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스크랩] ㄱ

펜과잉크 2007. 4. 19. 00:44
 




세월이 흐르고, 몸과 마음에 변화가 오고, 이제 지명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르렀음에도 종내 지워지지 않고, 과거만큼 푸르고, 아니 그 이상 깊고 숙성된 믿음과 희망으로 가슴에 숨쉬는 사람이 있다. 거의 절대적이어서 신앙적인 존재와도 비유된다. 나를 지탱해 나갈 수 있는 또 다른 힘!


언젠가 중추 명절에 조상님들 성묘를 끝내자마자 마을을 벗어나 그의 고향집에 찾아간 적이 있다. 집 앞에 이르렀으되 안에 들지 못하고 그저 대문 밖에서 서성일 따름이었다. 그 집은 좀 외딴 곳에 있어 누군가에 목격이 되면 변명이고 뭐고 불가항력일 수밖에 없는 지대에 있었다. 고유 지명으로 ‘돈대(墩臺)’에 가까운 곳이었다. 곧 ‘평지보다 좀 높직하게 된 곳’이었지만 엄연히 산속의 집이었다. 그 집은 마을로 뻗은 대로에서 구부러진 우측 중소로 샛길로 들어 원형의 굽은 오르막 끝에 있었고, 그리고 두 집이 이웃해 있었으며, 아까 내가 서있던 위치에서 남쪽의 터진 숲 사이 지척으로 한길이 누워 있었다. 그 길로 닿으려면 완만한 내리막길로 몇 발짝 내려가 한가랑 작은 봇도랑을 건너 논두렁을 가야 했다.


막상 남의 집 대문 앞에 서니 당최 몸 둘 곳이 마땅찮았다. 그래 누굴 부를까, 아니면 그냥 어디로 사라질까 하며 망설이다가 마침 마당을 지르던 그의 언니에게 목격되고 말았다. 그녀는 상기된 표정과 당혹스런 시선으로 황급히 대문 밖으로 나왔다.

어쩌면 나를 알아봤는지도 모르겠다.

“누구세요?”

그랬던가? 

아무튼 대충 다음과 같이 대답했던 것 같다.

“ㄱ 왔어요?”

그러자 즉시 그 분이 되받아쳤다.

“ㄱ이 왜 와? ㄱ 안 왔어.”

목소리가 단단한 돌멩이처럼 들렸다.

먼 길을 온 나로선 허탈한 마음이 되었고, 이것이 곧 서운함으로 이어졌다.


“명절인데도 안온대유?”

다소 반문하는 식이었다. 그녀의 언니는 길게 말을 않으려는 눈치였다. 나는 그 자리서 넙죽 인사드리고 한길로 가는 내리막 소로로 향했다.


마을 초입의 표석이 있는 곳까지 이르러 잠시 뒤를 돌아보았는데 아마도 내가 산길을 내려올 때까지 그의 언니가 내 뒷모습을 바라보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 고갯길을 내려오면 다시 마을이 보였고 잠시 후 방죽 길과 만났다. 일부러 방죽으로 가며 발밑 돌들을 걷어차기도 하고, 먼 하늘과 구름, 들녘의 황금물결, 지천의 갈대숲, 물가의 새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이제 그날을 돌이켜보면 20년도 지난 세월의 일이다. 그날은 추석이었고, 여기저기 사람들로 붐볐으며 어디를 가도 반갑게 맞이해줄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니 어제가 고인의 일주기다. 아마 지금쯤 제사 지내고 가족들이 둘러앉아 담소를 나눌지도 모르겠다.


어르신 혼자 계실 때 찾아가 뵌 적이 있다. 일부러 간 게 아니라 마침 갔을 때 계셨던 것 같다. 그날이었나? 이전이었나? 대문 밖에 급조된 듯한 봉분 한 채가 있어 ‘누가 남의 집 대문 앞에 저런 걸 두었을까’ 했는데 앞서 작고하신 모친의 분(墳)이었다 한다. 지금 생각하니 작고하신 분을 멀리 두지 않으려는 어르신의 깊은 뜻이지 않았나 하는 믿음을 갖는다. 왜냐하면 어르신이 작고하셨을 때 그 봉분을 이장하여 합장(合葬)으로 모셨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를 잊지 못하는 까닭은 어렸을 적에 인연을 맺어 비록 결실을 보진 못했으되 적어도 함께 했던 시절만큼은 서로에게 뜨거웠고 서로를 가여워 했으며 아끼고 보살폈던 마음이 컸던 때문이다. 그 시절이 다시 올까? 오지 않을 것이다. 영영…….


진정 사랑하는 사람 -나의 경우를 대변하고자 함이 아니라-이라면 그의 모든 조건들, 이를테면 그 사람의 배우자, 자식, 그 집의 화분, 대문 열쇠, 창문의 모기장, 화장실에 걸린 타월 같은 것들도 전부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런 것이다. 그러니 서두에 말한 어떤 신앙적인 개념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대상이 될 수 있다.


문득 딱 한 번 뵌 어르신의 생전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 그 분은 안채 마루에 앉아 계셨던가? 오랜 세월이 흘러 그녀가 ‘아버지께서 그날의 일을 말씀하셨다’면서 들려주던 말이 생각난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내 뇌세포가 발작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타임머신을 타고 그날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당사자인 나도 까마득히 잊었던 일인데…….


오늘 인하대병원 소화기내과에 가서 의사한테 그랬다.

“많이 좋아졌어요. 하지만 좀 쓰린 듯한 통증이 올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왔습니다.”

의사는 지난번보다 강도가 떨어지는 약으로 28일분 처방전에 사인해주는 것이었다. 병원 맞은편 약국으로 가면서 아프지 말고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 고향으로 갈 수 있고, 그 땅에 나만의 보금자리, 나만의 책장, 나만의 테이블을 놓고 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지금에 와서 꿈이 있다면 오직 고향으로 가는 길 뿐이다. 죽어도 거기서 죽고 싶다. 아파 징징 짜거나 구겨진 인상이 되지 말고, 쓺에 대한 열정을 드높이며 늘 그 욕구에 매달려 살다가 어느 날 책상에 얼굴을 콕 박은 채 숨을 거두더라도 그것이 운명이라면 거부하지 않으리.


훗날,

고향에 가면 ㄱ을 볼 수 있을까? 50년대식 미군용 텐트를 치고 쓸쓸한 바람 속에 있을 때 냄비에 찌게거리를 들고 온다면 둘이 오그리고 앉아 맛있는 식사 시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상념들…….

밤이 깊다.






출처 : 내지리 시내버스
글쓴이 : 류삿갓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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