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한식

펜과잉크 2011. 5. 8. 02:23

 

 

 

 

할머니의 친정, 그러니까 전주이씨(全州李氏) 집안이 우리 마을에서 누리는 위상은 대단했다. 할아버지는 청양 청남면에서 우리 고향 전주이씨 집안 데릴사위로 오시면서 할머니와 연을 맺으셨다. 할머니 집안은 부를 축적한 가문이었는데 할아버지의 바람기로 다툼이 잦았다. 할아버지는 근사한 붓글씨로 서간문을 써서 아랫마을 과부와 사랑을 나눴고, 훗날 처남댁과도 -할머니 올케- 은밀한 관계로 변질되어 전주이씨 집안과 우리 집안이 대립되는 불씨를 자초하셨다. 할아버지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하셨던 할머니는 '올케가 시누이 남편에게 꼬리를 쳤다'시며 외려 동생의 배우자를 원수처럼 생각하셨다. 그쪽 할머니가 젊은나이에 홀로 사시면서 -할머니의 남동생 되는 할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다- 우리 할아버지를 좋아하신 것 같은데 요즘 상식으로도 이해되지 않는 부적절한 관계로 오랜 세월 마을에 소문이 자자했다. 내 기억에도 할머니의 올케되는 그쪽 할머니가 우리 할아버지(시누이 남편)을 많이 좋아하신 것 같다. 가끔 내가 놀러가면 꼭 '할아버지는 뭐 하시니?'하고 물으셨던 기억을 반추하면 말이다. 나는 속없이 집에 와서 할머니 앞에 그 얘기를 흘렸으며 그럴 때마다 할머니의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음을 훗날에야 짐작할 수 있었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신혼시절 큰집에 여우살이하시면서 할아버지의 바람기를 훤히 아셨단다. 할아버지가 뭔가를 숨기고 헛간 뒤편에 가셔서 있다 오시곤 하여 아무도 없을 때 헛간 뒤쪽을 살핀 바 서까래 틈새에 아랫마을 과부랑 주고받은 붓글씨 연서가 수두룩하더란다. 꼬깃꼬깃 접어 서까래 틈새에 꽂아 숨겨놓은 연애편지 말이다. 어머니는 한동안 시아버지 연애편지 훔쳐 읽는 낙으로 사셨다고... 말씀하실 때마다 웃으신다. 둘째아들까지 - 내 아버지- 장가 보낸 마당에 과부랑 사랑을 나누셨다니 그 열정을 짐작할 수 있다.

 

한 고을을 주름잡던 전주이씨 집안의 후손들이 모두 서울로 나가게 되었다. 아버지는 외가측 한식을 이십 년 넘게 맡아 차리셨다. 어머니는 이 점을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하셨다. 외가 한식 음식을 도맡은 내막에 대해 그 집안의 속물이라며 폄하하셨다. 할머니 친정, 그러니까 아버지 외가인 전주이씨 집안엔 나와 동갑인 경구가 있는데 어머니는 내가 경구보다 모든 면에서 앞서길 바라셨다. 이 점은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성적표를 받아오면 내 성적을 확인하시고 꼭 경구의 성적을 물으셨다.

 

아버지 입장에선 오직 외가 일이니 다른 이해관계가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이런 행적 또한 인근 고을에까지 알려져 있었다. 한식이 되면 전주이씨 집안 후손들이 고향에 내려와 아버지가 준비하신 음식으로 조상님 산소에 예를 올리곤 했다. 전주이씨 집안에서도 아버지는 덕인으로 소문나 있었다. 이십 년 넘게 초심이 흔들리지 않은 점을 높이 평가했으리라.

 

전주이씨 후손 경구는 우리 아버지 항렬과 같아 엄격히 따지면 내가 아저씨라 불러야 맞다. 그런데 이 나이에 이르러서도 왠지 '아저씨'란 말이 나오지 않는다. 어려서 불알친구로 지낸 마당에 '아저씨'란 말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경구는 오늘날 서울 미아리 모 중학교 교사로 있다. 이년 전 내 수필집을 보내주면서 짤막한 서간문을 동봉했다. 내용을 더듬으면 아래와 같다.

 

'경구, 잘 지냈는가? 나도 잘 있네. 이번에 내 수필집이 나와 자네에게 보내네. 자네는 어려서 각별한 친구였지. 엄격히 따지면 자네는 우리 아버지와 같은 항렬이라 내가 아저씨로 받들어 모셔야 하건만 '아저씨'란 말이 안 나오네. 그러니 그냥 친구처럼 살아가면 안되겠가... -이하 略-'

 

편지를 써서 함께 보냈더니 지금까지 답장은 커녕 전화 한 통 없다. 어쩌면 경구 자존심에 상처가 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릴 적 친구를 '아저씨' 급으로 받들어 모신다는 게 쉽지 않다. 우리 집안의 위신이 전주이씨 집안에 눌리는 것 같아서도 싫다. 혹시 전주이씨 집안은 이십 년 넘게 한식을 도맡아 차려준 아버지를 자신들의 속물로 여기긴 않았을까? 그런 연장선에서 나까지 업신여기진 않을까?

 

한식날, 고향 다녀가면서 경구는 우리집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죽마고우였던 나를 회상하기보다 평생 외가 어른들을 깎듯이 공경했던 내 아버지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다시 한 번 다져주길 바란다. 혈육과 배우자의 무수한 반대에도 무릅쓰고 오롯이 외가 조상님들을 경배했던 내 아버지의 은덕에 관해 추억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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