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광영 교수님의 <이 계절의 좋은 시>를 읽었다. 정독은 이미 했고, 틈틈이 펼쳐 읽곤 한다. 그야말로 '좋은 시'로 꾸며졌기 때문이다. 책 46페이지에 실린 박제영 시인의 <진부>는 진부령이 있는 마을의 지명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진부리이다. 교수님 서평엔 강원도 평창군 지명으로 묘사됐는데 아마도 영동고속도로를 다니시며 '진부'라는 지명을 혼동하신 것 같다.여기서의 '진부'는 강원도 인제군과 고성군이 경계하는 진부령 아래 마을이다.
진부령에 관해 잠깐 소개하자면 강원도 인제와 원통을 거쳐 용대리(백담사 입구 마을) 만해시인학교 앞 도로를 지난 뒤 용대3리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틀면 나온다. 용대3리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가면 미시령이다. 작품 <진부>의 1연 첫행 '미시령 터널이 생기고부터 진부령은 진부해졌다'는 미시령 터널이 생기고부터 무용해진 진부령을 통해 현대인의 약삭빠른 내면을 꼬집고 있다.
진부령에서 국내 유일의 자연설 스키장 '알프스'로 갈 수 있다. 진부령 왼편 부대를 경유해 향로봉으로 오르는 비포장 도로는 군사지역으로 통제를 받기에 완전 개방이 안된 걸로 안다. 내가 말하는 지역은 Daum 스카이뷰 혹은 네이버 위성사진으로 검색이 불가하다. 군사보안에 해당되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진부령에서 알프스스키장에 가려면 가파른 고개를 넘어야 한다. 고개 너머 첫 마을이 흘리라는 지명이다.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흘리이다. 흘리는 6.25때 피난 나왔다가 국군의 북진을 따라 고향으로 올라가려던 이북민들이 피아간 접전에 막혀 정착한 피란민촌이다. 속초도 한국전을 통해 급격히 비대해졌다. 얘기가 그렇고, 흘리엔 논이 없다. 알프스스키장이 생기기 전만 해도 진부령을 통해 달구지 정도만 겨우 다니는 오지였다고 한다. 지금도 흘리는 촌락의 전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다만 스키장의 성업과 관련 장비 대여점의 난립으로 일대가 어수선해진 게 안타깝다. 진부령에서 흘리 마을 뒷편 산길을 이용해 미시령쪽으로 향하노라면 세상에 그런 오지가 없다. 인적이라곤 길잃은 등산객이 남긴 소로 족흔뿐이다. 그 길도 울창한 수림으로 종종 끊긴다. 중간에 용대리 창바위로 향하는 갈랫길이 있고, 미시령 북단으로 향하는 험로가 나오는데, 미시령 북단 험로를 택할 경우 혹독한 과정을 각오해야 한다. 방향만 짐작하고 진로를 개척해나가야하는 곳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미시령 북단의 장엄한 산세는 새삼 나열할 필요가 없다.
서두가 길었다. 제목에서 풍기는 바와 같이 지금까지는 여담이다. 실제 여담(餘談)의 본뜻과는 다르니 일종의 감미정(당원)인 셈이다. 내가 말하려는 건 지금부터다. 오늘은 '감투'라는 직책에게 요구되는 공익성과 공동체 의식에 관한 문제이다.
인천문협엔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운 사람이 상호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회원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있고, 굴포문학처럼 '우리따로또다시' 형태로 군(群)을 이뤄 밀렵꾼처럼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어느 형태이든 인천문협이란 단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려면 회원 개인은 물론 감투(회장단 및 이사진과 사무국 종사자 포함)를 쓴 사람들의 처세가 중요하다. 특히 '감투'를 쓴 사람들의 언행은 달리 논할 여지가 없다. 때에 따라 일거수일투족이 파급효과로 직결된다 해도 과언 아니다. 그럼에도 어느 감투를 보면 나태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애매모호한 문체는 내가 지향하는 바가 아니므로 투명한 직접적 어법으로 부연하겠다.
