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고향 생각

추억의 검정고무신

펜과잉크 2006. 8. 1. 19:39

 

닳아 떨어진 고무신을 들고 나가 엿 바꿔 먹던 기억이 납니다. 엿 바꿔 먹는 동료가 부러워 멀쩡한 고무신을 벗어 '돌팍'(돌멩이의 충청 일원 방언)으로 득득 긁어 상처를 냈던 기억도 없진 않지요. 그 엿이 뭐라고 소중한 고무신에 상처를 냈는지 지금 생각해도 한심했습니다. 내 것임을 표시내기 위해 신발 코에다 칼로 이름을 새기거나 못으로 구멍을 뚫기도 했습니다.

 

고무신은 다용도로 쓰였습니다. 단순히 신발로서의 기능에 그치지 않았다는 얘기입니다. 고무신 뒤꿈치가 닳아 물이 새면 가위로 잘 오려서 슬리퍼를 만들어 신었습니다. 그뿐인가요? 고무신은 우리들의 좋은 벗이기도 했습니다. 신발 한쪽을 다른 한쪽에 끼워 넣어 배를 만들어 물에 띄우고 놀았으니까요. 자갈이나 모래를 싣고 '퉁퉁퉁퉁' 소리를 내면서 마치 진짜 배가 짐을 싣고 가는 흉내도 냈습니다.

 

시냇물에서 송사리를 잡으면 고무신 한쪽에 물을 담아 고기를 집에까지 가지고 가서 자랑했습니다. 전 집으로 데려간 송사리를 집 앞 우물에 방생하여 어머님께 혼나기도 여러 번 했습니다.
"이놈아. 먹는 샘물에 송사리를 풀어 놓냐? 엉?"

 

혹시 고무신으로 호박벌을 잡아 본 경험이 있는지요? 호박꽃 속에서 정신 없이 꽃가루를 수집하고 있는 벌을 고무신으로 잽싸게 낚아채어 쥐불깡통 돌리듯 빙글빙글 돌리다가 땅바닥에 '타악' 내리치면 남영동 벌이 '읔' 소리를 내며 정신을 잃었습니다.  

 

고무신을 신은 채 물 속으로 들어가 아무렇게나 발을 씻고 밖으로 나와 발가락 부위만 살짝 걸친 채 뒤꿈치로 '타닥타닥' 털어 내면 신발 속의 물이 금새 사라졌습니다. 고무신은 물 밖에서나 물 속에서 해병대의 수륙양용 장갑차처럼 실용적이었습니다. 굳이 벗고 어쩌고 할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고무신을 신고 밭고랑 풀을 뽑으러 가던 절골 길이 생각납니다. 수줍은 양지꽃 피어있던 고개……. 고무신 신고 장에 가신 '엄니' 마중을 나갔지요. 아버지 따라 뒷산 삭정이 가지치러 갈 때도 신었습니다. 용난골 토끼몰이 갈 때도 신었습니다. 소풍 갈 때도 신었습니다. 빼내저수지 길로 100미터 달리기하러 갈 때도 신었습니다. 외갓집 갈 때도 신었습니다.

 

문득 눈이 하얗게 내린 아침, 마루 밑 검정 고무신을 베고 웅크린 채 잠들어 있던 덕구가 생각납니다.
"잘 잤니?"
그럼 덕구는 화답이라도 하는 양 네 발을 앞뒤로 길게 뻗어 기지개를 펴곤 했지요. 그 검정고무신을 신고 세상의 어디든 달려가던 옛 시절이 어제 같습니다. 장 보따리 풀어 검정고무신을 건네주시던 어머님의 고왔던 모습이 그립습니다.

 

"맞니? 맞아? 음…. 조금 작구먼. 작은 거 신고 고생하지 말고 네 동생 달영이 주거라. 달영이도 작으면 재신이한테 주고…. 넌 다음 장에 다시 사다 주마."
"정말요?"
"엉∼"
"그럼 오늘 꺼 삼화표는 달영이 줄테니께 제 껏은 말표로 사다 주셔유. 바꿔 신는 일 없게유. 말 모감지에 털이 보소송 나부끼는 말표 고무신 있잖여유."
"알았다. 재신이 것은 기차표로 사오마. 똥 묻히고 다니지나 말거라."

 

검정고무신에 얽힌 추억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추녀 밑으로 떨어진 신발 속에 빗물이 고여 찰랑찰랑 넘치던 옛날 그 모습 그대로 반짝이는 물빛 추억들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아아, 추억의 검정고무신을 신고 코흘리개 시절의 교정으로 뛰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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