀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차장 검사실에서 티타임을 가지면서 나와 동갑이라는 차장검사가 '우리 나이에... 대단하십니다'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나 자신은 과거 삼십대 중후반 시절과 별로 다르지 않다.
올해도 손목시계를 부상으로 받았다. 골드와 실버의 투톤칼라가 매력적인 문양이었다. 기존의 시계를 끌러 집에 보관하고 부상으로 받은 손목시계로 바꿨다. 그러다가 어제 경찰서에서 오래 전부터 아는 직원과 얘기하다가 시계가 없는 걸 보고 끌러 주었다. 후배 김영일 부장, 고향은 인천이지만 외가집이 충남 아산이라며 평소 나를 각별히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릴 때 어머니가 생선장사를 하시어 자식 셋을 눈물겹게 키우셨다는 말을 하던 직원의 진실성을 잊지 않고 있다. 생선을 담은 양철그릇을 머리에 이고, 막내 여동생을 업고, 장남인 자신과 남동생을 양쪽에 거느린 채 시장통을 드나드셨다는 어머니의 생활력은 감명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렇다고 그 직원과 둘이 밥을 먹은 적도 술을 마신 적도 없다. 서로가 늘 마음으로 존중하고 아껴주면 되는 것이다. 김 부장에게 시계를 주고나니 왜 그리도 행복하던지... 손목시계는 집에 있는 걸로 족하다.
* 아끼는 시계들이다. 왼쪽은 쉐퍼 만년필 회사에서 기획한 제품이다. 만년필 문양이 있어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오른쪽은 GUESS 손목시계... 일상용으로 적합해서 좋다.
어제 오후 업무 중 윤상현 의원을 만났다. 학익동 지역구 국회의원인 윤 의원은 성실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있다. 선거 전 유세를 하면서 부득이 몇 번 상면했는데 당선이 확정된 후의 처세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지역구 곳곳에 감사의 뜻을 담은 현수막을 게시하고 이틀 가량 유세차량 위에서 방송으로 감사 인사를 드린 점이다. 답례 방송을 할 때 차를 세우자, 긴장된 표정으로 내려다보던 모습이 생각난다. 또 누가 신고해서 나온 줄 알았던 모양이다. 내가 무대 위로 악수를 청하며 '수고하셨습니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하자, 활짝 웃으며 손을 꽉 잡았다. 선거운동을 할 때부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윤상현 국회의원과 함께
마지막으로 부연하여 취미생활이나 사생활을 먼저 늘어놓으면 이로울 게 없다. 누가 묻지도 않는데 색소폰 혹은 트럼펫에 관해 떠든다면 특별한 잇점이 따르겠는가. 취미생활은 혼자만의 영역이다. 묻지 않으면 먼저 말하지 않는다. 직원 중엔 운동복 차림으로 출근하는 사람이 있는데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테니스를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지, 코트에서 운동한 츄리닝 그대로 테니스 채와 볼이 든 배낭을 메고 목에 수건을 두른 채 출근하는 태도는 한심하다는 생각이 먼저다. 산악자전거를 좋아하면 휴일 날 실컷 타라! 국가대표처럼 아래위로 차려입고 자전거 안장에다 똥구멍 문지르며 출근하지 말고... 대체 직장에 출근하는 자세가 그게 뭔가? 건물 옆으로 조용히 들어가 받쳐놓고 나오든지... 꼭 현관 앞으로 들어오며 폼을 잡는다. 과시욕에서 비롯되는 경거망동이다.
오늘은 당직근무에 지정되어 있다. 일직이든 당직이든 수배자 한 명 이상 잡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내일 아침 퇴근이 편치 못하다. 스스로 떳떳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주변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남기 위해서 오늘도 뛰고 또 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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