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고정욱의 <원균 그리고 원균> 하권(下券) 中
옮긴이 : 류삿갓(몇 년 전 본문을 직접 타자 쳐 저장해둠)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임진해전은 전부
이순신이 총지휘하였고 빛나는 승전은 모두 그의 공로로 알려져 있다. 그 결과 우리들의 인식에는 '이순신= 임란해전의 승리자'라는 등식이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물론 이순신의 공적이 탁월하고 그가 선무 일등공신임은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토록 이순신을
괴롭히고 사사건건 그를 모함하였으며 왜군에게 패배하였다는 원균이 일등공신 세사람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은 누가 어떻게 시원스럽게 설명을 할
것인가?
영웅으로서 이순신의 빛나는 삶을 꾸미는 데에는 오비이락으로 그와 버금가는 능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또한 그가 죄를
짓고 자리를 떴을 때 뒤를 이어 수군을 맡았다는 이유만으로 원균이 악역을 담당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 후기에 전해내려오는 딱지본 고소설에도
하나같이 원균은 영웅의 일생을 사는 이순신을 괴롭히는 숙적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춘원 이광수까지 그의 작품 <이순신>에서 원균을 역시
악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 뒤로도 오늘날까지 이순신은 반공 이데올리기와 안보 논리에 힘입어 영웅, 더 나아가 성웅으로까지
끌어올려지지만 원균은 수십권 나와있는 이순신 관계 책자와 어린이들이 읽는 위인전에서 늘 고독한 악역, 비열한 간신일 뿐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광해군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조선의 신 집권층은 자신들의 정적들이 쓴 선조실록을 선별적으로 개찬하여
수정실록을 만드는데, 이 때 원균은 철저하게 후대의 붓끝에 의해 다시 죽임(筆殊)을 당한다. 이순신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고 정적들이 높이
인정한 원균을 깎아 내리게 된 원인에는 이처럼 후대의 정치적 음모가 그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이 수정실록의 편찬 주관자는 이순신의 한 집안
후손인 택당(澤堂) 이식(李植)이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만든 것이기에 선조 수정실록은 앞뒤가 안맞는 부분도 눈에 띄고 과장된 부분도 지나치게
많다.
완벽한 인간은 없다는 것이 이 소설을 쓰는 데 있어서 나의 기본 방침이었다. 이순신의 경우는 무관 특유의 치열한 공명심이
앞선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남들보다 뛰어난 공로를 세우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자 하는 욕망은 나쁜 것도 아니고 비난받아야 할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그의 그러한 인간으로서의 과도한 열망은 부작용이 아닐 수 없었다.
이순신이 그렇게 부작용을 만들 수 밖에
없었던 원인들은 그가 직접 쓴 기록만 유심히 살펴보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지만 아무도 나서서 차가운 눈으로 가려보려 하지않았다. 그는
이미 성웅으로서, 민족혼의 더할 수없는 화신으로서 너무나도 거룩하게 꾸며져 있기 때문이다. 누구 말 맞다나 원균의 경우는 더 낮출래야 낮출
수없고, 이순신의 경우 더 높여줄래야 높일 수 없는 경지에 이르른 까닭이다. 그는 지금까지 불행(?)하게도 민족혼의 화신으로서, 구국의
명장으로서 부족함 없게 철두철미 완벽한 인물로 그려져 왔다. 그것은 이순신 개인에게도 또한 우리 민족사에도 안타까운 일이다.
이순신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 되돌려 놓는 것은 원균을 복원 시키는 것 만큼이나 나에게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문제였다. 그러나 그
성격의 일면들이 풍부하게 많은 그의 글들에서 쉽게 발견되었기 때문에 작업은 순조로웠다. 이순신의 자료는 후대에 열심히 긁어 모아서 그 자료
풍부하기가 큰 책으로 두 권이나 된다. 그리고 그가 싸움에서 이긴 장계도 대부분 남아 전한다. 어떤 조카에게 보낸 짧은 편지까지 볼 수 있을
정도다.
