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하모니카 예찬

펜과잉크 2008. 11. 4. 07:50

 

 

 

 

지난 17일, 
김포시 하성면엘 다녀왔습니다. 하성면 원산리라고, 한강 제방 도로 끄트머리에 있더군요. 생각보다 멀게 느껴지는 곳입니다. 원산리는 ‘元音악기’ 강두원 선생님 공방이 있는 동네입니다. 수도권에 사시는 클래식 기타 장인들의 공방에 여러번 갔었네요. 기타에 관심이 높다보니 어쩔 수 없습니다. 

 

오는 길에 서울 낙원상가 들러 TOMBO 21홀 복음(複音) 하모니카를 샀습니다. 원곡 최제형 선생님이 글을 보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덕적도에서의 선생님 하모니카 연주는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이후 저도 따라 하기로 마음먹었거든요. C조로 사 가지고 와서 옛날 생각만 하고 <목포의 눈물>을 뽑으려니 한 마디도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습니다. 사실 원곡 선생님의 하모니카 연주는 수준급입니다. 하모니카 연주라는 게 그냥 되는 게 아니거든요. 멜로디에 화음을 넣어야 하는데, 이게 장난이 아닙니다. 오른손 위치와 기능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막상 배우고 나면 별 거 아니겠지만 지득 과정에선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모니카 얘기가 나와서인데요, 제겐 월남전에서 가져온 하모니카가 있습니다. 야마하 복음 하모니카로 소리가 빼어납니다. 결혼 직후 처가에 갔다가 멋진 하모니카를 보고 큰처남께 사정(?)하여 지금까지 소장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환갑 넘은 큰처남이 월남에 가서 구입한 하모니카이니 꽤 오래 됐지요.

 

저는 시골 농부의 자식임에도 남 누리는 것들을 고루 경험하고 자랐습니다. 결혼 후 반성하고 부모님께 일절 손 내밀지 않지만 말입니다. 하모니카는 초등학생 때부터 만졌습니다. 선선한 가을밤에 저녁밥을 먹고 사랑채 지붕 위에 누워 오래도록 불었습니다. 박 쇠어가는 지붕 위에서 이슬 맞아 가며 밤늦도록 불었던 거죠. 악보는 필요 없었습니다. 대략 짐작해서 불면 익숙해지는 게 하모니카니까요. 대신 화음을 넣는다는 건 엄두를 못 냈지요. 그냥 멜로디만 불면 자동으로 하모니가 이루어지는 복음(複音) 악기였습니다. 굳이 일본 말로 ‘후루꾸’인 셈이었습니다.

 

나중에 사랑채 지붕이 슬레트 개량됐을 때에도 종종 올라가 불었습니다.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누우면 은하수 무리가 눈앞에 펼쳐져 내려오기가 싫었습니다. 대신 슬레트 지붕은 조심해야 했어요. 각도가 높아 자칫 미끄러지면 낭떠러지였으니까요. 그래 슬레트 지붕에 박힌 못대가리에 발굽을 고정시켜 놓고 누워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마냥 불었습니다. 고요한 밤하늘에 하모니카소리가 끝없이 펴져 날아갔습니다. 그러다가 달도 기울어 사위 음산해지면 슬그머니 자리를 털고 내려왔습니다. 시골 밤은 삼경 넘어 구렁이가 나올 것처럼 오싹해지거든요.

 

그 시절, 하모니카로 즐겨 불었던 곡이 <과꽃> <오빠생각> <등대지기> <과수원길> <겨울나무> <선구자> 같은 곡들이었습니다. 그런 곡들은 어렵지 않게 연주할 수 있습니다. 유행가로는 <섬마을 선생님> <여자의 일생> <사랑해> 같은 곡이 있었고요.

 

방귀희 여사가 운영하는 <솟대문학> 편집장 김종태 선생님이 하모니카를 아주 잘 부세요. 선생님과는 먼 옛날 서울에서 문학을 필두로 함께 활동한 전력이 있습니다. 서울 광진구 사시는데 광진구청에 하모니카 아카데미 교실을 개설하여 지역문화 창달에 일조하는 바가 크신 줄 믿습니다. 선생님은 하모니카 뿐 아니라 ‘풀꽃 사진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지요. 사실 문학 어쩌고 하는 아카데미보다 하모니카 같은 예능반 신설이 훨씬 현실적이에요. 예능과목은 반복하여 얻는 거라도 있잖습니까? 문인에게 백 날 문학을 배워 보십시오. 글이 잘 써지는지... 문장력은 남의 힘을 빌어 얻는 게 아닙니다. 그럴 시간 있으면 책 한 권이라도 더 읽고, 하다못해 서점에서 <원고지 작성법> 같은 이론서나 사다가 열심히 읽으십시오.

 

문득 고향집에서 불던 하모니카소리가 그립습니다. 세상 걱정 없이 오직 하모니카 하나만 열심히 불면 다 해결될 것 같던 시절이었지요. 그런 착각의 연장선상에서 색소폰과 트럼펫 같은 악기에 손을 댄 것입니다. 훗날 고향으로 돌아가면 뒷동산 언덕에 앉아 오래도록 불고 싶은 하모니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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