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까치房>을 전제로

펜과잉크 2011. 5. 9. 00:26

 

 

 

 

인문계 문과반 3학년이던 1979년은 입시준비에 여념이 없었지만 문학서적도 쉴 새없이 읽었다. 대부분 소설책이었다. 이정환 님의 <까치房>과 천승세 님의 <黃狗의 悲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이 두 권의 책은 지금까지 열 번도 넘게 읽었다. 이정환 님의 <까치房>은 암담한 수인생활, 남사당패의 기막힌 사연, 변두리 인생의 고달픈 나날 등 저자 자신의 독보적 체험세계를 특이한 유머와 번득이는 안광으로 포착해낸 걸작이다. 「까치방」「독보꿈」을 포함해 주옥 같은 단편 19편이 실려 있다. 어느 작품도 빼놓을 수 없다. 「거대한 악령「영기(令旗)「사냥」같은 소설도 아주 인상 깊었다.

 

단편소설「사냥」엔 돈께나 쓰고 사는 시골 영감탱이들이 진디(뱀)을 사냥하면서 갈숲에 버린 어린아이 사체를 과녘삼아 활을 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늙은이들은 동정(童情)까지 밝힌다. 내가 이정환 님의 <까치房> 얘기를 꺼낸 시초가 여기에 있다. 개인적으로 고향의 구전민담이나 풍습을 채집해오면서 의외로 동정에 연관된 늙은이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대개 부자 소리를 듣는 사람이었는데 동정이란 다름 아닌 남아(男兒)를 가지고 노는 걸 말한다. 달빛 휘영한 밤에 저수지둑 같은 데에서 동네 아이를 불러내어 동전을 쥐어주며 자신의 귀두를 빨게 하거나 심지어 항문 삽입으로 탐닉하는 짐승들이 있었다. 지적하라면 누구 할아버지부터 정확히 짚을 수 있으나 여기선 거론하지 않겠다.

 

성적도착증(性的倒錯症, sexual perversion) 환자에 가까운 늙은이들은 상대 아이가 누구든 가리지 않았다. 나는 믿을만한 사람으로부터 달밤에 낯짝에 분을 처바르고 저수지둑께로 향했던 '남아'들에 관해 들었다. 앞으로 고향을 소재로 글을 쓰면서 이 부분을 어떻게 각색할지 고민이다. 달밤에 저수지둑에서 몇 늙은이 아랫도리를 빨았던 순진했던 '남아'들에 관한 부분 말이다.

 

인간이 금수와 다를 게 없다. 수컷 말이 암컷 당나귀 혹은 수컷 당나귀가 암컷 말과 교접하여 노새를 출산하는 경우가 있되 그들은 반드시 자웅이 교접하는 이치를 역행하지 않는다. 하물며 인간은 수컷끼리 씹애를 나누고 암컷끼리 교성을 내지른다. 이런 걸 보면 남성과 여성이 만나 정상적인 행위를 나누는 일은 극히 정상으로 여겨진다.

 

양반사회가 붕괴되던 조선 후기 양반 게딱지가 마작하러 떠난 한나절에 머슴의 새참을 들고 검산골로 향하는 마님의 모습이 그려진다. 마님은 머슴이 새참을 먹는 사이 밭고랑 작업 진척도를 살피기도 하지만 땀에 젖어 벌렁이는 머슴의 앞가슴도 빼놓지 않는다. 마님의 유사한 눈빛 두어번으로도 머슴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마님은 사력을 다해 뿌리치지만 이미 늦었다. 머슴은 이미 아랫도리 경계를 허물고 폭풍처럼 살속으로 파고 든다. 마님은 삼돌씨가 절대 입을 열지 않으리라 믿고 양반 게딱지가 마작하러 갈 때를 기다려 두견주를 따라갖고 검산골로 향한다. 곧 양반문서가 거래되고 상놈층이 사라지는 전초로 이어진다.

 

한편 이정환 님의「사냥」에선 갈대가 바람에 우우 옆으로 누운 사이 머리를 빳빳이 쳐들고 빈정대는 진디(뱀) 모습이 형상화된다. 진디가 사냥꾼을 놀리는 것 같다. 갈숲을 스스스 내달리며 늙은이들 아랫도리로 댓쉬하는 형상이다. 갈숲에 내던져진 애장의 혼이 진디로 환생하여 지척의 반짝이는 고깃덩어리로 몰려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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