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졸음이 온다. 어젯밤 KBS1-TV에서 방영한 영화『마운틴 플래툰』을 시청하다가 새벽 2시 넘어 잤고, 해장머리 6시에 을지훈련 관련 비상이 걸려 일어난 탓이다.
요즘 6. 25 전쟁 중 미 해병대의 기적으로 일컬어지는 장진호 전투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 마틴 러스가 지은『브레이크아웃』은 한국전에 참전했던 예비역들을 직접 취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 하다. 알몬드 장군과 스미스 장군의 각기 다른 지휘관 상에도 관심이 갔다.
중국군 제9병단 송시륜 장군이 이끄는 중공군 12만 명에 포위 당한 2만5천명의 미 해병대는 1950년 11월 낭림산맥 개마고원 지형에서 혹독한 겨울을 맞는다. 그 추위는 특히 미국 남부의 따스한 지방에서 온 군인들에겐 고문과도 다름없는 것이었다.
장진호 안쪽 깊이 전진해 들어갔던 미 해병대는 그제야 자신들이 중공군 12만 명에게 겹겹이 포위 당한 사실을 알게 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거기서 흥남부두까지 빠져나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했던가.
책을 읽다 보면 중공군에 대하여 무척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는 바, 그들은 나팔과 꽹과리, 호루라기 같은 걸 불고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드는데 미군들로서는 이 소리가 늘 불길한 징조와도 같은 것이었다.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조선일보에 신간『얼어붙은 장진호』라는 책이 나온 걸 보았다. 그리하여 집 근처 '시민문고'에 가서 책을 사 가지고 왔다. 그 책은 동서문화사 고산 고정일 사장이 쓴 장편소설이었다. 난 약간 떨리는 마음으로 서문을 펼쳤고, 거기엔 저자 나이 12세에 6. 25 전쟁을 맞아 피난길에 어머니와 두 동생을 폭격으로 잃었다는 대목이 나와 읽는 마음을 한층 짠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본문으로 들어가면서 난 실망을 금치 못했다. 그 책, 그러니까 동서문화사 사장 고산 고정일 씨가 쓴『얼어붙은 장진호』는 마틴 러스가 지은『브레이크아웃』의 복제판이었다. 이미『브레이크아웃』에서 거명됐던 인물들이 그대로 등장하고, 스토리의 전개가 너무나 흡사했다. 그는 복제판이란 비난을 의식한 때문인지 군데군데 '작가노트'라는 어필로그 형식의 단문을 삽입하였으나 문체나 어감이 본문과 맞지 않아 -급조된 듯한 문체- 어색함만 더할 뿐이었다.
흔히 신간 서적이 발간되면 각 지면에 광고를 때리면서 저명인사나 유명작가의 짤막한 추천사를 곁들이곤 하는데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과연 고산 고정일 사장의『얼어붙은 장진호』에 대하여 알고나 있을까? 가령 단순 지인 관계인 사람들에게 '어이, 나 이번에 책 한 권 내는데 광고문안에 자네 이름 좀 올려 줘. 다음에 소주 한 잔 살게' 어쩌고 하여 빚어진 결과라면 고 사장은 출판인으로서의 양심을 저버리는 행위로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
만일『얼어붙은 장진호』가 『브레이크아웃』의 복제판이라면 그는 장진호 전투에서 숨진 수많은 영혼들에게 씻지 못할 과오를 범하는 셈이다. 조선일보 지면엔 고정일 사장이『얼어붙은 장진호』를 쓰기 위해 100종이나 되는 관련 서적과 자료를 탐독했다고 기술했지만 믿을 수 없다. 실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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