오히려 나는 다른 데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원균에 관한 기록의 빈곤에서 허덕여야 했던 것이다. 그가 올린 군공장계는
이순신보다 더 많은 6개라 한다. 그러나 지금 하나도 전해지는 것이 없다. 봉사 코끼리 더듬 듯 실록 등에서 그 내용의 일부를 짐작할 뿐이다.
작품에도 등장하는 후대 사람 이선이 아주 상세하게 원균의 행적을 기록한 <원균전>을 썼다 하는데 그것 역시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렇게 한 쪽은 철저하게 자료가 보존되고 한 쪽은 철저하게 자료가 없는 데서 나는 원균의 자료는 누군가에 의해 고의적으로 훼손 되었으리라는
의심을 하지않을 수 없다. 거짓말같이 깡그리 없는 자료는 오히려 그 자료를 없앤 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원균에 대한 지금까지의 우리 평가가
잘못되었음을 입증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아닐까?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순신의 <난중일기>조차도 그의 실수나 부정적인
면이 드러날 수 있는 시기의 것들은 전부 오늘날 전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세세한 일이라도 일기에 적은 꼼꼼한 성격의 이순신이었기에,
부끄러운 일이라고 일기를 의도적으로 안적었을 리는 없다. 일기는 남에게 보여주려고 쓰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일기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뭉텅이로 몇달씩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순신을 전승의 완벽한 인물로 만들기 위해 훗날 이순신의 친필 초고를 가져다 누군가가 그에게 누가
될만한 부분은 찢어 냈을 확률이 높다.
이로써 이순신은 실수도 없고, 인간으로서 태어나면서부터 월등했고, 신의 경지에 다다른
완벽한 인물이고, 백전 백승했다는 왜곡된 신화가 완성된다. 물론 이순신이 그토록 어려운 여건에서 많은 승리를 끌어낸 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놀라운
것이며 칭송받아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영웅은 어디까지나 타고 난 영웅이어서는 안된다.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인간으로서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노력이 쌓이고 쌓여 어느날 이룬 결과가 완벽한 신의 경지는 아닐지라도 범인이 넘볼 수 없는 지경에 도달한 사람이 영웅인
것이다.
이순신은 실수도 할 수 있고 욕심도 부릴 수 있는 단지 한사람의 인간이었다. 다만 그는 그때그때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고, 그 결과가 우리 민족을 왜침에서 구해내는 놀라운 업적으로 남아 우리가 존경하고 따르며 본받으려는 것이다. 애초부터 완벽하게
태어난 것으로 꾸며진 위대한 성웅으로서의 이순신과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좌절도 맛보며 노력하는 이순신의 차이는 엄연한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새로운 영웅 원균 역시 마찬가지다.
지하에 원균 장군의 영혼이 있다면 이책을 보고 편히 잠들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절치부심, 최선을 다해 살다 간 인간 이순신 장군에게도 새삼 그의 열렬한 삶의 자세에서 받은 감동을 전한다. 그는 무인답지 않게 선병질의
체질이었지만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육체의 고통을 견뎌낸 위인이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 오욕 속에서도 면면히 이어짐은 원균과 이순신같은
인물들이 끝없이 나타났기 때문임을 소롬돋게 절감한다.
나라를 지켜내기 위해 누구 못지않은 신산을 겪은 선조의 다음 말을 인용하며
장황한 후기를 끝내기로 하자. 사람이 하는일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도 나아진 게 없음을 느끼게 하는 글이다.
"원균이 패전한 후
사람들은 그를 비난하고 있으나 내 뜻은 그렇지 않으니 균은 지용인(智勇人)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가지 일만을 가지고 모든 것을 논하며 원균의
패전만을 들추어 그를 모함하고 있다. 원래 영웅은 성패만을 가지고 논하는 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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