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시절, 휴가 당일 고향에 닿는 법이 없었다. 부대는 강원도 인제에 있었고 고향은 충남 부여였다. 인제에서도 한참을 가야 하는 북면 용대3리였다. 휴가 신고를 하고 나면 해는 그럭저럭 중천에 있었다. 어차피 부대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출발해야 할 형편이었다. 원통에 나가면 괜찮은 식당이 있었지만 거리가 멀었고 버스 시간도 불규칙적이었다. 원통 혹은 인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서울행 금강여객을 타면 몇 시간을 달려 서울 동마장터미널에 닿았다. 그 경이면 이미 날이 저물어가는 상황이었다. 서둘러 용산역으로 가는 전철에 몸을 실어보지만 용산시외버스터미널은 부여행 막차가 끊긴 뒤였다. 그래 신림동 살던 동기 성욱이네 집에서 하룻밤 잔 적도 있다. 그 외엔 모두 대천 큰누님 집에 들러 하루 묵고 고향 가는 버스를 탔다. 장항선 열차가 밤늦도록 편성되어 있었다. 한 번은 입동 무렵 휴가를 받게 되었다. 그 때도 어쩔 수 없이 대천 큰누님 집에 들렀다. 큰누님은 읍내 궁촌리에 살았다. 그런데 아침 6시 기상하던 버릇이 거기서도 살아나는 것이었다. 깜깜한 새벽(?)에 눈을 뜬 나는 구보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식구들 몰래 군복 바지에 군화를 신고 흰 런닝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일찍부터 대천 지리에 밝아 해수욕장 방향 들녘 길을 기억하고 있었다. 철길 건널목 지나 욕장 방향으로 반듯이 난 도로 말이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빠른 속도로 뛰었다. 매일 아침 4킬로 구보를 하던 버릇이 있어 부대에서 뛸 때처럼 몸이 가벼웠다. 철길 건널목을 지나자 반듯한 도로가 어둠 속으로 펼쳐졌다. 속력을 붙였다. 부대 대표 마라톤 선수로 육군본부 전투력 측정에까지 나간 적이 있어 구보 정도는 몸 풀기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한참을 달려 직선 도로 끝나는 지점에서 돌아 다시 읍내 쪽을 향해 뛰었다. 그때까지 도로엔 차량 한 대 지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더 달렸을 때 읍내 쪽에서 라이트를 켠 차량 한 대가 달려오는 것이었다. 잠시 후 곁을 지나칠 무렵 눈짐작으로 군용 짚인 걸 직감했다. 누군가 출근을 하는구나 생각하곤 계속 달렸다. 그러자 지프가 ‘끼기끽’ 소리를 내더니 빠른 속도로 후진해왔다. 나도 그만 정지하고 말았다. 후진으로 앞서 정지한 지프에서 건장한 남자가 내렸다. 무궁화 세 개 짜리 대령이었다. 나는 부대에서처럼 거수경례를 올렸다. 당시 부대 경례 구호가 ‘특공’이었으므로 오른손을 날세워 이마에 대며 ‘특공!’하고 외쳤다. 그러자 대령의 눈빛이 확 변했다. “새벽에 군인이 구보를 뛰어 우리 부대 장교나 하사관인가 했소. 근데 경례 구호가 낯서네요.” “옙. 전방 특공부대입니다. 휴가 중입니다.” 그랬더니 대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악수를 청했다. “휴가 나와서까지 구보 뛰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멋집니다.” 그는 잡은 손을 얼른 놓지 않았다. 짚차가 떠난 후 다시 구보를 시작했지만 한동안 그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새로워지곤 했다. 고향집에 있으면서도 아침마다 마을 뒷산 꼭대기까지 뛰어 올랐다. 부대에 복귀하여 전우들에게 뒤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집에서 마을 뒷산 봉우리까지는 왕복 3km 가량 되어 운동 코스로 아주 좋았다. 아까 육군본부 전투력 측정을 언급한 바 있는데 당시 장거리 마라톤 결선에서 2위를 했다. 스퍼트 할 때 계산만 잘 했어도 1위를 하는 건데 그만 2위에 그쳤다. 결승 라인이 5미터만 길었어도 앞 주자를 제쳤을 것이다. 간발의 차이로 끝내 추월하지 못한 게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다시 갈 수 없는 추억들이다. 요즘은 지명의 문턱에 이르러 4층 사무실도 헉헉대며 오른다. 집에서 사무실까지 큰 맘 먹고 도보로 출근 한 게 딱 한 번뿐이다. 평소 운동하는 습관이 중요한데 게을러 그런저런 시도를 꾀하지 못한다. 요즘은 아파트촌에서도 걷기 운동하는 분들을 자주 본다. 새로 오신 회원 님 거주지가 보령시라는 말씀에 생각이 나서 속타로 두들겼다. 지금 궁촌리는 궁촌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는 가운데 일대가 온통 신도시로 탈바꿈했다. 도로를 비롯하여 싹 정비됐다. 하지만 청양으로 난 도로를 달리다 보면 여전히 청라저수지의 고요한 수면을 바라볼 수가 있다. 큰누님 집을 오가며 시외버스 차장으로 내다보던 옛날과 다르지 않다. 문득 꿈을 꾸듯 되짚어 보는 궁촌리 추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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