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부르는 소리

펜과잉크 2007. 7. 2. 19:25

 

 

이정환의 작품집『까치房』에「부르는 소리」라는 단편이 있다. 그 작품 주인공 역시 감방의 기결수인 바,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은밀한 부분까지 세밀히 그려내는 주도면밀함을 보이고 있다.

 

어찌 됐든 감방에 있는 자들의 절실한 부분 중 하나는 성(姓)에 대한 욕구일 터인 바 작품 속에서도 이는 남녀 모두에게 요원한 사항이다. 그래 한 번은 주인공이 식료품으로 반입되는 물건 중에서 단무지를 꺼내드는 장면이 나온다. 평소 마음에 드는 여자 죄수가 다가오는 걸 기다렸다가 의도적으로 굵은 단무지를 번쩍 쳐들어 보인다. 그때 여자가 어떤 반응을 보였을 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기도록 하고, 아무튼 주인공은 그 여자 죄수와 후미진 곳으로 가 잽싸게 뒤치기로 일을 마무리한다.

 

곧 여자 죄수가 출감을 한다. 그리고 다시 얼마의 세월이 흐른다. 남자는 감방에 누워 이런 저런 상념에 잠긴다. 그 때 밖에서 아련히 호각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의 주인공은 아마도 자신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남자는 한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인 것이다. 남자는 혼자만의 환상에 빠지게 된다. 

 

먼 옛날, 나는 그녀를 눕히고 그녀 위에 정체위로 몸을 취했다. 그리고 내 몸의 것들을 그녀에게 흘려 보냈다.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나는 먼 하늘 저편을 그리며 어디선가 그녀가 내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올 듯한 상상에 빠지기도 했다. 그리하여 내가 산골 벽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호각을 부는 아이와 셋이 도시의 작은 숨결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세월은 가고 추억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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