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에선 아파트형 주거보다 전원주택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 나의 경우 주안2동에 30년 가까이 된 단독주택이 있고 주안4동에 아이들 주거용 빌라가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단독주택에 더 정이 간다. 지은 지 오래되어 겨울엔 창문에 비닐을 설치해야 할 지경이지만 현관문을 열면서 밟게 되는 대지의 향기가 좋다. 그 집은 추녀 한 쪽의 뚫린 구멍으로 비둘기가 드나든 적도 있다.
직장 사무실에 제주도 출신 부(夫) 씨 성의 후배가 있다. 그는 재테크에 뛰어난 노하우를 갖췄다. 마흔 남짓에 이것저것 경험한 바나 겸비한 지혜와 양식들이 상당하다. 그런데 그는 줄곧 재테크 방향으로만 정진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나와는 다르다. 나의 경우 한결 같이 전원주택 쪽에 관심을 두고 있다. 훗날 고향에 어떤 집을 지을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제일 크다. 그쪽의 월간지를 구독하고 인터넷 사이트도 여러 군데 가입해 있다.
간단히 말해 전원주택은 실용성이 제일이라는 주장이다. 고향 충남 부여를 기준으로 30평 주택을 짓는다면 평당(3.3㎡) 250만원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이상은 쓸데없는 낭비다. 집을 대궐 같이 짓는다는 발상은 일종의 과시 욕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내 계산대로라면 30평 짜리 집을 짓는데 7천5백 만원의 건축비가 소요된다. 물론 대지를 갖춘 상태에서 순수한 건축비용만을 계산한 것이다. 하지만 과거완 달리 지하수 채굴(採掘) 작업도 수 십 만원에 지나지 않는 걸 보면 최종 주변 경관을 정리하는데 2천만 원 가량 쓴다고 따져 1억 원이면 만족할 만한 집을 얻는다는 결론이다.
시골은 도시와 달라 평당 건축비를 250만원 잡아도 썩 괜찮은 공간을 구현할 수 있다. 현재 고향집을 지은 게 1992년인데 지금도 특별히 흠잡을 데가 없다. 겨울철 기름 보일러 경비문제를 빼면 말이다. 안채와 별채 공사비율을 80:20으로 하였던 바, 평당 건축비를 따져보면 매우 저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집을 짓는데 필요한 요건 중 하나가 업자 선정이다. 공사는 현지 거주자에게 맡기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지방에 짓는 공사를 강남이나 분당에 위치한 회사에 맡길 경우 뜻밖의 난관에 봉착할 수도 있다. 흔히 건축비의 20%를 거품이라 말한다. 자재 값이 6천만 원일 경우 1천2백만 원은 업자 몫이라는 소문이 있다. 여기에 현지 체류비용까지 따지는 업자들의 불문율을 감안하면 그 손해(?)는 막대하다. 그러니까 강남이나 분당에 있는 건축회사가 부여에 내려가 공사를 한다면 공사기간만 3개월 잡고 읍내 여관에서 숙식하는 체류비용까지 공사비에서 새어나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들이 숙식비용을 따로 계산하진 않을 테니 말이다. 이것부터가 현지 업자와 외지 업자가 다른 점이다.
군(郡) 단위 건설회사 중에도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한 곳이 의외로 많다. 황토 흙집의 경우 도시나 시골을 막론하고 장인(丈人)들이 분포해 있는 점을 생각하면 딱히 서울이라 해서 우선권을 갖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결국 부여에 집을 지을 경우 현지 업자에게 맡기는 게 가장 현명하다. 그는 읍내에 따로 거처를 마련할 필요가 없는 사람으로 집이 완성된 후 발생하는 하자 보수에도 언제든 호출할 수 있다.
또한 집을 지을 땐 가급적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내 경우 훗날 남향(南向) 산자락의 첫 번째 천수답을 택할 계획이다. 천수답은 실정에 맞게 논밭으로 겸작(兼作)하던 땅이라 따로 터를 고를 필요가 없다. 그야말로 자연이 준 평지인 셈이다. 터를 고르게 되면 자연히 포크레인을 동원해야 되는데 환경을 건드린다는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연미를 갖춘 조경(造景)은 언뜻 집 하나만 갖다가 앉혀 놓은 듯 주변이 살아있어야 한다. 땅을 깎아내어 붉은 흙이 드러난 집은 최소한 10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예전의 미관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아까 언급하다 말았는데 집의 실용성을 강조하자면 우선 유지비 문제를 들 수 있겠다. 집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해야 한다. 외형을 중시해 복층(複層)으로 설계된 집은 1-2층이 통해 있어 동절기 연료비 면에서 불리하다. 요즘은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필요에 따라 천장과 평면으로 개폐(開閉)시킬 수 있는 장치를 달아 유지비 절감을 노리기도 한다. 필요할 때만 2층과 통하게 하고 평소엔 계단을 올려 천장과 일치되게 닫아 상층부로 빠지는 열을 차단하는 것이다.
