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다면적 체험을 근거로

펜과잉크 2011. 9. 28. 15:50

 

 

 

 

직장의 월보 편집을 맡아 한 적이 있다. 사무실 근처에 전통이 깊은 출판사가 있어 거기서 월보를 찍기로 했다. 그래 사장님께 인사드리러 갔더니 이 분이 내 이름을 기억하시는 것이다. 그 출판사는 오랫동안 지역의 모 문학회 문예지를 찍어내기도 했다. 지면에서 이름을 보신 걸까? 그럴지도 몰랐다. 사장님은 월보와는 별도로 명함을 선물로 찍어주겠다시면서 손수 커피를 타 주셨다. 나는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해당 문학회 회장님 존함을 꺼냈다. 그랬더니 사장님 안색이 싹 변하면서 혼잣말로 내뱉았다. 나는 분명히 들었다.

'그 새끼...'

사장님이 내뱉은 말이었다.

 

사무실을 향해 걸으면서 솟구치는 의문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거래해온 문학회 회장에게 '그 새끼'라니? 어쩌면 사장님이 내뱉은 '그 새끼'는 두 사람간의 불편한 거래를 시사해주는 암시일지도 몰랐다.

'우리 문예지 1천부를 찍는데 드는 비용이 도합 5백만원이라 하셨죠? 4백만원으로 다운시킵시다. 내가 당신 통장으로 5백만원을 입금시킬테니 책을 받는 날 현금으로 1백만원을 돌려주세요. 물론 영수증엔 5백만원이라고 쓰셔야 합니다.'

그런 상상도 가능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오랜 세월 이어온 단골 고객에게 '그 새끼' 소리를 할 사장이 있을까?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끝이 없다.

 

방향을 약간 틀어 지역문단에 관한 이야기다. 지역문단의 지난 20년 역사를 보면 -역사는 그보다 더 깊지만- 전임회장들의 어정쩡한 처신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회장직을 그만 두면 곧 협회와 발을 끊는다. 회장뿐이 아니다. 그 아래 참모 역할을 수행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몇 년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세월이 흐른 후 슬그머니 출현하는 것이다. 언뜻 보면 자정하고 근신하다 나타난 사람들 같다.

 

- 어릴 적에 이웃마을 과수원으로 서리를 다닌 적이 있다. 친구들과 침투조를 만들어 과수밭에 들어가 설익은 사과와 배를 자루 가득 따 어깨에 메고 빠져나왔다. 서리를 하고나면 당분간 과수원 근처엔 가지 않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일주일쯤 지나 아무 소문이 안들리면 다시금 과수원집 바깥마당에 가서 거기 모인 친구들과 함께 놀았다.-

 

부평의 오래된 여류문학회가 생각난다. 이 문학회엔 초기부터 줄곧 한 분의 지도교수가 계시다. 그런데 2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잡음이라는 게 없다. 여자들만의 모임이다보니 크고작은 소문이 있을 법도 한데 귀 기울일만한 동향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문광영 교수와 김진초, 이목연, 양진채... 그런 분들이 좋다. 모두 인천문협의 회원들이다. 그 분들에겐 한결같은 뭔가가 있다. 개인적으로 문광영 교수와 연1-2회, 김진초 씨와 연2-3회, 이목연 씨와 연1-2회, 양진채 씨와 연3-4회의 통화를 하는 정도이지만 인천문협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본 그들은 쉽게 부화뇌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회장이 바뀌면 함께 잠적하고, 집행부 업무에 불만을 토로하고 은둔하다시피하는 가벼운 사람들과는 달랐다. 그러니까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한 번만 마음 주면 변치않는 여자가 정말 여자지'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한때 김진초 씨를 달리 인식한 적이 있다. 주사와 직설적인 어투가 취향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가만히 보니 그 또한 그 분만의 색깔이었다. 각자의 다양성을 인정해주자면 그 분의 색깔도 인정해야 마땅하다. 개인적으로 볼때 김진초 씨는 의리가 있다. 예컨대 김진초 씨 입에서 발설된 말이 씨앗이 되어 분란을 초래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가령 문협의 뒤풀이 같은 데에 가면 은근히 김진초 씨 옆에 앉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자리를 살피느라 두리번거리면 으례 그 분이 '여기 자리 있어요'하신다. 수저를 챙겨주시고 식기를 바로놓아주신다. 술을 따라주시기도 한다. 인간적인 다정함과 따스함이 느껴진다. 이런 소리를 하면 사람을 알고하는 소리냐 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난 다른 사람들을 겪어보지 않아 김진초 씨 외엔 말할 입장이 못된다.

 

긍정적인 사고에 관해 언급하고 싶다. 1960년대 중반 미국 듀크대 의대 정신과 연구팀이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입학생 6,958명을 상대로 다면적 인성검사(MMPI) 실시 후 2006년까지 40년간 추적조사한 결과 가장 긍정적인 태도를 지닌 2,319명이 가장 부정적인 태도를 지닌 2,319명보다 평균 수명이 42% 더 길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2004년 예일대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서도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부정적인 사람보다 7.5년 더 오래 살았다는 보고가 있었다. 또한 긍정적인 사람은 청력(聽力) 소실과 같은 노인성 질환 발병률도 낮았다고 한다. 긍정적인 태도는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졸 수치를 낮춰 면역성 질환, 알츠하이머병, 심장병 등에 걸릴 확률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본문의 모두가 어쨌든 결론은 긍정적인 사고로 살자는 것이다.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혁명군처럼 고군분투하는 식은 곤란하다. 대상을 특정해놓고 끝없이 비난하는 것도 반성할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이스라엘 2대 왕이었던 다윗이 세공인을 불러 주문했다.  

"나를 위해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되 거기에 내가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둬 환호할 때 교만하지 않게 하고 절망에 빠져 낙심할 때 결코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으라."

세공인은 적당한 글귀를 찾아내지 못해 지혜롭기로 소문난 솔로몬 왕자를 찾아 도움을 청했고 솔로몬 왕자는 다음과 같이 일러줬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링컨의 좌우명이기도 했던...

'이 또한 지나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