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길을 걷노라면 노하우라는 게 생긴다. 오늘 새벽 03:20경 주안역전을 지나다가 '성인전화방'이란 간판을 보는 순간 예감이 이상하여 후배 직원을 데리고 그곳으로 올라갔다. 카운터 종업원의 협조를 받아 밀실의 손님들을 조회하는데 10번 룸에 있는 남자 손님이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으로 경찰청과 서울중앙지검에서 체포영장(A)이 발부된 지명수배자였다. 일견 살기가 번뜩이는 눈매에 체구가 건장해보였다. 남자에게 수배사실을 고지하고 수갑을 채우려하자 순순히 따라가겠다면서 수갑 차기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티격태격 셋이 계단을 내려와 1층 현관에 이르는 순간 남자가 도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예견했던 일이었으므로 5미터도 채 못 가서 붙잡았다. 그때부터 셋이 엉켜 인도에 뒹구는데 목구멍으로 단내가 솟았다. 도망가려는 자는 죽을 각오이지만 우리 입장에선 그를 다치게 않게 붙잡는 게 최선이다. 격투기 선수와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의 대결이랄까?
마약 중독자의 힘발이 어찌나 센지 둘이 아무리 짓눌러도 감당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무전기로 증원을 요청하려 하였으나 남자와 인도에 뒹굴면서 무전기 밧데리가 해체된 상태였다. 바닥에 떨어지면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할 수없이 직원의 허리춤에 있는 무전기를 뽑아 증원을 요청했는데 남자는 여전히 괴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내 나이 지명을 넘었지만 정신만큼은 특공대원 출신이란 자부심으로 넘친다. 후배 직원 역시 해병대 출신이었다. 각자 기질이 있는 성격이라고 확신한다. 둘이 끈질기게 붙잡고 달라붙어 짓누르자 서서히 힘이 빠지는 눈치였다. 순간 그의 시선과 마주쳤는데 산짐승의 광기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곧 순찰차 2대가 도착하여 남자를 완전히 제압할 수 있었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옷이 온통 먼지 투성이다. 어깨 견장도 날아가버렸다. 후배직원은 남자에게 손등이 물려 살점이 찢어지고 오른쪽 무릎 부위에도 상처를 입었다. 나는 놈에게 낭심을 잡혔으나 나름의 기술로 빠져나왔다. 두 불알이 터지는 줄 알았다. 남자에겐 아직도 값진 부위인데... 뭐, 아픈만큼 단단해지겠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신상에 좋다는 걸 안다.
내 다친 건 둘째치고, 후배 직원의 손등에 파상풍이 우려되어 즉시 차량에 태우고 사랑병원으로 달렸다. 당직 의사에게 상황을 전달하니 충분히 알겠다는 눈치다. 치료비 5만원 정도 들었단다. 건강한 직원이라 별다른 후유증이 없을 줄 믿는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모습을 보니 손에 붕대를 감아 보기 영 안쓰러웠다.
마약사범은 검거하기가 쉽지 않다. 내 아는 직원은 마약사범을 체포하다가 손가락이 끊어졌다. 물어 뜯긴 것이다. 평소와 다른 환각상태의 마약사범은 눈에 보이는 게 없다. 오늘 새벽의 나와 후배 직원은 정말 다행이다.
나중에 남자의 나이를 알고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나와 동갑으로 생일은 나보다 한 달 가량 빠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약 기운이 빠져나가는지 끙끙 앓는 소리와 함께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그러니까 나이에 맞게 좀 놀지. 왜 하지 말라는 짓을 해서 동갑나기를 힘들게 만드나?
당시 상황이 아찔하다. 지하도 계단 입구에서 그와 맞붙었을 때 후배직원이 잠시 기절했다 깨어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한 순간 인도에 엎드려 꿈쩍을 안했기 때문이다. 나는 온 힘을 발휘하여 남자를 허공에 들었다가 내동댕이치곤 했는데 그때마다 몸의 기력이 바닥까지 소진됐다. 오가는 행인들, 대로변의 택시기사들은 우리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서인지 멀뚱히 구경만 했다. 하긴 남자가 워낙 격렬히 반항하여 용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3월 들어 오늘까지 지명수배자 16명 검거! 당사자에겐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 직업에 있는 한 지명수배자 검거 실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싶다. 죄 짓고 도망 다니는 놈들은 꼭 잡아야 한다. 내 철학이 그렇다. 체력을 더 키우고 싶다. 우리집 1층 헬스클럽에 다녀야겠다. 옛날에 운동한 경험이 있어 금세 적응되리라 믿는다. 아아, 몸이 슬슬 뻐근해지는구나! 몇 군데 욱신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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