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나귀를 보았다. 종종 짐을 지고 다녔다. 장꾼이 나귀등에 짐을 얹고 먼 길을 가거나 -이효석의 소설처럼- 농촌 가정의 웬만한 짐을 운반하는 데에도 동원되었다. 그런데 이 나귀가 한 번 고집을 부리면 아무도 말리지를 못했다. 한번은 동네 한길에서 잘 걷던 나귀가 걸음을 멈췄다. 주인이 고삐를 쥐고 어르며 달랬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주인은 화가 치민 나머지 고삐로 등을 후려갈기며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귀는 눈만 내리 뜨고 통 움직일 줄을 몰랐다. 삼십분 넘게 짐승과 싸우던 주인은 홀로 어디론가 가 버렸다. 호기심 반 신기함 반으로 모인 우리는 한참 후 주인이 시래기와 당근을 가져오는 걸 보았다. 주인이 나귀에게 그것을 주자 그제야 꿈쩍 않던 나귀가 입질을 하며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단한 나귀 고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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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인천문협
글쓴이 : 류종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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