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을 열어놓고 잠깐 다른 책을 볼 일이 있어 글이 늦었습니다. 오타가 있더라도 이해 바랍니다. 날이 새면 다시 한 번 점검하겠습니다. 다초점 렌즈라서 오래 있질 못해요. 자, 그럼 속타로 나가겠습니다.
클래식기타! 가장 좋아하는 악기입니다.
하루에도 기타마니아 사이트(http://www.guiitarmania.org)에 몇 번씩 접속합니다. 딱히 할 일이 없어도 접속합니다. 어떤 악기가 매물로 올라오는지도 꼼꼼히 살피죠. 초보나 고수님들의 연주 동영상 혹은 파일도 다운로드 받아 감상합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이던 1975년 봄에 색소폰을 선물 받아 불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충청도 산골에선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 해 저희 마을에 전기가 들어왔으니까요. 색소폰은 큰누님이 사주셨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제 킹(KING) 매리거즈 모델이더군요. 그때나 지금이나 알아주는 모델입니다. 단종 됐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그랬어요.
꾸준히 색소폰을 하다 보니 음정에 눈을 뜨게 되더군요. 그래 색소폰이란 악기가 가포지션이 많고 고옥타브에서 음이 찌그러지는 현상도 잦다는 걸 알았습니다. 하나의 악기를 일정한 톤으로 연주하면 어느 정도 익숙해질 수 있지만 아무튼 음악에 눈뜨게 되면서 악기를 연주한다는 게 쉽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색소폰은 리드 악기라서 클라리넷과의 호환이 가능합니다. 같은 리드 악기니까요. 인천클라리넷앙상블 단장 이일하 씨와도 잘 아는 사이가 됐습니다. 그 분이 색소폰을 겸하시거든요. 대학교 동문이기도 하고요. 열심히 사는 분이잖습니까? 아무튼 그랬답니다. 제가 클래식기타 얘기를 하면서 위와 같은 사설을 띄우는 건 소개 차원에서입니다.
관악기를 하다 보니 뭔가 진정한 악기를 다루고 싶었습니다. 바로 클래식기타였죠. 베토벤이 클래식기타를 작은 관현악단이라 했다죠? 한 대의 악기로 그토록 아름다운 화음을 빚는 악기가 기타 외엔 없다는 생각입니다. TV에서 이탈리아 출신의 클래식 연주자 연주를 감상하고부터는 굳게 배우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 색소폰을 장롱 깊이 보관하고 기타 배울 곳을 수소문 했죠. 1995년입니다.
집 근처에 시내에서 손꼽히는 클래식기타학원이 있었습니다. 거길 갔죠. ‘싸모님’이란 분이 접수를 받더군요. 정중히 인사드리고 열심히 배우리라 다짐했습니다. 제 성격이 뭔가 한 번 시작하면 최소한 3분의 2는 이루어 내는 성격입니다. 카르카시 연습곡 25곡까지는 마스터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 정도이면 어지간한 곡은 연주 가능할 테니까요.
1995년, 제 나이 서른다섯일 때입니다. 처자식을 거느린 몸이었습죠.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촉망받는 젊은이였죠. 근데요. 학원에 가면 제 신세가 ‘얻어먹는 거지’ 꼴이었습니다. 그 ‘싸모님’이란 분 정말 대단하더군요. 학원 수강생들 대하기를 마치 초등학생 다루듯 하는 것이었습니다. 배우고 나서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왠지 기분이 영 떫은 거 있잖습니까? 그 분이 까페 회원이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직접 경험한 바이니까요. 쉬는 날은 편한 청바지에 물빠진 야전잠바를 즐겨 입는데 그런 스타일이 사람을 달리 보이게 하나 봐요.
어느 날,
그날은 굉장히 더운 날이었습니다. 땀을 흘리며 학원에 들어서니 ‘싸모님’께서 턱으로 연습부스를 가리키며 어서 연습하라는 표정이더군요. 두 말 없이 연습실로 들어갔습니다. 근데 불을 켜고 5분쯤 연습하자 땀이 줄줄 흘러 내렸어요. 좁은 연습실에 조명의 열기까지 더해졌던 거죠. 견디다 못해 선풍기를 얻으려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싸모님’께서 접수대 여직원이랑 수박을 잡숫고 계시더군요.
“선풍기 좀 틀 수 없을까요?”
했더니 들은 척도 않는 것이었습니다. 힐끔 쳐다보고 말더군요. 대신 경리 여직원이 말하길 전기세 때문에 선풍기를 아낀답니다. 그러면서 둘이 쟁반에 있는 수박을 아주 맛있게 먹더군요. ‘쩝쩝 짭짭’ 신나게 처먹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한창 운동할 때여서 배고플 땐 돌멩이까지 먹을 것으로 보이던 시절이었는데요, 쟁반에 가지런히 썰어진 수박이 왜 그리도 맛있어 보이던 지요. 물론 수박 한 쪼가리 먹으란 소리 못 들었죠.
집으로 가면서 생각했습죠.
‘니미, 기타는 무슨 기타냐, 그냥 솔잎만 뜯어 먹자. 색소폰 & 트럼펫이나 열심히 불자, 이거여.’
그렇게 마음먹었습니다. 이튿날부터 학원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나오라는 전화 한 통 없더군요. 지금도 수강료가 아깝습니다.
다시 관악기만 불어대며 살았죠. 근데요, 참 이상하게 클래식기타에 대한 미련이 사라지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배우고 싶었거든요. 그래 몇 개월 후 114에 전화를 걸어 인천 남구의 기타학원을 물었습니다. 그때 알아낸 게 ‘세광음악학원’이었습니다. 수봉공원 입구 ‘세광음악학원’ 말입니다. 오창원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거길 갔죠.
