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이틀간 고향 친구들이 부산으로 배낭여행을 떠난 걸로 알고 있다. 지금쯤 해운대 바닷가를 거닐고 있을까? 파도가 보이는 커피숍에서 따뜻한 미각으로 피로를 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부산역전 '아리랑호텔'은 지금도 여전한지...
개인적으로 부산 여행을 여러번 해서 그 일대 지리에 훤하다. 실제로 부산에 체류한 적도 있고... 1987년도인가? 부산 지하철이 개통되기 전, 부산에 갔다가 겪은 에피소드는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당시 지하철이 노포동에서 범일동까지만 임시 개통된 상태였는데, 종착역인 범일동에서 하차를 한 나는 지하도 위로 올라오지 않고 터널 속을 걸어 부산진역까지 가기로 작정했다. 전철만 다니지 않을 뿐 터널 공사와 레일은 모두 완공된 상태라 가능하다고 믿었다. 당시 배낭 여행 중이었던 난 손전등으로 어둠을 밝히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범일동에서 부산진역까지 터널을 걷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부산진역 방향으로 갈수록 공사 진전도가 떨어져 곳곳에 공사자재가 쌓여 있었고, 일단은 칠흙같은 어둠이 묘한 공포감으로 심신을 옭죄어 왔다. 그건 결코 예사롭지 않은 것이었다. 처음엔 느끼지 못했던 심리적 압박감이 어느 순간 견디기 힘든 공포로 변해버렸다. 더구나 부산진역에 도착했다 해도 출구가 개방되어 있을지가 문제였다. 그런 생각에 미치자 무서움이 더해졌다. 나는 걸음을 돌려 내가 지금까지 온 길을 그대로 되돌아 나가기로 했다. 한참 후 다시 범일역에 도착하여 밖으로 나왔지만, 지금 생각해도 내가 왜 그때 그런 엉뚱한 발상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부산 여행은 용두산 공원, 태종대 숲길(산간도로)과 자살바위, 태종대를 빼놓을 수 없다. 위 3군데 여행을 하루만에 끝낼 수 있다면 온천장 뒤편 산길로 가는 버스를 타고 동래산성 초입에 내려 노포동 범어사 뒷편까지 난 등산로를 타 볼만 하다. 위험한 곳이 없어 운동 삼아 걸어볼만 하다. 다만 여성의 걸음으로 온천장 산성문(山城門)부터 범어사로 내려가는 등반로까지는 4시간 가량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나는 중간에 비를 만나 판초로 차양을 만들어놓고 움크리고 있다가 내친 김에 밥까지 지어먹고 가느라 소요 시간이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적인 등반시간이 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범어사 뒤편 계곡길로 내려와 범어사를 둘러본 뒤 다시 온천장으로 와서 역사가 깊은 동래호텔에서 하룻밤 묵으면 부산 코스는 제대로 경험하게 되는 셈이다. 동래호텔은 밤에 뜰에 설치된 테라스에서 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인스턴트 식품이나 차 혹은 음료수를 주문할 수 있어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다. 꼭 동래호텔에 투숙하지 않아도 테라스를 이용할 수 있는 걸로 안다. 그러니 근처 최신 설비의 모텔에 방을 잡아놓고 간편한 차림으로 나와 들렀다 가는 것도 실속있는 일이다. 여행 중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소지품 분실에 주의하는 것이다. 특히 중요한 물건을 숙소에 놓고 외출을 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해운대는 조선호텔쪽부터 한국콘도(달맞이고개 초입의 콘도)쪽으로 걸어 달맞이고개 초입의 까페에 들어가 피로를 푸는 형식이 지혜로운 생각이라고 믿는다. 여기서 조선호텔 정문 맞은편 동백섬 숲길을 산책하는 것도 인상 깊은 시간이 될 것이다. 부산시에서 방책을 설치하고 외국에서 들여온 토끼를 방사시켰는데, 원래 토끼라는 동물의 임신 기간이 30일 밖에 되지 않으므로, 최근엔 골치거리로 심심찮게 부상하곤 한다는 소식이다. 토끼는 애완용이든 야생이든 굴을 파는 귀재이기 때문에 제어할 수 없이 퍼지르는 2-3세들이 몰려다니며 땅을 파헤치는 웃지 못할 일이 빈번하다는 것이다. 토끼같은 초식동물 주변엔 그들을 노리는 야생고양이들이 있기 마련이니 여러 장치가 필요할 줄 믿는다.
달맞이고개엔 <김성종 추리문학관>이 있다. 나도 달맞이고개에서 식사를 하고 그곳에 들러 김성종 씨랑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부산시에서 연간 2-3억원 가량 지원을 해주어 관리엔 큰 문제가 없다고 들었다. <김성종 추리문학관> 아래 해물집 식당에서 생선지리탕을 아주 맛있게 먹었는데 상호가 기억나지 않는다.
해운대 달맞이고개 코스가 끝나 시간이 나면 송정(松亭)까지 가보는 것도 괜찮다. 물이 참 깨끗하다. 인상적일 정도로 깨끗하다. 송정 해변은 많은 면적을 군부대가 쓰기 때문에 -제약을 받을 정도는 아니지만- 정자가 있는 방향만 일반인에게 자유롭게 개방된 걸로 안다. 하지만 바닷가를 거닐기엔 손색없는 풍경을 자랑한다. 정자가 있는 숲의 맑은 공기를 쐬는 것도 권장해볼만 하다.
거기까지 갔으면 이제 돌아올 일이 남았으니 그만 송정역으로 가서 부산역으로 가는 완행열차를 타라! 송정역에 정차하는 기차는 부산역까지 가지 않고 한 정거장 전인 부산진역이 종점이니 -과거엔 그랬다- 부산진역에서 내려 기차를 옮겨 한 코스만 부산역으로 가면 경부선 열차를 탈 수 있다.
위 글에서 광안리와 오륙도 부분이 빠졌는데 광안리는 야경이 인상적이어서 밤 여행 코스로 권해보고 싶다. 광안리 앞 바다를 가로지르는 대교의 야경이 이채롭다. 하지만 그 뿐, 거긴 해변을 따라 온통 먹는 집들이 움집해있다. 업체마다 경쟁이 심해 맨몸으로 해변을 자유롭게 거닐기가 힘들 정도로 호객행위가 심하다. 또한 오륙도는 일부러 찾아가기엔 해안 기슭의 바위섬 다섯개라는 점 외엔 달리 유념할만한 게 없다.
부산 여행에 관한 소개였으니 참조하길 바란다. 어쩌면 지금쯤 서울행 기차표를 끊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문득 부산과 그곳에 살고 있는 선후배들, 친구들 얼굴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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