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참깨를 털면서

펜과잉크 2005. 10. 19. 12:03

 

80년대 초반, 광주를 기반으로 활동했던 김준태 시인의 시집이 <참깨를 털면서>였다. 꽤 의식이 있는 시인이라 믿었는데 교단에 선 후 특별한 작품을 발표하지 않는다. 하긴 세상을 보다 원만히 사는 법도 괜찮은 방법이 될 것이다. 당사자 아니면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니...

 

고향집에 전화를 걸자 어머니께서 받으시며 참깨를 터는 중이라신다. 도리깨질을 하려다 허리가 너무 아파 앉아 몽둥이로 살살 두들겨 턴다 하시니 과거 내 손을 잡고 검산골 고랑 산길을 달리시던 어머니의 꽃 같았던 모습이 그려진다. 어머니는 처녀시절의 모교에서 체육대회가 있는 날, 동창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시며 날 단정히 입혀 외출을 하셨다. 학교는 버스 정류장에서 가까웠지만 난 어머니를 따라 중간에 산을 넘는 코스를 택해서 갔다. 그날 어머니는 숲에 가려진 산간 마을을 지나시며 그 마을이 검산골이라 일러주셨는데 지명이 특이하여 오늘날까지 기억하고 있다.

 

학교 운동장에 많은 사람들이 움집해 있던 기억... 점심시간에 소나기가 쏟아져 인근 교실로 급히 피하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어머니 아시는 분과 상봉하여 손을 잡고 반가운 얼굴로 웃으시던 모습이 엊그제 같다.

 

그날 함께 검산골 산길을 달리시던 어머니는 칠순의 몸이 되어 지금 고향집에서 참깨를 털고 계시다. 덧없는 인생... 노인의 모습으로 앉아계실 어머니를 그리는 마음이 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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