얼마전, 인천문협 이미란 회원이 <내 남자의 사랑법法>이란 시집을 냈다. 이미란 시인은 1962년생으로 굳이 따지면 나보다 한 살 아래이다. 강원도 양구생으로, 이 분의 고향이 양구인 것은 부친이 양구에서 군무(軍務)했기 때문이다. 이미란 시인의 작품속엔 양구에서의 어린시절이 곳곳에 노른자처럼 숨어있다. <내 남자의 사랑법法> 24페이지 '푸른 경례1'의 마지막 연 '연병장을 울리는 병사들의 힘찬 구령 소리가/ 지프차에 올라앉은 검은 선글라스 속으로 달려든다/ 나도 그들을 따라 차렷! 경례! 힘차게 외치며/ 떠나버린 유년의 해 저문 푸른 들판 위를 달려간다'를 통해 함축되는 그림이 곧 이미란 시인의 어린시절이다.
소녀의 아버지는 고급 장교이다. 지프가 제공되는 보직이니 대대장 아니면 연대참모쯤 될 것이다. 정훈장교일 수도 있다. 그는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부대로부터 제공된 지프를 타고 다닌다. 가끔 어린 딸이 지프에 동승한다. 교육이나 훈련이 없는 날, 사적인 용무로 딸을 태우고 다니기도 한다. 지프가 영내에 들어서면 여기저기 병사들의 경례소리가 들린다. 지프의 '검은 선글라스'보다 딸의 표정이 마치 자신이 경례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설렘과 흥분으로 변해간다.
이미란 시인의 <내 남자의 사랑법法>은 '정품(正品, genuineness)'이 고갈된 인천문협에 오아시스나 다름없는 획기적인 반향을 제시하리라 믿는다. 어쨌든 인천문협에 명쾌한 선을 그은 공(功)을 부인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내 남자의 사랑법法>을 읽으면서 이미란 시인이 시를 이렇게 잘 쓰는 줄 미처 몰랐다. 언젠가 KBS1-TV '책 읽는 밤'에 출연하여 토론하는 걸 보고 다양하게 활동하는 분이구나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물론 그 분의 처녀시집을 안 읽은 건 아니다. 분명한 건 <내 남자의 사랑법法>이 처녀시집과는 획일적이지 않은 또다른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 추세라면 연말 인천문학상 후보작에 이미란 시인의 <내 남자의 사랑법法>이 독보적인 자리에 오르지 않을까 진단하는 바이다. 2002년 임노순 씨가 제14회 인천문학상을 수상한 걸 끝으로 현재까지 시분과 회원의 수상이 한 명도 없다는 점 또한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2007년 제19회 이동렬 씨는 아동문학, 2008년 제20회 류종호는 수필, 2009년 제21회 이목연 씨는 소설, 2010년 제22회 이성률 씨는 아동문학이었다.
이미란 시인의 <내 남자의 사랑법法>을 바라보는 회원들의 입장도 다르지 않을 거라 믿는다. 이미란 시인의 시가 전체적으로 안정된 흐름을 보이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회원들의 축하와 격려가 쇄도했고 온라인상에서도 댓글을 통해 축하해주는 회원들이 줄을 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인천문협 회원으로서 인천문협 회원 경사를 축하해주는 게 말이다. 문광영 교수님이 '인천문협'이란 닉네임으로 올린 축하글을 읽으면서 흐뭇해했을 회원들이 많았으리라 믿는다. 사람의 감정이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한 가지 눈살 찌푸리게 하는 현상이 보인다. 조영숙 사무국장의 안일한 처신이다. 인천문협 사무국장 직책을 맡고 있으면서 댓글 한 줄 달지 않았다. 이게 과연 바람직한 자세인지 조영숙 사무국장에게 묻는다. 두 사람 사이 어떤 좋은일, 혹은 어떤 서운한 일이 있었는지는 알고 싶지 않다. 설령 이해관계에 있다 할지라도 -딱히 이해관계에 있을 일이 뭐 있는가- 인천문협 회원으로서, 아니 인천문협 사무국 소속 직책으로 회원의 경사에 축하글 하나 쓸 수 없단 말인가? 잘못 됐다. 개인간 불협화음이 있다 할지라도 공익 우선과 공동체 의식을 갖춰야 할 사람으로서 적절한 태도가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항간에 내가 이미란 시인과 각별한 사이로 오해할지 모르나 개인적으로 오프라인에서 따로 만난 적이 없다. 단지 이미란 시인의 시가 좋고, 그 분이 인천문협에서 활동한 전력으로 평가할 때 중진회원으로 대접받을 충분한 위치에 있는 분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미란 시인의 블로그가 네이버에 있다 들었으나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오늘 글은 첫째 내 개인의 입장이 반영되었고 주변의 문인과 지인들의 의견을 수렴했음을 밝힌다.
