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고향 생각

쟁기질

펜과잉크 2008. 1. 19. 15:53

 


 



쟁기는 토양을 갈고 뒤엎는 농기구다. 우리나라 재래식 농법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쟁기는 소의 힘을 빌려 표토(表土)를 갈아엎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소가 끄는 견인식인 것이다. 군대 생활하면서 강원도 화전민들이 인력으로 끄는 쟁기도 보았다. 6. 25 전쟁의 장진호 전투를 소재로 한 마틴 러스의『브레이크 아웃』엔 아이를 업고 쟁기 끄는 북한 아녀자의 사진이 나온다. 물론 옥수수를 심는다고 가정하면 골을 깊이 내지 않아도 되니 인력으로도 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삶의 질이 천양지차였던 것 같다. 러시아 민요『볼가강의 뱃노래』에 얽힌 사연을 보면 동정을 넘어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건 바로 볼가강에서 전마선을 끄는 천민들의 노래였던 것이다. 쟁기를 끄는 소와 전마선을 끄는 인간이 하나 다를 게 없다.  


어렸을 적에 산비탈 밭에서 쟁기질 하시는 아버지를 본 적이 있다. 어머니는 밭둑 욱은 풀을 뽑으시고 나는 근처 양지 삘기를 뽑거나 고랑에 묻혀 찔레를 꺾을 적에 아버지가 소를 몰고 밭을 갈아 엎으셨다.

“이려, 쩌쩌쩌쩌….”

그 정도로 해도 소는 두 눈을 꿈쩍이며 제 역할에 충실했다. 그 소는 벌써 몇 해 전부터 밭을 갈아왔다. 그래 별 걱정을 안 해도 되었고, 사람만 변함없이 따르면 표토갈이엔 하자가 없었다.

“쟁기질이란 것도 요령과 기술이 필요혀. 소가 짐승이라고 같잖게 보고 냅다 몰기만 혀서는 안 된다는 거여. 적당히 밀고 당기며 쟁기 날이 토질에 잘 먹히는지 조심혀야 헌다니께.”


밭을 제법 갈았을 땐 해가 중천에 있었고, 아버지는 잠시 소를 세워 둔 채 새참을 드셨다. 그때 나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쟁기질을 해보고 싶다고 말씀 드렸다.

“아버지, 제가 한 번 끌어보면 안될까요?”

아버지는 대답 대신 어머니를 보시며 웃으셨고, 예의 어머니의 뼈 있는 지청구가 따랐다.

“쟁기질을 배우면 농사를 지어야 허는 거여. 네가 이담에 농사를 지을 거여? 농사는 아버지가 짓는 것이고, 너희들은 죄다 도시로 나가거라. 쟁기질 같은 건 배우지마.”

그리하여 한 번도 쟁기질을 해보지 못했다.


사실 내가 쓰는 문체가 고향을 소재로 하여 자주 농업에 관한 부분들이 나오지만 본격적인 농사꾼의 길을 걸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산에 나무를 하러 다녔다는 것도 친구들이 죄다 지게 지고 산으로 올라가는 판에 뒤따라 다닌 적이 몇 번 있고 본업으로 나무하러 다녔다는 뜻이 아니다. 담뱃잎 엮는 거야 그 시절 엽연초 재배 농가에서 어쩔 수 없는 한계였고….


우리 형제들은 자라면서 부모님께 맞아 본 적이 없다. 내가 한 번 두 살 어린 이웃집 아이를 윽박질러 30원을 빼앗았다가 아버지께 회초리로 종아리에 피가 나도록 맞아본 적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도 왜 그렇게 부모님이 어려울까? 마음속으로는 ‘아버지, 절골 논을 전부 제 앞으로 해주신다 하셨지요? 이제 연세도 되셨으니 그 문제를 해결해주시면 안될까요?’ 말씀드리고 싶은데 입 밖으로는 한 마디도 꺼낼 수가 없다. 용기가 안 난다. 아버지 앞에서도 어머니 앞에서도 그런 발상을 한다는 자체가 죄를 짓는 것 같아 그저 언제 또 말씀을 하시면 그때 해주시는 대로 따르겠다 유념할 따름이다.


쟁기를 모는 방식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아버지처럼 점잖은 소리로 소를 몰기도 하지만 뭐에 쫓기듯이 채근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심지어 짐승에게 육두문자를 쓰는 몰이꾼도 있었다.

“야, 앞으로 똑바로 가란 말이여. …얼라리? 이런 쑥맥 좀 봤나. 자꾸 말 안 들을 거여?”

그 정도는 다행이다.

깊은 산골 밭에서 일하다가 맞은편 밭에서 쟁기질하는 이웃마을 어른이 소리를 내지르면 웃지도 못하고 혼자 큭큭거리면서 배를 움켜잡기에 바빴다.

“쩌쩌쩌쩌…, 야, 이 쌍년아. 글루 가지 말고, 일루 가란 말이여. 아이, 씨발! 자꾸 열 받게 허네. 똑바로 안 갈래? 이 쌍년아. 엉? 곱게 안 가? 한 번 뒈질래? 말 안 들을 거여?”

아무도 없는 고랑에서 비록 짐승에게 던지는 말이긴 해도 듣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그래, 이쪽에도 사람이 있으니 수위를 조절해달라는 의미로 헛기침을 몇 방 날려도 그 ‘쌍년’ 소리는 영 수그러질 줄을 몰랐다.


소는 비록 짐승이지만 사람 소리를 알아듣는지 거푸 채근 하면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토록 순한 짐승에게 뭐 그리 채찍을 가할 필요가 있는가? 어차피 소가 끄는 쟁기로써 속도와는 무관한데 말이다. 소를 막무가내로 몰기만 하는 농법은 쟁깃날을 부러뜨릴 불안만 가중시킨다. 묵묵히 밭을 갈던 소가 걸음을 멈추고 거품을 흘리며 뒤돌아보는 모습은 짐승인지 사람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윌든』에서 한 농부가 저자에게 다음과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채소만 먹고는 못 삽니다. 뼈가 될 만한 성분이 하나도 없거든요.”

그리고는 그는 자기 몸에 뼈 성분을 공급해 줄 원료를 생산하느라 꼬박꼬박 하루의 일부분을 바친다. 농부는 이런 말을 하는 동안에도 줄곧 소 뒤를 따라다니는데, 그 소인즉 풀만 먹고 자란 뼈를 갖고서도 온갖 장애물을 헤치면서 농부와 육중한 쟁기를 끌고 있다.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곧 봄이 와 대지에 새순이 돋을 즈음 고향에 가면 쟁기 모는 농부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어지간한 곳엔 전부 밤나무를 심어 밭이 사라지다시피 한 고을에서 쟁기몰이 또한 보기 힘들게 되었다. 과거에 쓴 졸작 한 편을 끝으로 글을 맺는다. 세상을 확 갈아 엎고 싶던 시절이었다.






겨울 단상




봄이 오면 푸르리라

저 들판의 흰눈이 녹아

네 발부리를 적시고

한 시대의 봇도랑을 이루리라


흘러가리라 

추운 기억의 발목을 적시고

서러운 땅의

풀뿌리를 키울 것이다


깊은 주름의 시대를 뉘우치고

세상의 온갖 것들이 부복(俯伏)하여

참회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설워 마라

첩첩 산 넘고 노들 강 건너

눈알 번뜩이며 봄은 올지니


아이야

재 너머 묵정밭을 갈아 엎어야겠구나  <198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