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집 금선이 누님은 말수가 적다. 원래 큰집 사촌들이 말수가 적다. 큰아버지를 닮은 것 같다. 큰어머니도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할머니도 말수가 적으셨다. 우리 할머니라서가 아니라 평소 몸을 단정히 하셨고, 외출도 하지 않을 정도로 절제하셨다. 그럼에도 매일 아침 식사를 마치면 거울 앞에서 아주까리기름으로 머리손질을 하셨다. 머리 한 올이 날리지 않았다. 금선이 누님이 지금 매형을 만난 건 내 기억으로 상당히 오래 전이다. 누님 나이가 스무 살 남짓 되었을 때 처음 집에 데리고 온 것 같다. 누님이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했는데 같은 회사 동료끼리 연애로 만나 추석을 맞아 고향으로 인사를 시키러 내려온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할머니께서 아주 조심스러워 하시는 것이었다. 큰집에 간 나를 불러 다음과 같이 이르셨다. “아가, 누나 따라온 총각 말이여. 절대 대문 밖에 못 나가게 혀라. 네가 잘 감시혀. 동네 사람들 아는 날엔 집안 망신이다. 뭔 애가 갓 스물에 남자를 데리고 오노. 흉악혀라.” 나는 할머니 말씀대로 매형을 따라다니며 감시(?)했다. 정말 대문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할 작정이었다. 밤이 되었을 때 매형이 답답한 나머지 바람을 쐬겠다고 하여 사촌동생 석원이랑 감시(?)하고 앞집 민자 누나네 사랑채 마루로 데리고 가 한 시간 남짓 걸터앉았다 온 게 전부일 정도다. 할머니는 명절이 끝나고도 택시를 불러 대문 앞에서 성급히 두 사람을 태워 보냈다. “동네 사람들 알면 망신이다!” 그러셨다. 그러셨는데, 할머니는 지금 마실도 갈 수 없는 마을 뒷산에 누워 계시고 금선이 누님은 그 때 매형이랑 결혼하여 오늘까지 큰 일 없이 잘 사신다. 두 아들을 낳아 큰아들이 벌써 서른 가까이 됐다. 사촌누님이라서가 아니라 누님의 젊은 시절은 정말 예뻤다. 여자치고 입이 무거운 것도 마음에 들고…. 요즘도 누님 부부를 만나면 매형이 그 때 일을 꺼내시곤 한다. 때론 너털웃음을 짓지만 당시엔 무척 초조했단다. 내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시는 할머니 때문에 행동의 제약이 이만저만 아니었으리라. 내 기억엔 금선이 누님이 눈이 부어오르도록 운 적도 있다. 할머니는 불편하시면 밖으로 표출하시지 않고 표정부터 어두워지셨는데 당하는 입장에선 여간 곤혹이 아니었다. 아무튼 어렵게 만났으니 금선이 누님이 평생 지금처럼 잘 살았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