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모처럼 미품상회에 다녀왔습니다. 미품상회란 말 그대로 미국 물품을 판매하는 곳입니다. 국산이나 대륙산 짝퉁은 없습니다. 한마디로 미제지상주의를 표방하는 곳입니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사장님이 반갑게 맞아주시더군요. 먼저 외부에서 한 컷 찍었습니다. 화목난로에 쓰려고 쪼개놓은 장작들이 길 한쪽에 놓여있는 가운데 옥상의 성조기가 바람에 날리고 있습니다. 달이 떴습니다.
화목 가져가면 절도범이다! 건너편에서 보고 있다. 주인 白
일부 네티즌들이 불친절하다고 지적한 사장님입니다. 불친절하다고만 할 게 아닙니다. 누구든 낯선 사람의 집요한 질문엔 짜증을 낼 수 있습니다. 사장님의 불친절도 그런 맥락으로 해석됩니다. 밀리터리룩 마니아들, 특히 전화로 물건 상태를 진단하는 측에선 여러가지 확인사항이 필요한 법이고 대답하는 입장에선 귀차니즘에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장사를 오래 해본 사람은 말 몇 마디만 나눠도 상대의 구매욕을 읽는다고 합니다. 전문가가 아니라 단언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외부 풍경을 찍었습니다. 이라크전에 보급된 삼색 필드자켓이 보입니다.
내부(일부)
공간을 배경으로 한 컷 찍었습니다. 마침 매장에 들린 손님에게 부탁해서 찍었습니다. 사장님의 셔터 기술이 만족스럽지 못해서요. 사장님이 찍은 사진을 보면 거반 초점이 흔들렸습니다.
화목난로의 포스. 이 난로를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뚜껑에 '1943 U.S'란 표기가 있습니다. 아마도 1943년 개발되어 육해군(해병 포함) 구분 없이 지상전에 보급된 화목난로로 추정됩니다. 국내엔 6.25 전쟁 중 다량 도입됐습니다. 종전 후 여러 라인을 통해 외부로 반출되어 민수용으로 사랑 받았지요. 미군의 전쟁 개념을 보면 절대 필요한 무기를 제외한 기타 보급품은 소모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후퇴시엔 잡다한 보급품을 미련없이 버리고 떠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나라는 사격장에서 탄피 하나도 수습하려 애를 쓰잖습니까? 물론 탄알의 밀반출을 막기 위한 조치라 합니다만 어쨌든 미군의 방식은 다릅니다. 6,500명 넘는 미군의 희생을 가져온 장진호 전투*[본문 하단 *설명 참조]에서도 미군들이 철수하면서 많은 보급품을 버렸습니다. 한 명의 피란민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서였지만 말입니다.
장진호에서 철수한 미군은 흥남부두를 통해 미 전함에 오르게 되는데요, 이 때 많은 피란민들이 미군 전함에 의해 남하합니다. 미 전함이 부산항으로 입항하면서 부산항 근처 용두산기슭에 피란민촌이 형성되고, 피란민을 소재로 한 유행가의 탄생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당시 전함을 타고 남하한 피란민의 수가 9만명이 넘었습니다. 저는 한국전쟁사에 대단히 관심이 많아 예전에 읽은 책을 단서로 말씀 드립니다.
잠시 빗나갔습니다만 사진의 화목난로는 주물방식부터 요즘과는 다릅니다. 상체 조립 부분을 들어올려 두드리면 징 우는 소리를 냅니다. '둥~' 울리는 공명의 여운이 오래도록 이어진다는 거죠. 이 점이 단순 양철식으로 만든 국산과 다릅니다. 화목이 불타면 난로의 뜨거운 열이 두꺼운 표면을 통해 분출되어 주변의 온도를 금세 상승시킵니다. 난로 하단의 조그만 문을 통해 화력 조절이 가능하고요, 화목은 고리로 뚜껑을 열고 집어넣습니다. 간단합니다. 연통이 낡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 연통도 두껍고 무게감이 있는 제품입니다. 열 전도율이 뛰어날 수 밖에 없어요. 실내에 난로를 들여놓을 경우 연통을 길게 설치하면 그만큼 많은 열 절도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미제 도끼와 그 외 군납품들
콜맨 야외용 가스등입니다. 밝기가 탁월한 제품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겐 기존에 입수한 랜턴이 있어 구입의 필요성이 없는 물건입니다.
* 장진호 전투
1950년 6·25 때 미군 제1해병사단이 함경남도 장진호 부근에서 중공군 7개사단의 포위망을 뚫고 함흥으로의 철수에 성공한 작전.
- 내용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 사이에 있었다. 미군 제1해병사단은 유엔군의 북진때 원산항으로 상륙하여 서부전선에서 북상중인 미 제8군과 접촉을 유지하려고 장진호 계곡을 따라 강계방면으로 전진하던 중 장진군 서한면 유담리·신흥리 일대에서 중공군 7개사단으로부터 포위, 공격을 받게 되었다.
이 지역은 높이 2,000m 이상의 높은 산들이 남북으로 뻗어 낭림산맥을 이루고 있고, 흥남으로 이어지는 계곡은 깊은 협곡을 이루고 있어 철수작전을 어렵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해병은 추위를 무릅쓰고 40㎞의 협곡지대를 돌파하여 철수에 성공하였다.
이 철수작전의 성공은 결과적으로 청천강일대에서 수세에 빠져 있는 미 제8군의 철수를 가능하게 하였으며, 또한 중공군의 함흥지역 진출을 2주간 지연시켜 국군과 미군의 흥남철수를 성공시킬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이 철수작전에서 미군은 6,532명의 병력 손실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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