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하루 전,
잠시 후 별채에서 건너온 둘째아우는 대화의 흐름만으로 ‘백석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어버렸다. 그래 나는 더 이상 설명할 가치가 없다 믿고 다음 화제로 말을 돌렸다. 사실 여러 출판사에서 백석의 시(詩)를 경쟁적으로 펴냈지만『시와사회』시집 -일일이 북관 사투리에 대한 설명을 붙임- 외엔 딱히 읽을 만한 책이 없었다. 백석을 겨냥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논문을 썼는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엄격히 따져 백석의 사망연도나 사인조차도 명백히 밝혀내지 못한 상태이다. 일부에선 북(北) 정권에 협조하지 않은 보복으로 숙청 당했다 하는가 하면 산골로 추방되어 쓸쓸히 여생을 마쳤다는 주장도 있다. 백석의 가족사진을 놓고 별의 별 추측과 예단을 내놓기도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960년대 중반 사망설과 1990년 초 사망설이 대립했을 정도이니 백석에 대한 연구가 얼마나 미약한지 짐작이 간다.
둘째아우는 백석을 두둔하면서 설령 그가 이념에 물든 시(詩)를 썼다 할지라도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몸짓 정도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이광수나 서정주 혹은 최정희 같은 문인들도 같은 방향으로 접근해가야 하지 않을까? 고(故) 모윤숙 씨가 생전에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길’이었다고 역설하였음에도 사람들은 그녀를 친일문인으로 몰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저들과 백석의 경우가 달리 평가되는 점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앞의 문인들과 백석을 동일선상에서 같은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다. 백석의 시(詩)를 지탱하고 있는 기조나 성향 따위들이 분명 저들과 같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딴은 양자를 극명히 구분 지을 특별한 명분 마련이 쉽지 않음 또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아무튼 앞으로도 백석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리라 믿는다. 개인적으로는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져 문학 분야 교류에도 획기적인 변화가 있기를 고대한다. 백석이 말년을 보냈다는 ‘어느 산골’에 대한 연구까지 세부학적으로 이루어져 다시 한 번 그를 촘촘히 들여다볼 수 있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女僧 백 석
* 2008. 2. 27 밤 仁川文協 류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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