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개미상회 탐방기

펜과잉크 2012. 3. 2. 01:08

 

 

 

동인천 개미상회에 갔습니다. 오래 전부터 아는 집입니다. 중앙시장 영일사와 개미상회 사장님 모두 20년 넘게 아는 분들입니다. 두 분의 공통점이 밀리터리 아이템을 취급하십니다. 저는 그게 좋거든요. 어제는 개미상회로 미국 본토에서 건너온 버드와이저 캔맥주를 사러 갔습니다. 24캔들이 한 박스에 35,000원을 받더군요. 고향으로 부칠 택배비 5,000원 포함 도합 40,000원을 지불했습니다. 24캔들이 35,000원이니 1캔당 1,460원꼴인 셈입니다. 돈을 아끼자는 심사에 제 방의 밀리터리룩 중 안입는 자켓을 걷어다 이순택 사장님께 드리니 10만원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돈에서 4만원을 지출했습니다. 솔직히 제 옷들이 필요 이상 많거든요. 카메라로 사진 찍어 사이트에 올리면 20만원도 더 받을 수 있지만 보통 일이 아닙니다. 아무튼 앞으로도 옷을 좀 줄일까 합니다.

 

캔맥주는 고향의 구이장님 이정구 씨께 부쳐드릴 것입니다. 이정구 씨는 저희보다 열 살 가량 연세가 많습니다. 얼마 전까지 고향 이장님이셨어요. 그 분이 이장으로 재직하시는 6년 동안 고향이 획기적으로 발전했습니다. 구석 구석 도로를 넓히고, 험난한 밤나무 단지 사잇길도 포장을 해주셨습니다. 아버지 계실 때 고향에 가면 '이정구 이장' 치적에 관해 들려주셨습니다. 이장 직위에도 소탈한 성품으로 고향 위해 노력하는 점을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저희 부모님과의 관계도 아주 좋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에도 구이장님은 저희 어머니께 아주 잘하십니다. 안방 마님께서도 마찬가지이구요. 객지 나와 살면서 제 부모님께 잘해주시는 분들만큼 고마운 분이 없지요. 그래 그 분께 맥주 한 박스 보내드리려구요. 농번기에 밭고랑 흙을 찍다가 내외분이 밭가에서 휴식을 취하시며 캔맥주 한 개씩 나눠 드시면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하늘나라 계신 아버지께서 내려다 보시고, '그려, 정구! 잘 지내지이? 나는 이곳서 자네 을쓴네도 뵙고 이렇게 무탈허다네. 우리 종호가 보낸 보디와이져 캔맥주 참 시원허지이?' 하실 것만 같습니다.

 

문득 아버지를 강남병원에 모시고 갔을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의사의 진단을 받고 힘없이 고개를 떨구시던 아버지... 어머니께서 큰소리로 말씀하셨지요.

"당신답지 않게 그러셔? 요즘 의술이 얼매나 좋은디... 애들 생각해서라도 꼭 건강해져서 집에 갑시다."

 

중환자실에서 의식을 회복하시던 아버지는 간호원의 손을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아가씨, 저 좀 살려주세요' 하셨지요. 아버지는 여섯시간의 대수술에도 불구하고 고향집으로 가신 지 채 두 달을 넘기지 못하셨습니다.

 

일 년, 이 년, 삼년...

이제는 아버지에 관한 모든 것들이 소중히 인식됩니다. 아버지가 사신 집, 아버지의 숨결과 체취가 배인 중절모와 패스포드... 평소 아버지께 깎듯이 하셨던 분들께 이제는 제가 잘 해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틈틈이 한 분 한 분 떠올립니다. 어느 분도 무심히 지나치고 싶지 않아요. 얼마 전엔 미군부대 지급품인 면내복과 군용혁띠, 미조종사용 가죽장갑, 군용양말 세트를 고향으로 보내 드렸습니다. 값을 떠나 충남 부여군에선 평생 만져보지 못할 물건들이니 한 번 써보시라는 취지에서입니다.

 

아아, 이제 생각을 걷고 조용히 취침에 임할 시간입니다. 저 혼자 열심히 떠드는 거실의 TV를 끄고, 주방 불도 끄고요.

 

 

 

버드와이저 24캔들이. 국산 버드와이저가 약간 씁쓰름한 맛이라면 본토 버드와이저는 좀 더 부드러운 맛에 풍부한 거품이 특징입니다.

 

 

 

 

 

개미상회에서 밀리터리 마니아들과... 제가 입은 상의가 B-15D 자켓입니다. 겉감에 불염제가 섞이고 내용물이 양털 소재라 무척 따뜻합니다. 하의는 독일 MILTEC社 제품입니다. MILTEC社도 근래 중국 OEM에 의존하는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어쩔 수 없지요. 군화는 사계절용 미군 전투화로 바닥에 철판이 깔린 제품입니다. 지뢰 폭발시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발상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가죽의 재질이 좋은 군화이지만 역시 단종됐습니다. 앉은 분의 상의가 U.S NAVY 고어텍스 신형 자켓이구요. 기능성이 탁월한 자켓입니다.   

   

 

 

 

'雜記 > 이 생각 저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값진 경험  (0) 2012.03.13
에필로그  (0) 2012.03.09
단체생활에 있어서의 에티켓  (0) 2012.02.15
미품상회 탐방  (0) 2012.01.07
영하 30도의 설악산에서 살아돌아온 사나이   (0) 2011.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