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윌든』을 읽노라면 인디언들의 삶에 대한 부분이 나온다. 거칠고 황량한 대륙에서 텐트 하나로 겨울을 나는 인디언들은 누구도 텐트 속에서 얼어죽은 이가 없다는 주장이다. 우리가 간단히 알고 있는 겨울철 야영에 대한 상식을 뒤엎는 인디언들의 삶은 텐트만으로도 설한지(雪寒地)나 극한지(極寒地)에서 충분히 적응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텐트에 대해 따지는 사람들은 '텐트도 숨을 쉰다'고 한다. 나 역시 공감하는 부분이다. 텐트의 구조를 보면 측면이나 상단에 환기구가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이 장치들이 저마다 텐트에 없어서는 안될 기능들인 것이다. 자동차에 돌출 된 사이드미러가 주행 시 받는 공기 저항력의 16%를 차지한다는 설을 감안하면 비록 작은 것이라 해서 기능이나 역할까지 미약하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보유하고 있는 군용 텐트는 6. 25 전사(戰史)에도 나오는 지휘관용이다. GP로 쓰이기도 했는데 간단히 말해 일반 전투병과 장병들이 숙소로 썼던 텐트와는 다른 형태이다. 숙소용 텐트는 24인용 대형 텐트를 활용했고, 내가 소장한 텐트는 대대장이나 연대장 같은 연관급 혹은 장성급 숙소로 쓰이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 선다. 미 해병대가 엄청난 인력 손실을 당한 장진호 전투 관련 자료를 봐도 지휘관용으로 이용된 흔적(자료)들이 나온다. 물론 '지휘관 텐트'로 못박아 정의할 수는 없다. 상황에 따라 무기고나 야전 통신본부 따위로 활용됐을 가능성도 있을 테니 말이다.
텐트 안쪽엔 라이너가 부착되어 있다. 라이너는 내부에 연결된 끈을 느슨히 하거나 잡아당겨 이완과 수축을 병행할 수 있다. 상단 양쪽에 작은 환기창을 두어 내부에서 난로를 피워 연소된 공기를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밀폐된 공간의 적절한 공기 순환을 염두에 둔 장치이다. 텐트 하단에 날개처럼 여분(깃)을 두어 날씨가 추울 경우 텐트 밑으로 들어오는 공기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도록 한 것도 눈이 띤다. 그러니까 극한지에서 활용할 경우 텐트 주위를 완전히 밀폐시키고 개폐용 출입구만으로 환기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텐트를 구입하게 된 동기는 한국전과 밀리터리에 관심이 높은 내가 6.25 관련 자료를 읽다가 흥미를 느끼면서였다. 당시 국내에서 이 텐트를 물색하였으나 등산용품 회사들이 대부분 중국에 진출하여 OEM방식으로 생산하는 제품들이라 마음에 들지 않았고, -유명한 메이커 제품들이 거의 중국 공장에서 생산- 경기도 포천 쪽에 텐트만을 제작하는 공장이 있긴 했으나, 거길 찾아가 부장이란 사람에게 부탁하자 견적을 무려 2백 만원이나 내는 것이었다. 라이너를 추가하면 3백 만원이란다. 그것도 싸다는 주장이었다. 재질이 똑같은 거라면 모르겠지만, 고작 나이론이 첨가된 재질로 그 값을 부른다는 게 억지라는 생각이었다.
인천으로 내려온 나는 이 텐트를 국내가 아닌 미국 혹은 캐나다 쪽 셀러를 통해 직접 구입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서툰 영어 실력으로 그쪽 셀러들과 메일을 주고받은 끝에 미사용품 세트를 공수해온 것이다. 외국에서 물건을 들여올 경우 부피와 무게에 따라 배송비가 달라지는데 내 텐트의 경우 25-30Kg 가량 나가는 무게라서 세금까지 포함하면 배꼽이 더 클 지경이었다. 하지만 반드시 오리지널 제품을 구입하겠다는 의지로 밀어 부쳐 미사용 제품을 소장하기에 되었다.
한번은 청계천에 갔다가 내 텐트와 같은 제품을 판매하는 '백O산'이란 분을 만나 가격을 물으니 현찰 70만원을 부르는 것이었다. 포장을 개방하자 신품 대비 70%에도 미치지 못하는 중고였다. 중고품은 폴대와 핀의 기능에 하자가 있을 수 있어 면밀히 따져 살펴야 한다. 특히 세팅되어 있는 오리지널 폴대는 민감하기 때문에 형태와 기능을 잘 봐야 후회하는 일이 없다.
색소폰 동호회 회원 한 분이 텐트를 꼭 소장하고 싶어했는데 의사가 분명치 않아 망설이던 중 울산의 중학교 선생님께 양도하기로 약속했다. 매니아 입장에서 내 텐트는 '반드시 좋아하는 사람'이 소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텐트 생활의 멋과 낭만을 아는 진정한 매니아 말이다. 저 텐트는 전원주택 공지(空地)에 설치해도 매우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는 제품이다. 실제로 평창에서 새말 I,C로 나오는 길에 안흥이라는 면소재지를 지나면서 도로변 외딴집 마당에 설치된 텐트를 본 적이 있는데 차에서 내려 한참을 구경하다 왔다. 서리 앉은 텐트 모습이 어찌나 환상적이던지….
중앙에 폴대를 세워 모양을 갖추는 텐트는 폴대가 3단 방식이라 아까 말한 대로 관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폴대가 휘거나 덴트를 먹으면 3단 기능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폴대에 심한 충격을 주어 외형이 변형되는 바람에 다른 폴대로 대체하였다. 그 외 핀은 일반 텐트 점에서도 판매되는 제품이라 호환이 가능하다. 10개를 한 세트로 묶어 1만원에 판매하는 걸로 안다.
아무쪼록 좋은 텐트가 진가를 발휘하게 되길 바란다. 숲 속에 텐트를 설치하고 야전침대에 누워 책을 읽노라면 세상 시름이 말끔히 사라진다. 텐트 밖으로 무수히 보이는 밤하늘의 은하…. 그 낭만을 울산의 선생님이 공유하시게 되길…. 안녕, 사랑하는 텐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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