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스크랩] 하계휴가

펜과잉크 2008. 8. 8. 19:18

 

 

 

 

 

 

하계휴가를 맞아 쉬는 중입니다. 그저께는 고향집에 있었고요. 고향집에서 아들과 함께 자다가 서너번 잠이 깨었는데요. 추위 때문이었습니다. 새벽에 어찌나 춥던지 결국 창을 닫고 이불을 꺼내 덮었네요. 요즘 같은 때 이런 소리하면 의심하실 분도 있겠습니다만 아침에 아들한테 물으니 아들도 서너번 깨었다 하더군요. 제가 먼저 일어났는데, 아무튼 아들도 이불을 목 부위까지 덮고 자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한낮 기온은 인천보다 더 뜨거웠습니다.

 

고향 수박이 사르르 녹는 맛이었습니다. 찰옥수수를 삶아 배 터지게 먹었고요. 아버지님이 부여에서 유명한 <우리냉면>집을 말씀하시길래 모시고 가 한그릇 사 드렸습니다. 참 맛있더군요. 고향의 음식은 다 맛있습니다. 풀 한포기도 소중하지요.

 

고향집엔 이웃 마을에서 얻어 오셨다는 강아지도 있었습니다. 주먹만한 몸에 벼룩이 보여 살충제로 싹 소독해주고 목욕을 시켰습니다. 밤엔 제법 짖을 줄도 알더군요. 평상 밑에서 배를 척 깔고 자는 모습이 귀여웠습니다.

 

몇 년 전부터 밤나무 전지(가지치기) 정부 무상 지원금이 1정보당 50만원 씩 나온다는 소식을 이번에 처음 들었습니다. 저희 집에선 금년 처음으로 3정보를 신청하셨다 하더군요. 그동안 전혀 몰랐던 이유를 묻자, 이장이 알려주지 않아서랍니다. 시골에선 이장의 역할이 막중하지요. 문제는 전임 이장이 자신의 친척들에겐 고루 알려 혜택을 받게 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마을에서 전임 이장 집안과 저희 집안이 온화한 관계가 아니거든요. 피차 어느 한쪽 집안의 표가 몰리는 쪽이 이장으로 당선될 정도로 막강한 유권자가 쌍벽을 이루기도 합니다. 씨족으로 형성된 마을의 특징입니다.

 

전임 이장은 12년 가량 직책을 수행했습니다. 그런데 고인 물이 썩는다고, 사람 행동이 점점 거만해지는 것이었습니다. 후배인 제가 인사를 해도 받는 척 하고요. 고향 찾아 가끔 마을발전기금 명목으로 봉투를 내미는 입장으로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 금년 이장 선거 때 직접 친지들께 전화 드려 현임 이정구 이장에게 표를 몰아 달라고 운동 좀 했지요.

당시 제가 강조했던 걸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에, 사람이 말입니다. 근본 바탕이 글러먹으면 안된다고 생각헙니다. 지가 고향 가서 인사 헐라치면 모가지 뻣뻣이 제끼고 먼 산 보듯 껍쭉대는 그 형님을 이장으로 뽑으면 동네에 애로사항이 많을 거라, 그런 얘기입니다. 그 형님이 저한테만 뻣뻣헌가요? 이 사람 저 사람 물어봐도 이미 정평으로 굳어졌던데요. 반면 이정구 형님을 보십시오. 그 분, 거만한 데가 있습니까? 인사 받으며 뒤로 모가지 꺾는 사람도 아니고 말 함부로 흘리는 사람도 아닙니다. 가령 시골 어른이 눈 어두운 일을 물을 때 한 쪽 다리 삐닥하게 받쳐 서서 주둥이로만 서너마디 던지고 마는 사람과 가차이 다가와 이것저것 표시해가며 조목조목 알려주는 사람은 큰 차이가 있다 이겁니다. 정구 형님, 매사 성실성이 몸에 밴 사람이고요. 이장감으로 적격입니다.'  

결과적으로 이정구 형님이 이장으로 뽑혔는 바, 그 분이 이장을 맡고부터 동네가 변혁을 맞다시피 했습니다. 밤나무 단지로 건너가는 개울마다 *노깡을 묻고, 하여튼 큰 변화를 몰고 왔습니다. 밤나무 전지 무상 지원금 얘기도 비로소 그 형님 입에서 공개되었지요. 시골 돈 150만원이 개 이름이 아니잖아요. 가을철 밤 수확을 예로 들면 한 이틀 허리 부러지도록 주워야 만지는 액수라 이겁니다. 이장 세계에도 좌파가 있고 우파가 있나 봐요.

 

먼 길 달린 차 엔진오일과 데후오일을 갈아줘야 할 것 같습니다. 창으로 스미는 바람이 시원하네요. 입추 지난 날씨로는 아직 멀었습니다만...

 

 

 

 

* 노깡 : '

 

 

 

 

출처 : 인천문인협회
글쓴이 : 류종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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