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들과 함께 영화관에서 개봉작『만남의 광장』을 보았다. 영화를 본 소감은 일단 물큰한 감동이 가슴을 찔렀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아들에게 '아빠가 왜 이 영화를 보자 했는지 알겠지? 영화가 뭘 시사하는지 알겠어?'하고 묻자, '예'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래 어제는 아들과 뜻깊은 시간을 공유했다.
6. 25 전쟁 직후 38선 이남은 미군, 이북은 소련군에 의해 진주 점령된다. 강원도 인적 드문 마을 청솔리. 어느 날, 38선에 목책(木柵)을 설치하던 군인들을 구경하던 마을 주민들이 두 패로 나뉘어 양편에서 목책을 세워 올린다. 그런데 목책이 세워지자 마을 주민들이 자연히 양쪽으로 갈리게 되고 그대로 그들은 이산(離散)의 신세가 된다. 하지만 주민들은 절망하지 않고 남과 북 사이에 터널을 뚫어 은밀히 왕래한다.
지금까지는 영화 전개의 시대적·공간적 배경이고, 본격적인 배경은 6. 25 전쟁이 끝난 30년 후이다. 1980년대 초, 주인공으로 나오는 삼청교육대 출신의 까까머리 섬(島) 청년 공영탄(임창정 분)이란 이름의 청년이 우연히 최전방 마을 학교의 교사로 부임하면서 스토리는 시작된다. 정작 발령이 난 진짜 교사(류승범 분)는 산 속을 헤매다가 지뢰를 밟고 꼼짝 못하는 신세가 되고, 삼청교육대 출신의 공영탄이 교사로 앉게 되는 것이다. 삼청교육대 입소 과정도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섬에서 상경한 청년 공영탄이 서울역 광장에서 가방을 날치기 당하면서 경찰서에 가게 되고, 거기서 그는 삼청교육대 입소자들 틈에 앉았다가 동행(?)하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최전방 오지마을에 교사로 부임한 공영탄 청년에 의해 마을의 분위기는 술렁이기 시작한다. 순박하기 그지없는 섬 청년의 눈엔 마을 사람들의 거동이 이상하기 짝이 없다. 특히 밤중에 우연히 감나무 아래서 마을이장(임현식 분)이 여주인공 선미(박진희 분)를 덮치는 광경을 목격한 공영탄은 이장과 선미를 불륜관계로 오해하면서 일을 심각하게 만든다. 정작 마을이장은 북으로 통하는 터널 입구에서 낯선 인기척을 듣고 선미의 입을 막으면서 납작 엎드린 것인데, 불륜지간으로 오해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도 모든 사실을 선뜻 얘기해줄 수 없는 이장과 선미는 답답할 뿐이다.
마을은 앞서 얘기한 대로 최전방에 있어, 별 자리 진급을 위해 발광하는 연대장의 성화로 군인들이 수시 출현하곤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마을 주민들은 터널을 통해 은밀히 왕래함으로써 끊어진 남북을 하나로 잇는다. 사실 마을이장 임현식의 모친(김수미 분)은 북쪽에 거주하고 계시다. 여기서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여주인공 선미가 북쪽에서 여군 신분으로 대남 심리전의 아나운서로 활약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의 아니게 마을 학교 선생이 되어 아이를 가르치는 공영탄은 반공소년 이승복을 가르치는 대목에서 "너거는 마, 싫다고 소리치고 해서 다치지 말라"며 아이들을 걱정한다.
한편 마을에선 공영탄과 선미를 결혼시키기로 하고 두 마을 주민들이 터널의 중간에 있는 지하 광장으로 모인다. 마침 임현식의 모친도 자리한다.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고……. 선미는 결혼식을 앞두고 북쪽 마을에서 자신을 짝사랑한 북한군 병사의 위협에 시달린다. 그 사실을 모른 채 선미를 데리러 간 공영탄 역시 북한군의 총부리 앞에 속수무책이 된다. 마침 공영탄을 돕기 위해 미행한 또 다른 마을 청년에게 이 광경이 목격된다. 북한군 병사가 권총을 발사하고, 총알은 마을 청년의 어깨에 명중한다. 마을 청년은 구사일생으로 터널 광장까지 달려 주민들에게 사건의 전모를 알린다. 주민들은 최후의 방책으로 터널 천장을 무너뜨려 남북 통로를 봉쇄해버린다.
북한군이 마을 청년을 쫓으러 간 틈에 공영탄과 선미는 탈출을 감행한다. 남북 주민들이 집합해있는 지하 터널 광장을 향해 뛰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있는 북한 병사의 보고로 다수의 북한 군인들이 두 사람을 추격해온다. 두 사람은 붕괴된 터널 통로에서 붙잡힌다. 거기서 두 사람은 죽음의 위기를 맞지만 공영탄이 기지를 발휘하여 두 손 번쩍 들고 '조선인민공화국만세!'를 외쳐 살아난다.
이남 마을에선 연대장 휘하 군인들이 수색을 나왔다가 주민들이 모두 사라진 점에 촉각을 곧추세우고 마을을 뒤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군인들은 남쪽으로 귀순한 주민들이 외치는 '대한민국 만세!' 소리를 듣는다. 말하자면 집단 귀순인 셈이다. 진급에 목말라 있던 연대장이 일 계급 특진되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 후 북에서 귀순한 주민들은 정부로부터 사상교육을 받고 서해의 외진 낙도로 집단 이주된다.
스크린은 이제 망망대해의 목선 한 척에 앵글을 맞춘다. 물결을 일으키며 내빼는 목선엔 그 옛날의 공영탄과 선미가 어린 남매를 태우고 있다. 그러니까 그들은 지금 자유 대한의 품으로 귀순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마을이장을 비롯하여 서해 낙도로 이주 당해 살고 있는 고향 사람들과 상봉하리란 추측은 보는 이의 판단에 할애된다. 공교롭게도 그들이 살고 있는 서해 낙도는 그 옛날 공영탄의 고향 땅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코미디 영화 같지만 결코 웃을 수 없는 한숨 같은 게 후미를 장식하는 영화이다. 왜 우리는 남북으로 분단되어 살아야 하고, 과연 우리 민족이 통일될 날은 언제인가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무는 영화다. 일순 남북의 상반된 이데올리기 속에서 영화와 같은 기적이 일어난다면 어떨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정녕 영화에서나 가능할 일일까? 그럴지도……. 한 편의 블랙코미디가 주는 충격은 당분간 내 안에 일말의 후유증으로 자리해 있으리라.
* Daum 까페 '내지리 시내버스' 류삿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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