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영원한 특전맨' 기사를 읽고

펜과잉크 2006. 5. 26. 23:56

1984년 가을,

우리는 설악산 부대를 출발하여 춘천역에서 청량리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청량리역에서 내려 다시 인천행 국철로 갈아탔다. 부평역에 내리니 역사 밖에서 5공수여단 군악대원들이 빵빠레를 울리며 환영해주었다. 곧 수송트럭에 올라탔다. 그리고 30분쯤 달려 5공수여단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즉각 공수교육대 교관들의 가차없는 발길질이 이어졌다. 가혹행위는 지상교육 3주 내내 이어졌다. 솔직히 훈련보다 맞는 일이 더 많았다. 교관들은 일단 몽둥이부터 날리고 봤다. 막타워를 오르면서 각 층마다 버티고 서 있는 교관들에게 또 얼마나 맞았던가? 그렇게 맞고 도약대에 서면 정신이 빠져 멍한 상태가 되었다. 거기서 '애인' 이름 하나 골라 부르고 뛰어내리면 끝이었다. 물론 아래에선 일일히 자세를 체크하는 교관이 있었지만...

 

3주간의 교육을 마치고 수송트럭에 오르면서 우린 이를 갈았다.

'네 놈들 사회에서 보자. 그냥 두지 않으리라.'

'인천쪽엔 오줌도 싸지 않으리!'

이를 악물었다.

 

반나절을 달려 강하 코스에 임했다. 일주일간 주야 각 2회 강하가 예정되어 있었다. 난 전우들과 함께 장비를 점검하면서 초조한 시간들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오후, 짚차 한 대가 우리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다름 아닌 5공수여단 공수교육대 교관들이었다.

"우리가 지도한 여러분이 얼마나 잘하는지 보러 왔소."

그들은 차에서 사과 몇 박스를 내렸다. 난 그 먼데까지 찾아와 준 5공수여단 공수교육대 교관들을 보며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어쩔 수가 없었다.

 

전역 후 몇 년이 지나 버스를 타고 부평 백마장 입구를 지나오다가 정류장에 서있는 5여단 소속 상사 한 분을 보았다. 아아, 그 분은 다름 아닌 5공수여단 공수교육대 교관이었다. 악명 높았던 그 사람...

 

난 흥분된 가슴으로 다음 정류장에 내려 조금 전 그 정류장을 향해 전력을 다해 뛰었다. 다행히 그분이 아직 그 자리에 서 계셨다.

그 분 앞에 서자마자 거수 경례부터 올렸다.

"단결!"

그 분이 악수를 청했다.

"고맙습니다."

 

특전사 장군께서 일행과 함께 시누크 헬기에 몸을 싣고 고공 강하를 함으로써 전역의 대미를 장식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기사를 읽으면서 자꾸만 시야가 흐려졌다. 동시에 22년 전의 5공수여단 추억이 주욱 펼쳐지는 것이었다.

 

5공수여단은 직사각형의 아스팔트 영내 도로가 있어 일조점호를 마친 후 아스팔트를 따라 2-4바퀴씩 구보하곤 했다. 여단장님이 어찌나 깐깐하신지 영내에 침 한방울만 발견돼도 전 부대원을 집합시켜 산꼭대기까지 선착순 얼차려를 시키곤 하셨다. 

 

지금 나는 40의 중반을 넘었다.

인천쪽을 향해선 오줌도 누지 않겠다는 내가 인천에서 직장을 잡고, 인천에서 결혼을 하고, 인천에서 아이를 낳고 인천에 살고 있으니, 이 무슨 조화인지... 그러나 그 시절의 혹독했던 과정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건강한 내가 있지 않을까? 한 번 더 되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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