난로를 설치할 때에도 꼼꼼히 따져야 한다. 단순히 장식용으로 벽난로를 설치하여 기능을 살리지 못하는 예가 많기 때문이다. 난로는 벽에서 떨어지게 설치하되 화목(火木)용을 추천하고 싶다. 난로의 연통을 길게 뽑을수록 열 전도율이 좋다. 과거 시골학교에 설치했던 화목 난로는 한국전 당시 미군 보급품이거나 그것을 모방한 제품이었다. 이 난로의 연통 지름이 10cm인데 길이 2-3m로 설치할 경우 벽난로와는 비교할 수 없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장작이 연소되면서 난로와 연통을 통해 곧바로 실내에 열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벽난로는 아궁이와 벽면 일부만 데울 뿐 대부분의 열은 굴뚝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간다.
화목난로는 난로만 달랑 구하지 말고 바닥에 철판을 놓아 땔감에서 발생하는 불순물로 실내가 지저분해지는 일이 없도록 조치하는 등의 지혜가 필요하다. 내가 아는 사람은 난로 뚜껑에 물주전자를 놓는 것 외에도 종종 바닥 철판에 불을 부어 실내 습도를 조절하는 걸 보았다.
필자의 고향집 주변엔 넓은 밤나무 단지가 조성되어 있는 바, 연중 오랜 수령의 고사 목(木)을 간벌(間伐)해내는 작업이 따른다. 전기톱으로 밑둥을 쓰러뜨린 후 토막내어 곳곳에 쌓아놓는데 이런 재료들을 화목으로 쓰면 비할 데 없을 거란 추측이다. 한반도에 자생하는 소나무 참나무 밤나무는 난로 화목으로 흠잡을 데 없는 것들이다. 땔감용 나무들을 실어다가 모탕에 괴어 장작으로 쪼개 놓고 겨우내 활용하면 되는 것이다.
집은 한옥을 비롯하여 일반 흙집(황토 집 포함), 통나무집, 스틸하우스, 벽돌집 등으로 나뉘는데 주인의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어떤 재질을 쓰느냐에 따라 장단점도 다르기 때문에 면밀히 검토하여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스틸하우스 같은 경우 공간성이나 방음 면에서 유리하지만 결로(結露)현상이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또한 황토 흙집은 ‘황토가 숨을 쉰다’는 전제 하에 토질을 응결시키는 요소의 적당한 배합이 요구된다.
전원주택 부지로는 정남향이 우선일 테이지만 주변환경을 잘 고려해야만 한다. 인간의 심보라는 게 평소엔 덤덤하다가도 명분과 실리에 집착하게 되면 사소한 것도 시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석렬 시인도 충남 온양시 교외에 집을 지으면서 현지 주민의 억지에 한바탕 곤혹을 치른 걸로 알고 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부지는 예전부터 진입로가 연결되어 있는 곳이어야 한다. 이 문제를 방심했다간 경계 토지 주인과 화해하기 어려운 마찰의 불씨를 키울 수 있다. 또한 집을 지을 땐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 곳을 피하되 마을과 지나치게 가까운 곳도 권장할 바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너무 멀어서도 가까워서도 안 된다. 개인적으로는 ‘마을 변두리’처럼 조금 한갓진 곳이 최적이라는 생각이다. 마을이 조성된 곳엔 가령 전봇대와 전깃줄이 얼키설키 늘어지고 정서를 해치는 사례들이 자주 발생한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사람 사는 세상은 도시생활로 족하지 않았던가.
결론적으로 전원주택은 외형보다는 실용적인 측면을 중시하여 지어야 한다. ‘멋진 집’보다는 ‘아담한 집’이라는 인식에 비중을 두는 게 옳다. 아담한 집에 자그마한 서재와 검소한 세간을 놓고 사는 삶을 그려본다. 오래도록 사용한 낡은 전축에 지지직판을 얹고 환상의 음률에 귀 기울이는 삶. 창을 열면 맑은 공기가 폐부 깊이 스며드는 곳. 기타 줄을 뜯거나 전축의 볼륨을 올려도 특별히 의식할 게 없는 생활. 그것이 진정 내가 추구하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