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고향 생각

[스크랩] 모

펜과잉크 2008. 5. 16. 12:39

 

 

 

 

아침에 휴대폰을 받으니 고향집 어머니이십니다. 25일 날 모내기를 하는데 시간 있으면 와서 아버지 심부름 좀 하라십니다. 달력을 보니 근무날이라 휴가를 낼까 생각 중입니다. 요즘 모내기는 인부와 기계가 하지만 잔손이 가는 일은 여전히 사람 몫입니다. 모단을 나른다든가 말입니다.

 

고향 집 논 중엔 근처에만 가도 지면이 출렁대는 깊은 수렁이 있었습니다. 찬물이 솟아 겨울에도 얼음이 얼지 않았지요. 그런데 언젠가 모내기 하는 날 내려가 보니 그 수렁이 없어진 겁니다. 아버지께서 농한기 인부를 사서 땅 밑에 파이프를 깔아 물줄기를 논배미 밖으로 빼내신 겁니다. 보통 작업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선 밤나무 단지에도 길을 내어 차를 몰고 산 너머까지 다닐 수 있도록 해놓으셨습니다. 몇 년 전엔 1천평 가량을 다시 개간하여 밤나무 묘목을 증식하셨더군요. 밤나무는 이식 후 3-4년만 지나면 수확이 가능한 작물입니다. 종일토록 밤을 줍는다는 게 허리 부러지는 중노동이지만 말입니다. 밤나무는 결이 곧아 대보름 날 윷가래로 쓰이지만 고사목을 썰어 땔감 장작으로 이용해도 화력이 뛰어납니다.  

 

에, 기계모를 심으면 며칠 후에 가서 땜질을 해줘야 합니다. 물에 떠있는 모를 똑바로 꽂아 주는 작업이지요. 기계가 동작만 빠르지 사람처럼 완벽하질 못하거든요. 또 얼마 지나 논배미가 이 게시판 초록색으로 변하고 나면 비료를 뿌리고 피사리도 해줘야 합니다. 농약은 비행기가 살포합니다. 비행기는 밤나무밭까지 날아다녀요. 그 삯은 추곡 수매 때 자동으로 떨어져 나갑니다.

 

옛날에, 관촌이 민심을 똥으로 알 적엔 전봇대가 남의 논배미를 마구 밟고 다녔습니다. 주인에게 통고도 없이 전봇대를 일직으로 꽂았지요. 그래 촌 양반들이 면사무소에 항의하는 사태가 잦았습니다.

"어떤 놈이 우리 논에다 전봇대를 박았유. 면이서는 알고 있었습니까? 몰르고 있었습니까? 전봇대를 박아놓으면 일 해먹기가 얼매나 고충인지 알기나 헙니까? 쟁기질 하나 마음대로 못 헙니다. 면이서는 알고 있었쥬?"

"죄송허지만 어르신, 그것은 한전 소관이라 면이서는 몰르겄네유. 면이서 허는 일은 주거환경 개선이라든가 폭우로 유실된 논배미 파악혀서 국가 보조금 타내는 일 같은 걸 주로 보는디유. 전봇대허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한전으로 전화를 걸 것 같으면 '담당자가 출장 갔유' '밥 먹으러 갔유' '화장실 갔유' '일 있어 쬐끔 일찍 퇴근 혔유' '내일 다시 혀봐유' '모레 다시 혀봐유' '교육 갔유' '휴가 갔유' 소리만 늘어놓아 이쪽에서 즈레 단념하고 맙니다.

 

그래도 대지는 살아남아 봄이면 어김없이 싹을 틔우고 논배미 가득 푸른 모들을 키웁니다. 모는 유월 미풍에 파도처럼 일렁이며 가을 풍년을 약속할 것입니다.

 

 

 

 

 

 

출처 : 인천문인협회
글쓴이 : 류종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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