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이다. 역시 직장 휴일로 쉬고 있는 딸이 외출 인사를 하길래 현관까지 배웅해줬다. 그러다가 우연히 열려있는 딸의 방을 보게 되었다. 방문을 닫으려다 안을 들여다 본 나는 그만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무슨 방이 저리도 지저분하단 말인가? 방금 전 예쁘게 단장하고 외출하던 딸의 모습과는 판이하다. 이 대낮에 불도 켜놓고 나갔다. 속이 뒤집혔지만 쥐어 팰 수도 없고……. 요즘은 새끼 잘못 건드리고 100m 접근 금지 당하는 세상 아니냐 말이다. 아무튼 세 아이 방을 차례로 열어보기로 했다.
딸이 제일 큰 아이인데 외견상 예쁘고 옷 잘 입는 것과는 달리 가장 게으르다. 딸이 주방에서 설거지하는 모습을 일년에 두 세 번 볼까말까하다. 왜 그럴까? 대체로 어렸을 적부터 궂은 일을 시키지 않은 결과로 보인다. 딸은 곱게만 자랐다. 저 아이 앞에 가령 바퀴벌레 같은 게 출현하면 기절할지도 모른다. 이건 좀 심각하다.
딸의 방(원본 파일)
책꽂이
둘째, 그러니까 우리집 큰놈 방을 열었다. 군대 다녀온 복학생인데 내가 볼 땐 여전히 낙제점이다. 침대에서 몸만 빠져나간 게 분명하다. 학교 수업에 쫓겼는지 급하게 나간 흔적이다. 장롱 문도 활짝 열어놨다. 노트북도 정리가 안됐다. 책꽂이엔 참고서 외에 전용 화장품 같은 것도 보인다. 주제에 CHANEL 향수도 있다. 아마 제 누나를 시켜 온 것 같다. 그 외에도 여기저기 성인의 티가 묻었다. 하더라도 60점 이상은 못 주겠다.
큰아들 방(원본 파일)
책꽂이
마지막으로 고3 막내아들 방을 열었다. 전방이 훤하다. 좋게 말해 검소하다고 할까? 단촐한 내부다. 하지만 분명 다른 게 있다. 이 녀석은 성격이 깔끔하다. 요즘도 잠자리에 들기 전 옷을 가지런히 개어놓는 걸로 안다. 유아원 때부터 습관화되어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아쉬운 점은 책꽂이가 부실하다. 인문계 고등학교 3학년 문과생 책상이 뭐 저런가. 물론 참고서 대부분을 학교 사물함에 놓고 다니지만 그래도 입시를 앞둔 학생이라고 하기엔 궁색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침대 옆 인테이블을 보니 휴지와 반(半) 자른 껌, 입술크림, 빗이 있다. 역시 가지런히 놓여있다. 책상에도 화장용 거울과 빗이 보인다. 참고로, 녀석의 책꽂이 카렌다는 내 방 것을 가져다 놓은 것이다. 얼마 전 사라진 것이니……. 카렌다 사진을 보면서 나는 녀석이 왜 그 카렌다를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녀석에겐 친구들이 많다. 중학교를 졸업한지 3년 됐지만 여전히 그때 친구들과 어울린다. 그 친구들이 각급 학교로 퍼져나가 인근 고등학교에 고루 재학중이다. 몇 놈이 오는 걸 보면 무슨 영화 속 조폭 같다.
'인천에서 저희 in고(高) 하면 50%는 먹고 들어간대요'
라고 말하는 녀석의 성적은 학급 45명 가량 중에서 15등 내외다. 그나마 성격이 원만해서 다행이다.
세 아이를 두고 결론짓자면 마음에 드는 순서는 역순(逆順)이다. 막내가 가장 깔끔하고 딸이 제일 뒤떨어진다. 삶의 지표가 깔끔한 정도에 의해 나눠지는 건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런 점들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면 한번쯤 지적을 해주는 것도 좋은 교육이라는 판단이다. 공부가 첫째는 아닌 것이다. 언제 기회를 봐야겠다.
막내아들 방(원본 파일)
책꽂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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