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후배 직원에게 물었다.
"4월 들어 오늘까지 우리 둘이 잡은 수배자가 몇 명이지?"
"스물한명입니다."
직장의 높은 분은 내게 수배자 많이 잡는 재주를 직원들에게 강의하라 하신다. 시간을 내주시면 특별한 노하우를 전수하겠노라 말씀드렸다. 직원들에게 강의할 기회가 오면 다음과 같이 역설할 것이다.
--- 다음 ---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께 수배자 잡는 노하우에 관해 말씀드리고자 나왔습니다. 제가 사월들어 오늘까지 후배 직원과 둘이 잡은 수배자가 스물한명입니다. 여기엔 저만의 노하우가 있습니다. 열심히 쏘다니는 것입니다. 쏘다닌다는 표현이 어떨지 모르지만 후배직원과 휴대용 조회기 한 대씩 들고 닥치는대로 돌아다닙니다. 길 가는 행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PC방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기원에 들어가 양해를 구하고, 다방, 양복점, 게임방, 시계점, 마사시숍, 찜질방, 건강식품 대리점, 부동산 사장님, 주차관리원, 식당 종업원, 휴게텔 업주과 손님 모두 양해를 구하는 대상이 됩니다. 더러 아들 같은 놈한테 비아냥도 듣습니다. 뒤통수로 짭새라는 욕이 날아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한쪽귀로 털어버리면 그만입니다. 냉소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기엔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또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여기서 주춤거리는 사이 다음 장소의 거물 수배자가 빠져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그래 또 열심히 다닙니다.
남보다 부지런히 뛰어 남보다 나은 실적을 올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체력입니다. 여기저기 건물을 옮겨다니다보면 다리가 휘청거릴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힘내십시오. 뛰는만큼 결과가 따를 것입니다. 어쩌면 이 직업도 세일즈맨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고객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뜻한 바 목적을 이루어 내는 것! 이 말씀을 왜 드리느냐 하면 저는 수배자 검거를 위해 다니면서 절대 민원을 야기하지 말자는 신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 지난 몇 년 간 많은 수배자를 검거하면서도 단 한 건의 민원도 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딱 한 번 있었네요. 정신이 이상한 아가씨가 경찰관을 사칭한 사람들이라고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확인해보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건 뿐입니다. 수배자를 몇 명 잡았냐고요? 작년 한 해 잡은 수배자가 150명 가량 됩니다. 그 중 몇은 동료 직원들에게 나눠 줬고요. 한 달에 한 명 못잡는 동료 직원들이 안쓰러워 돌아가며 분배해줬습니다. 그렇다 해도 작년에 제 이름으로 보고된 수배자가 130명 가량 됩니다. 재작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작년말 아들과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건 바로 검거우수자로 뽑힌 결과입니다.
여러분, 업무를 행하는 시간만큼은 용기를 가지십시오. 가끔은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방법도 추천해드립니다. 가령 당구장에 들어서 일행과 함께 당구를 치고 있는 젊은이들을 봤다면 그들을 설득시켜 신분증을 건네받아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당구장 생리라는 게 아는 사람끼리 술 한 잔 마시고 게임을 즐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장소보다 민원 야기 소지가 아주 높지요. 이럴 경우 먼저 업주에게 다가가 정중히 예의를 갖춘 후 양해를 구합니다. 깎듯이 예의를 갖추는 경찰관을 보면서 손님들은 뭔가에 순간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이건 분명합니다. 아무튼 업주로부터 양해를 구했다면 차분히 한 명 한 명 조회를 해나가세요. 사람마다 깎듯이 인사를 드리고요. 그 와중에도 경계의 눈빛을 흐트러트리면 안됩니다.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이 있는지, 화장실쪽으로 피하는 사람이 있는지 경계하면서 일을 추진해내갑니다. 당구장에서 특별한 잡음없이 모든 손님들을 조회했다면 당신은 일단 성공한 케이스입니다. 패들이 몰려있는 공간에서 그들의 기선을 제압하고 본연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한 셈이니까요.
사족으로 두 가지만 말씀 드립니다. 업무 중일 땐 업무에만 주력하세요. 동료직원에게 개인의 사적인 취미생활을 강조하거나 자랑하는 언동은 금물입니다. 상대가 진지하게 물어오지 않는데 먼저 힘주어 말하는 건 자기관리에 역효과를 불러오기 쉽습니다. 사적인 통화가 잦은 것도 자기관리에 마이너스 요인이 됩니다. 어디론가 휴대폰 문자를 전송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직원들은 동료이지만 경쟁자입니다. 경쟁자의 눈엔 상대의 결점이 더 크게 부각되기 마련입니다. 함께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부지런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야 그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아침에 출근하면서 오늘은 어디 가서 또 수배자를 잡을까 생각합니다. 오전엔 PC방에 들리지 않아요. 손님이 거의 없는 시간엔 움직이기가 아깝습니다. 충분히 아껴뒀다가 정오 넘어 들리는 거지요. 조회기에서 수배중임을 알리는 점등 표시가 뜰 때의 흥분은 쉽게 형언하기 어렵습니다. 하긴 이런 강의도 오늘 이 자리뿐입니다. 왜냐구요? 다들 제 수법을 써먹으면 제 활동 입지가 좁아질테니까요. 그리 아시고, 절대로 민원 야기하지 마시고 수배자 열심히 잡으십시오. 말처럼 쉽지 않으나 못할 것도 없습니다. 휴대용 조회기에서 수배중 표시가 뜨면서 짜릿한 손맛이 온몸을 전율시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