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그리운 하구언(河口堰)

펜과잉크 2005. 10. 14. 22:57
 

하구언(河口堰)은 '댐' 혹은 '둑'을 뜻한다. 이 글에 나오는 하구언은 서천의 금강 하구 일대를 말한다. 서천 출신의 출중한 인물로는 신석초 시인을 꼽을 수 있다. 남장(男裝)으로 유명했던 신민당 출신 김옥선 의원도 있지만 정치인이라 왠지 모를 낯설음이 인다. 남장 의원이 남성 화장실을 이용했느냐, 여성 화장실을 이용했느냐에 따른 설이 무슨 퀴즈처럼 유행한 적이 있는데, 어떤 이는 남성 화장실에 들어가 선 채로 자크 내리는 걸 봤다고 주장하여 어린 두뇌가 아리송했던 기억도 있다.


서천은 금강 하구를 바라보고 있는 소읍(小邑)이다. 우리 초등학교 시절 지도책에 빠지지 않고 나왔던 장항제련소는 바로 서천군 장항읍에 위치해 있다. 포항종합제철소가 생기기 이전만 해도 장항제련소는 조국 근대화의 최선봉 대열에 서있는 장엄한 위업처럼 묘사되곤 했었다. 돌산 꼭대기에 우뚝 솟은 굴뚝이 머지않아 도래할 선진국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는 것 같아 가슴 부풀던 기억이 낯설지 않다. 용광로의 쇳물이 철철 흐르다가 쇠막대기 혹은 쇠몽둥이로 변하는 모습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서해방송국이 있던 군산과 마주한 땅 서천…….


금강은 충청 내륙을 굽이굽이 흐른다. 대전 교외를 돌아 공주를 지나 부여를 감싸고 강경을 거쳐 서천 하구에 이르는 것이다. 어느 강이든 그렇듯이 금강에도 방죽이 있다. 끝없이 뻗어있다.


부여 출신의 문인으로는 신동엽, 박용래, 정한모 같은 인물들을 들 수 있겠다. 어떤 이는 신동엽 시인의 미망인 인병선 여사도 문인의 반열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내 입장은 사뭇 다르다. 아무튼 신동엽 시인은 부여라는 지역성을 떠나서도 시단(詩壇)의 중요한 인물임이 틀림없다. 그는 전주사범을 졸업한 걸로 되어 있는데, 옛 스승이 자민련 김종필 전(前) 총재의 형 김종익 님이라는 글을 읽고 자못 놀란 적이 있다.


김종익 님은 우리 어릴 적 국회의원이었던 인물이다. 학동들과 어울려 찍은 사진과 함께 한 장 짜리 달력으로 나와 이 집 저 집 방벽에 붙어 있던 그 얼굴. 일 년을 보내면서 달력엔 껌자국과 코딱지와 밥풀과 동생의 똥자국이 헤아릴 수 없이 붙었다가 닦이곤 했다. 내 손에 의해 사진 얼굴에 테 굵은 안경과 콧수염과 턱 밑 염소 수염이 그려지기도 했던…….


본론으로 선회하여 신동엽 시인의 삶은 불우하였다. 훗날 문공부장관을 역임한 정한모 씨와는 천지 차이였다고 한다. 아까 짚었던 박용래 시인은 부여 출신이긴 하되 성장 과정에서 일찍이 고향을 떠난 듯이 보인다. 강경상고를 다닌 걸로 기록되어 있는데 사실 가슴을 아려오는 詩는 바로 박용래 시인의 작품들이다.


최근엔 이재무 시인을 고향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고 싶다. 최두석 시인의 작품세계와 비슷하여 참 호감이 가는 분이다. 최두석 시인은 <白石 시인 연구>라는 논문으로 유명하고 평론집 <리얼리즘의 시 정신>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어쨌든 이재무 시인의 詩에서도 고향을 모태로 한 움직임이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다. 먼지 폴폴 날리는 빈농의 설움, 헛간에 처박힌 경운기 등의 도입이 단순히 요절한 아우에 대한 회상보다는 작금의 농촌 현실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아 애정이 간다.


서천 하구언!

거긴 광활한 갈대밭이 인상적이다. 강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갈대밭. 그 갈대밭 위 방죽에 있으면 금강의 흐름이 손에 잡힐 듯 하고 수많은 갈잎의 속삭임이 바람결에 윙윙거린다. 친구의 학교에서 학동들 국어 책 읽는 소리가 웅얼웅얼 들려올 것만 같다. 머지 않은 철길에선 장항선 열차가 떠날 것이다. 그런 환상에 젖어 보라! 영화 촬영 장소로 쓰인 하구언.


시커먼 쥐불 그을음이 덕지덕지한 방죽으로 봄바람이 불던 어느 날, 나는 그곳 길을 걸었다. 흙먼지 폴폴 맞으면서 걸었다. 푸짐한 친구의 웃음소리를 배경으로 각별한 몇 사람과 온기를 나누던 추억이 그립다. 평화로운 금강 하구 노변을 따라 난 까페들. 창 밖 강물에 뜬 실뱀장어 고깃배가 한 폭의 그림 같던……. 아아, 나는 오고 친구는 거기에 있다. 학생들과 함께 <이니스프리의 湖島>를 노래하던 내 친구.


가을이 깊어지면 하구언을 찾아 떠나고 싶다. 갈대들 몸 비비는 소리를 들으며 오래도록 둑길을 걷고 싶다. 친구랑 둘이 향토 문인들의 삶과 문학을 얘기하는 시간은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문득 광활한 갈대밭을 기러기 몇 마리 끼루룩 날아가는 환상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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