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고향 생각

[스크랩] 화목 난로가 책을 읽는 남자의 정물

펜과잉크 2007. 11. 25. 21:18

 

 

 

 


미국에선 유가 상승으로 인해 재래식 화목 난로를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들었다. 다만 장작을 연료로 하는 화목난로는 대기 오염도 면에서 전기나 유류 난로보다 불리하다고 한다. 얼른 이해가 가지 않지만 나무를 태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예상보다 심한 것 같다. 그러나 어찌됐든 유가 상승은 화목난로라는 재래식 도구 외에도 인간의 실생활에 다양한 변화를 불러올 가능이 높다.


주변에 숭의동에서 특별한 장사를 하는 사람이 있다. 밀리터리 용품만 취급하는 상인이다. 그는 매장에 꼭 화목난로를 피운다. 찌는 여름철만 아니면 그의 매장에선 화목난로가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열기를 내뿜는다. 쇠붙이 품목이 많은 매장은 여름철 습기 예방을 위해서도 난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따로 상품화되어 파는 장작을 구하지 않고, 가령 고물장사 같은 리어커꾼에게 부탁하여 얼마의 재료를 가져오면 돈 바꿔주는 형식 -담배 값 정도-으로 화목을 충당한다. 그런데 화목을 가져다 주는 사람들이 의외로 여럿이다.


한번은 매장에서 일상의 소소한 잡담으로 대면하며 그의 행동을 주시한 적이 있는데 화목난로를 피우는 일에도 요령과 지혜가 따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석유에 적셔 보관했다는 젖은 톱밥을 모종삽으로 떠서 불씨에 던져 넣으니 불이 화르릉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신문지 같은 불쏘시개 차원을 넘어 일종의 지혜였다.


몇 년 전, 고향집으로 화목난로 두 대를 내려보낸 적이 있다. 1943년도  미국산으로 군용 납품된 것 중에서 일부 민간에 흘러나온 제품인데 주물이 일반용보다 훨씬 두껍다. 두꺼운 재질의 난로를 구별하는 요령은 구입 단계에서 빠트릴 수 없는 상식인 바, 가령 뚜껑에 ‘made in U. S. A’라는 음각이 새겨있다 하더라도 상단을 -미군용 화목난로는 상단과 하단이 분리되는 조립식이다- 들어올려 막대기로 두들겨 보는 등의 검증이 필요하다. 정품 난로는 무게부터 다르고 -중량감- 막대기로 두드릴 때 둔탁한 소리를 낸다. 징 소리처럼 견고하고 웅장한 소리를 말하는 것이다. 주조가 두꺼운 난로는 막강한 화력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렇게 구입한 화목난로를 고향집 광에 온전한 형태로 보관 중이다. 지난 여름 휴가 때 내려가 난로에 식용유를 발라 녹스는 걸 방지해두었다. 식용유로 목욕을 시킨 뒤 커다란 비닐봉투를 씌워둔 것이다. 환기 잘되는 광에 보관하면 십 년 세월도 거뜬하리라.


화목난로는 한창 불발이 좋을 땐 물이 뚝뚝 떨어지는 화목도 단숨에 태워버린다. 벌겋게 달아오른 엄청난 고온의 화력 앞엔 물 젖은 화목도 당할 재간이 없는 것이다.


작년 이맘때, 나의 취미를 잘 알고 있는 넷째 아우가 거래처로 출장 갔다가 그곳 사장으로부터 난로 하나를 얻어왔다. 생김새가 예사롭지 않아 물으니 공장을 새로 지어 이사 갈 거라면서 요원하면 가져가도 좋다 했다는 것이다. 그래 아우는 휴일을 택해 사람 하나를 동행하여 난로를 운반해 왔다. 혼자서는 들지도 못할 정도의 육중하고 무거운 화목난로였다. 재를 받아내는 깔판과 바닥의 철판까지 완벽한 올 세트였다. 그 난로는 지금 주안2동 집(단독주택) 창고에 보관 중이다. 고향집 난로처럼 쉬는 날 식용유로 목욕을 시켜주었다.


나는 지금 다음과 같이 상상한다. 호젓한 시골집 거실에 타오르는 난로를 그려본다. 난로 위에 놓인 주전자와 이따금씩 물방울이 튀어 타닥거리는 소리들, 끓는 물이 발산해내는 수증기를 떠올려본다. 연통을 지탱해주는 철사에 걸린 몇 벌의 빨래들……. 난로 가에 앉아 책을 읽는 내 모습을 그린다. 그것은 지극히 행복한 정물이다. 난로의 따스한 온기를 쬐며 북아일랜드 혹은 폴란드의 겨울 풍경이 묘사된 소설을 읽는다든가 하는 삶 말이다. 훗날 고향으로 돌아가면 반드시 그 꿈을 실현시킬 것이다.


개인적인 바람으로, 겨울은 두꺼운 외투로 무장하지 않으면 외출하기 힘들 정도의 추위였으면 좋겠다. 목도리를 두르고 외투를 입고 장갑으로 마무리한 모습은 겨울 이미지와 어울린다. 추위가 제 구실을 못하면 부작용만 더할 뿐이다. 한기가 심하면 빙판에서도 미끄러지지 않는 점을 상기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한창 추울 때의 발바닥이 쩍쩍 달라붙은 현상 말이다. 그래야 정상이다. 눈발 한 번 날리지 않고 무료한 일상만 이어진다면 그게 무슨 겨울인가.

 

뒷산 혹은 밤나무 숲에서 실어온 땔감을 마당에 부려놓고 전기톱으로 토막내어 도끼로 쪼개는 작업은 엄연히 노동이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는 값진 노동의 과정 말이다. 그렇게 하여 얻은 장작을 쌓았다가 겨우내 난로 감으로 쓰며 욕심 없이 살아갈 날을 그린다. 유일한 내 희망이다.

 

 

 

 

출처 : 내지리 시내버스
글쓴이 : 류종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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