덧붙여 전문에 이미란 시인과 조영숙 사무국장 사이 모종의 일이 있었을 것이란 추측은 지난번 어느 글에 달린 이미란 시인의 댓글로 유추 가능했다. 한때는 문학동인으로 활동했던 사이 아닌가? 이미란, 조영숙, 배선옥, 박경순, 백서은... 일부 잘못 거론했을 수도 있으나 대략적인 인맥이 그런 줄로 알고 있다. 아무튼 어떤 직책에 있는 사람은 사적인 감정을 떠나 공동체적 입장에서 판단하고 행동할 일이다.
언필칭 사람의 감정은 상대적이다. 베푼만큼 돌아온다는 뜻이다. 여기서 잠깐 윤흥길 교수의 <완장>을 언급하겠다. 땅투기에 성공해 기업가로 변신한 최사장은 저수지 사용권을 얻어 양어장을 만들고 그 관리를 동네 건달 임종술에게 맡긴다. 적은 급료였지만 완장을 차게 해준다는 말에 귀가 솔직해진 종술은 관리인으로 취직한다. 노란 바탕에 파란 글씨가 새겨진 감시원 완장... 그 서푼어치 감투(완장)를 쓴 종술은 낚시질하는 도시 남녀들에게 기합을 주기도 하고 야밤에 도둑고기잡이를 하던 초등학교 부자를 폭행하기도 한다. 완장의 힘에 빠진 종술은 면소재지에 나갈 때에도 완장을 두르고 활보한다.
완장의 힘을 과신한 종술은 급기야 자신을 고용한 최사장 일행에까지 행패를 부리고 결국 관리인 자리에서 쫓겨난다. 하지만 해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종술은 저수지 지키는 일에 몰두하다가 가뭄 해소책으로 '물을 빼야 한다'는 수리조합 직원과 경찰과도 부닥친다. 그 과정에서 열세에 몰리자 종술은 '완장의 허황됨'을 일깨워주는 술집 작부 부월이의 충고를 받아들인다. 종술이 완장을 저수지에 버리고 부월이와 함께 떠난 다음날 소용돌이치며 물이 빠지는 저수지 수면에 종술이 두르고 다니던 완장이 떠다닌다. 그 완장을 종술의 어머니 운암댁이 조용히 지켜보는 걸로 소설은 막이 내린다.
작건 크건 권력을 쥐면 업무 외적인 부분에까지 사용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속물적 근성을 극명히 표현한 작품이다. 감투를 씌우는 것은 그 자리에 맞는 역할을 하라는 것이지 자리 자체를 즐기고 오만해지라는 뜻이 아니다. 무엇보다 오버하지 않는 자세, 지금이나 나중이나 한결같은 초심이 중요하다. 인천문협 까페 자유게시판에 임종술의 '하빠리' 완장의 안하무인에 대해 다시 논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이만 글을 맺는다.
'雜記 > 이 생각 저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아, 김성섭 부대장님 (0) | 2011.06.25 |
---|---|
두 가지 단상 (0) | 2011.06.22 |
현직 경찰간부 "살인적 등록금 남 일 아니다" 심경 고백 (0) | 2011.06.09 |
[J 스페셜 - 월요인터뷰] 검찰과 신경전 조현오 경찰청장 (0) | 2011.05.30 |
눈치 (0) | 2011.0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