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어느 예술인에 대한 라디오 프로 청취 소감

펜과잉크 2007. 4. 30. 19:02

 

어제 서울 가면서 청취한 라디오 프로그램 중 짤막한 소감 하나를 써볼까 한다. 라디오에서는 판화가 이철수씨에 대해 이어지고 있었다. 제천에서 목판화 공방을 운영하면서 농사를 겸하고 있다는 그는 여성 사회자의 질문에 차분한 어조로 대답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철수씨 판화를 좋아한다. 불필요한 격식 없이 간소한 선(線)과 점(點)만으로도 많은 감동을 주는 그 아닌가? 그리하여 한때는 TV 프로그램에도 간간이 모습을 보이곤 하던 그였다.

 

그러나 어제 그의 대담을 청취한 소감은 적잖은 실망으로 다가왔다. 그는 말문을 열 때마다 자신을 낮추는 방식으로 은근히 반대급부를 노리는 식의 화술로 일관하는 것이었다. 사회자가 곧 있을 전시회를 묻는데도 그 전시회 타이틀조차 모른다고 대답하는 게 아닌가? 자기는 모르고 주최측에서 그런 행사를 한다는 식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전시회 모든 작품이 자신의 배출 작임에도 무책임한 말을 꺼내는 것이었다.

 

사회자가 <집으로 가는 외출>이라고 하자, '아, 그런가요?'하는 식이었다. 그 타이틀은 곧 자신의 작품 명이기도 했다. 마치 세상에서 제일 점잖은 척, 질문은 사회자가 하고 자신은 점잖게 대답만 하면 되되, 그 대답도 짧고 간단할수록 돋보이고 우러러 보이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 같았다.

 

조각을 마친 작품 원판을 어떻게 보관하느냐고 물으니 과거엔 불쏘시개로 없애버렸는데 약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모으고 있다나?

 

대담을 청취하면서 실망감 같은 게 일었지만 그게 곧 한국이라는 나라의 예술인들의 대다수 오만함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더불어 예술인 중엔 근거 없는 피해의식에 시달리는 사람도 적잖은 것 같다. 남들은 전혀 문제의식을 제기하지 않는데 당사자 스스로 반항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다.

'남들은 내 작품을 두고 어쩌니 저쩌니 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제 방식대로 살아갈 것입니다.'
묻지도 않은 말에 힘을 준다.

그래서 누가 뭐라 했나? 그냥 자기 식대로 살면 되는 것이다. 묻지도 않은 말을, 스스로 피해의식에 젖어 혼자 답하지 말고 말이다.

 

밖엔 비가 온다. 봄비다. 밤비다. 봄밤에 내리는 비의 촉감은 신선할 것도 같다. 언덕 위 미루나무 가지도 한층 짙어가겠지? 시나브로……. 그런데 '시나브로'는 계절 분위기에 타는 말처럼 가을을 표현하는 글에 등장하는데, 그것도 사람들의 관념이요 통념인지 원…….
 
계절의 순환과 같이, 인간도 변함 없는 자세를 견지하며, 스스로 성찰하며, 흔들리지 말며 줄곧 자기만의 가치를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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