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Pen 혹은 文學

아이러니

펜과잉크 2008. 6. 16. 16:13

 

 

 

아까 아래 글에서 인터넷 모임(cafe)에 관해 언급했는데요. 인터넷 모임의 활성화를 위해선 첫째 격(格)을 없애는 것입니다. 흔히 준회원, 정회원, 특별회원 어쩌고 하면서 신분을 따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온당치 못하다는 주장입니다. 무슨 세상이 이토록 걸리는 게 많습니까? 안됩니다. 회원으로 가입하는 순간부터 모두 동등한 신분을 누리게 해야 합니다.


제 경우 문학 까페는 인천문협과 내항문학 두 군데 외엔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예전처럼 문학을 함에 있어 열정을 필두로 세우는 것도 아니고 동호회 가입만 한다 해서 대수가 아니므로 인천 바닥서 두 군데 정도면 충분하다는 판단에 의해서입니다. 그런데 내항문학은 저를 동인회원으로 가입시켜주었으면서 ‘동인전용게시판’ 입실을 허용치 않아 통 글을 읽거나 올릴 수가 없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아직 정회원 신분이라 특별회원만이 쓰기 가능한 ‘동인전용게시판’을 이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내항문학 까페는 같은 동인회원 중에도 정회원이 있고 특별회원이 있는 셈입니다. 제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는 조치이므로 별로 정이 가질 않습니다. 그래 요즘은 들리지 않습니다. 활동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요.


며칠 전,
수봉공원으로 바람을 쐬러 갔다가 목격한 장면입니다. 제가 앉아 있는 칡즙 노점상 맞은편 슈퍼마켓에 남자들 넷이 모여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그 앞을 중년 여성 두 분이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남자들 앞을 지나쳐 온 여성 중 한 분이 제 곁을 지나가며 욕설을 하는데 가히 엽기적이더군요.
“씹새끼들이 지나가는 여자들을 보면 위아래로 훑어보고 생쇼를 한단 말이야. 아니, 남의 여자들이 뭐 그리 보고 싶냐 말이야. …개새끼들!”
여자는 몹시 흥분한 투였습니다.


저는 여자에게 관심이 쏠렸다가 아이러니한 현상을 목격했습니다. 정작 두 분 중 몸매 미끈한 여자는 아무 소리 없이 지나가더란 말입니다. 표정도 일체 언짢아 보이지 않았고요. 그에 비해 욕설을 한 여성은 몸뚱이가 하마를 연상케 할 정도로 비대했어요. 아마 그 분은 평소 자신의 육중한 몸에 히스테리를 갖고 사는 분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일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남자들이 자신을 보았다는 이유만으로 심한 욕설을 할 수가 없을 테니까요. 어쩌면 그 분의 히스테리도 스스로의 굴레, 즉 혼자만의 격(格)에 종속되어 지배당하는 일종의 병적 딜레마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넷 게시판에서도 차별을 두려는 발상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까페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가입하는 순간부터 대등한 지위가 되는 것입니다.


이쯤에서 백석(白石)의「모닥불」을 인용해볼까 합니다. 말 그대로 백석의 모닥불은 ‘새끼 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깃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입니다. 그 모닥불을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도 늙은이도 더부살이 하는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사도 땜장이도 큰개도 강아지도’ 함께 쪼이지요. 우리는 모두 인천문협 회원이거나 혹은 인천문협을 사랑하는 분을 망라하여 이곳에서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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