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눈치

펜과잉크 2011. 5. 22. 10:41

 

 

 

 

가끔 직장에서 화상회의라는 걸 한다. 중앙의 수장과 지방의 하수들이 영상을 통해 회의하는 장면을 실중계로 보여주는데 볼 때마다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 직업은 칭찬과 덕담에 인색하다. 남을 칭찬할 줄 모른다. 선행보다는 악행을 꼬집어 끝도없이 늘어놓는다. 꺼내기 거북한 말들을 왜 그렇게 오래 하는지 모르겠다. 얼른 마치고 바람직한 얼굴로 웃으며 회의를 주재할 수는 없을까? 만날 누가 잘못했느니 무얼 실수했느니 지적만 한다. 남 탓만 하다가 끝난다. 가만두지 않겠다, 도태시키겠다, 배제하겠다는 말을 선전포고하듯 내뱉는다. 회의에 참석한 지방 하수들의 표정이 전부 굳어 있다. 수장의 입에서 불편한 단어들이 쏟아져 나오니 어쩔 수 없다. 수장의 눈치만 보고 있다. 그런데 수장은 직장 내에서만 당당하고 목소리 클 뿐 외부에 처신하는 걸 보면 부복(俯伏)으로 일관된 자세를 보인다. 가족들 앞에서 큰소리 치고 밖에 나가 머리 조아리는 가장은 믿음이 서지 않는다.

 

'교양'을 받다 보면 -교양이란 말도 없애야 한다. 권위주의 산물이다. 누가 누굴 교양하는가. 다 함께 잘해보자는 일체감의 표현이어야 한다- 우리가 연일 잘못만 하고 사는 사람 같다. 수석에 앉은 사람은 불편한 심기부터 얘기한다. 누가 일을 잘하느니 친절한 인상이니하는 덕담을 떠나 주로 문제점을 발굴하여 지적한다. 이런 양상은 불신과 반발심만 증폭시킬 뿐이다. 아래 예를 보자.

 

예1)

여러분, 제가 오늘 아침 출근해서 어젯밤 당직근무한 직원들의 업무보고를 받고 한숨이 나왔습니다. 밤새 뭘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무면허 운전자 하나 단속하고 벌금 수배자 한 건 잡은 게 다입니다. 이거, 이거 좀 심하지 않습니까? 아니 밤새 여럿이 달랑 두 건 밖에 못했다는 말입니까? 다들 어디서 뭐했죠? 여러분은 동료 직원으로서 그런 생각 안듭니까?

   

예2)

여러분, 어제 하루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직원 모두 각자 맡은바 업무에 전력하신 덕에 관내에서 절도사건 하나 안 터졌습니다. 오토바이 날치기 한 건 안 터졌습니다. 교통사망사고 한 건 안 터졌습니다. 거기에 무면허 운전자 단속 실적도 올리고 수배자도 잡았네요. 여러분 모두 열심히 근무해주신 결과입니다. 이를 발판으로 오늘도 열심히 근무하십시다. 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직장이 발전하기 위한 토대 중 하나로 소신있는 행정을 꼽고 싶다. 소신을 빌미로 뚱딴지 발상을 꾀하는 게 아닌 굳은 신념 말이다. 직원들을 닥달하는 사람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타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람으로밖에 안 보인다. 해바라기처럼 위만 지향한다.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지휘관이 바뀔 때마다 '존경'이니 '충심'이니 하는 말들을 남발한다. 가증스런 위선자... 도대체 몇 명을 존경하고 몇 명에게 충심을 보이는가? 

 

예전의 어느 검사 말씀이 생각난다.

'그 직장은 왜 그렇게 남의 눈치를 봅니까? 눈치에 죽고 삽니까? 업무를 정당히 처리했는지 여부가 중요하지 남의 눈치가 중요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