‘클래식기타를 해봤나요?’
물으시더군요. 그래 며칠 배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만 둔 이유를 물으시기에 대충 내막을 말씀 드렸습니다. 선생님 눈빛이 번쩍 빛나더군요. 경계의 표정과 함께 말입니다.
“정말 클래식기타를 배우고 싶소?”
“예!”
“얘기 들어보니 각오가 비장한 것 같네요.”
그러시며 저녁에 주안4동 선생님 댁에 들러 가라 하시는 게 아닙니까? 제 집이 주안2동이라 주안4동 선생님 댁은 도보로 10분 남짓이었습니다. 밤에 음료수 한 박스 사 들고 선생님 댁을 방문했죠. 그랬더니 선생님이 안방 윗목에 있는 기타 세 대 중 한 대를 번쩍 들어 성큼 건네시는 것이었습니다.
“이걸로 배워요. 내 자식에게 물려주려 했는데 자식 놈이 기타엔 콧방귀도 안 뀝니다. 당신에게 주리다.”
저는 놀란 나머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기타를 들고 주안2동 집까지 걸어가는데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습니다. 겨울이라 손이 시려 마비되는 느낌이었지만 양손으로 번갈아가며 집까지 날아갈 듯 걸었습니다.
그때부터 오창원 원장님께 클래식기타를 배웠습니다. 악기라는 게, 특히 클래식 기타라는 게 부단한 자기 노력 밖에 더 있겠습니까? 열심히 연습했지요. 참 재미있었습니다. 집에서도 연습할 수 있고요. 몇 개월 후 개정판「카르카시기타교본」 보충학습Ⅰ ETUDE(연습곡)까지 연습했습니다.
그런데 정기 인사발령 때 그만 민원부서로 발령이 나버렸습니다. 답답하더군요. 자연히 학원에 가는 날이 줄었습니다. 급기야 한 달에 한 두 번 나가는 꼴로 바뀌었죠. 결국 학원을 그만 뒀습니다. 기타 연습도 게을러졌습니다. 아무리 집에서도 가능하다지만 연일 밤늦은 시간에 기타 연습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이제 2-3개월에 한 번씩 꺼내보는 정도였습니다. 완전히 끊지는 못했던 거죠.
세월이 흘러 대망의 2008년이 됐습니다. 기타는 여전히 초보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전 연초 다짐하기를 올 한 해를 클래식기타 배우는 걸로 목표를 삼았지요. 그래 다시 오창원 선생님을 찾아 갔습니다. 엄태흥 선생님 200호 기타를 떡하니 들고 말입니다.
“어라? 내 친구 태흥이 기타네.”
무척 좋아하시더군요.
그래 예전처럼 학원에 다니게 됐습니다. 근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일반 수강생이 오직 저뿐이다 보니 대체 기타를 배우긴 하는 건지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혼자 연습하다 보면 졸음이 와서 의자에서 넘어질 뻔한 적도 있었고요. 종합학원이라 색소폰, 클라리넷, 드럼, 오르간, 피아노, 아코디언 수강생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불고, 긁고, 두드리는 소음이 장해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꿋꿋이 다녔어요. 수봉공원 입구 상인들이랑 주차문제로 시비까지 벌이면서 말입니다. 하하….
금년도 교본은 박성문 편저 「초보자를 위한 새클래식기타교본」입니다. 각 장조 및 단조의 음계와 코드를 마치고 특수주법 곡들도 몇 곡 -「우울한 미소」 「러브스토리」 「Pensando En Ti」등- 연습하는 정도가 됐습니다. 근데 배워도 자꾸 잊어버리더군요. 제 머리가 나쁜가 봐요.
에, 교본뿐 아닙니다. 목수가 연장 탓만 한다고, 그동안 바꾼 악기도 여러 대이네요. 엄태흥 선생님 200호를 시작으로 김정곤 선생님 400호를 거쳐 지금은 강두원 선생님 200호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17일 네크 A/S를 보냈지만 말입니다. 곧 찾을 때가 됐어요. 악기를 가지고 있을 땐 제작자 선생님들을 직접 찾아가 점검도 받곤 하거든요. 아무튼 열정은 스스로 생각해도 괜찮은 거 같은데 실력이 빵점입니다. 「Home Sweet Home」같은 곡을 연주해도 꼭 한 번은 틀려야 직성(?)이 풀리는 실력이니 대략 알 만 하겠죠?
지금도 여전한 건 클래식기타를 배우고 싶다는 것입니다. 누가 좀 가르쳐 주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제 바쁜 부서로 발령 날 일 없어 여건도 좋아졌습니다. 배우기만 하면 돼요. 본격적으로 클래식기타를 배우게 되면 다른 악기는 손을 놓으려 합니다. 하모니카나 여벌로 할까 해요. 그만큼 클래식기타에 대한 비중이 큽니다. 제가 클래식기타에 집착하는 이유는 훗날 직장을 그만 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히 기타 치면서 살려는 이유 때문입니다. 죽을 때까지 기타를 뜯으며 살렵니다.
여러분과 클래식기타를 하게 되면 오창원 선생님 학원은 그만 둬야 할 것 같아요. 선생님께 죄송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인연에 연연하여 후퇴할 순 없으니까요. 훌륭하신 분인데 제가 ‘종합학원’ 분위기에 적응을 못하겠어요. 1995년, 그때부터 클래식기타를 꾸준히 했다면 지금쯤 「카르카시기타교본」을 떼고도 남았을 겁니다. 아, 잔혹한 클래식기타…. 후회스럽습니다. 열심히 할 것을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 시작해도 늦진 않겠죠? 시작이 반이라잖아요. 저도 이미 반을 성취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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