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한 청년이 시골집 사랑채 문을 열고 연초를 말아 뻑뻑대다가 길을 가는 개와 눈이 마주치자 '너 계속 쳐다보면 좌시하지 않을거야' 라고 큰소리쳤다 하자. 그럼 개가 그 말을 알아듣고 웃고 갈까? 그렇다면 개가 웃을 소리다.
천승세 씨가 쓴 『黃狗의 悲鳴』은 우람한 덩치에 눌린 가엾은 기지촌 여자의 실상을 바탕으로 그린 소설이다. 주인공이 자신의 집에 세 살던 아가씨를 찾아간 게 용주골이던가? 악명 높은 기지촌 용주골은 문산에 실재하는 지명이다. 아무튼 작품 속에서 아가씨를 찾은 주인공은 잠시 방 앞에서 낯선 상황에 봉착한다. 그것은 바로 문 앞에 놓여진 시커먼 미군 군화와 흰 고무신이었다. 그리하여 지금 안에선 미군이 '그녀'를 범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육중한 세퍼트에 눌려 낑낑대는 황구(黃狗)의 고통스런 비명을 작가는 가녀린 기지촌 여인으로 그려내 결국 미제의 발굽 아래 신음하는 한반도의 비극적 상황으로 연출했다.
이에리사가 탁구로 금메달을 딴 곳이 사라예보다. 1984년 동계 올림픽이 열리기도 했던 아름다운 도시 사라예보는 그러나 그 후 오랜 세월 내전상태에 있다. 사실 사라예보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생하게 된 촉발지로 알려져 있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사건(사라예보사건)이 바로 도화선이 된 것이다. 1990년 탈냉전 이후 문화·종교적 차이로 인한 민족갈등이 폭발하여 분리 독립을 원하는 이슬람교도·세르비아인·크로아티아인 사이에 내전이 발생하고 세르비아인에 의한 인종청소로 이어져 참혹한 비극을 양산하였다. 군인들은 상대국을 정복하면서 여인들을 강간하였고….
보스니아 사태를 보도했던 TV에선 지뢰를 매설하고 제거하는 내전국가의 양면성을 심각하게 그려냈지만 종내 해결책을 제시하진 못했다. 왜냐하면 문화·종교적인 갈등은 그 누구도 쉽게 풀지 못하는 난제이기 때문이다.
한때 내가 애독했던 어느 시사주간지에선 자국의 여인을 살해한 의심을 받고 있는 한 청년을 권총으로 처형하는 크로아티아 경찰의 즉결처형 사진이 실린 적이 있는데, 그 한 컷만으로 이역만리 그곳의 비극적 현실을 헤아리고 남았다.
1980년대 초, 강원도 속초시 ㅈ동 주점가는 매월 2회 주기적으로 군인 신분의 남성들을 만나야 했는데, 일설에 의하면 근처의 특수부대원들이 상부의 묵인 하에 단체로 월 2회씩 다녀간다는 얘기였다. 난 전역 후에도 그곳 출신과 한 부서에 근무하며 군 시절 추억에 대하여 자주 들었고, 결국 떠도는 풍문들이 사실이라는 데에 초점이 맞춰졌다.
아프가니스탄의 실태에 대하여 얘기를 나눠 보자. 탈레반 세력은 마약 거래를 중심으로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에 비하여 탄탄한 규모를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군 소속의 군인은 월 60불 월급을 받지만 탈레반 소속 군인은 월 200불의 월급을 받는다. 아프가니스탄의 험난한 지형에 길들여진 탈레반 군인들은 게릴라전(Ranger)에 능해 미군도 그들 잔당을 소탕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군인들에게 요원한 게 무엇인가? 춥고 배고프고 졸린 것 외 성욕(性慾)에 관한 부분이다. 그리하여 탈레반 군인들도 이 부분을 나름대로 해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넉넉한 호주머니를 바탕으로 여인들과 관계하는데 주로 가난한 중국 국적의 여인들을 데려와 상대한다는 것이다. 중국 국적의 여인들 입장에서 보면 몸을 팔아 돈을 버는 셈이다. 알기 쉽게 말해 성 매매 윤락이다.
일각에선 이슬람교를 믿는 탈레반이 여성에 관한 부분을 신성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역시 이슬람교와 이슬람적 사상에서 출발하는 인도네시아와 파키스탄의 '명예살인'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여성에 대한 부분을 신성시하여 가족끼리 모의한 후 누이를 살해한다는 건 설득력이 약하다.
탈레반에 납치된 인질들은 낯설고 열악한 환경(해발 2천미터 고지에서의 일교차, 짐승 배설물이 섞여 날아오는 모래바람 등)에서 시시각각 죽음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미군과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군사작전에 대비한 탈레반은 인질들을 3-4명씩 나눠 민가에 수용하고 있다 한다. 그 민가에서 인질들은 죽음의 공포와 더불어 혹 또 다른 흥정(?)에 협박당하고 있진 않을까?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부인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인질들이 살아 돌아오면 어떤 내막들이 드러날지 모르겠다. '목숨을 살려주는 대신 내 몸을 만져다오'와 같은 주문은 없었을지…. 그렇게 하여 탈레반의 실체가 우리에게 좀 더 적나라하게 밝혀져 끝내 용서 못할 대상으로 배척 당하게 될 때 '대한민국 정부'는 그때에도 여전히 시골집 사랑채의 청년처럼 '좌시(坐視)하지 않겠다'라고만 떠들어댈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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