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목봉체조에 관한 추억

펜과잉크 2009. 4. 3. 00:57

 

 

 

내 군대 주특기는 160이다. 얼마 전까지도 동사무로 개인별주민등록표 초본을 발급받으러 가서 병역사항을 주문하면 하단에 '160 특전정작'이라 인쇄되어 나왔다. 

 

책에선 부대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으나 1980년대 초 특수부대원으로 복무했다. 인터넷에서도 떠도는 '가리산특공대'였다. 703특공대 창설멤버다. 전두환 대통령은 군 출신답게 특수부대에 대한 지원이 전적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만큼 푸짐히 먹은 적이 없다. 수당도 파격적이었다. 작전수당 등을 모아 단기하사 3호봉보다 많은 돈으로 일제 Sony 워크맨을 살 수 있었다.  

  

우리 2대대는 한보주택에서 지은 호텔식 막사로 3층이었다. 건물 내부에 좌변기 화장실과 샤워실, 목욕탕이 구비되어 있었다. 내무반은 중앙난방식으로 밤에 스팀 위에 봉지물을 끓여 컵라면 간식 같은 걸 즐겼다. 부대생활은 천국이었다. 휴식도 보장되었다. 토요일 오전 학과가 종료되면 월요일 출근 전까지 일체 간섭하지 않았다. 폭설이 내려도 제설작업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주말에 인제, 속초, 강릉으로 외출을 나갔다. 휴식이 충분히 보장되는 생활이었다. 하지만 이건 훈련이 없을 때에 한했다. 훈련이 시작되면 지옥으로 변했다. 부대 정문에 내건 슬로건이 '훈련은 무자비하게'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가령 폭우속에서도 고층 통나무 사다리 타기를 시켜 정상에서 몸을 틀다가 떨어지는 사고가 여러 건이었다. 팔다리가 부러지면 원주통합병원으로 가서 4주 정도 있다가 왔다. 두 번째 부상(골절상)을 당하면 타부대로 전출됐다. 고향 친구이자 부대 창설 동기였던 상열이도 부상을 두 번 당해 타 부대로 전출됐다. 동기 6명 중 부대 정문을 통해 전역한 사람은 나와 조성욱 두 명뿐이다. 아무튼 군대 얘기하면 모든 이에게 통용되는 '자신만이 최고로 힘든 생활'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므로 이만 끝내기로 하고, 오늘 말하고자 하는 목봉체조에 관해 논하기로 한다.

 

목봉은 폐기한 목재 전신주를 새끼줄로 둘둘 감은 것을 말한다. 삼청교육대가 없어지면서 전부 우리가 물려받았다. 목봉체조란 바로 무거운 목봉을 통해 이루어지는 체조다. 말이 체조일뿐 고통이 뼈를 쑤셨다. 한 조 6-7명, 많게는 10명이 전주를 들고 '가슴안아', '어깨메어', '머리올려'를 수업이 반복했다. 동작 느리다고 목봉에 말타듯 올라 지휘하는 교관도 있었다. 앞서 말한대로 목봉체조는 원래 삼청교육대 훈련용으로 고안된 걸 군인들에게 접목시킨 것이다. 단결심과 전우애 다지는데 최고라나. 

 

목봉은 중대별로 구비되어 있었다. 목봉은 얼차려에도 동원되었다. 조 별로 한 개씩 메고 아까 말한 동작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얼차려땐 몇 가지 항목이 추가되었다. 목봉 메고 '앉아일어서'는 보통이고, 목봉 안고 '앞으로취침', '뒤로취침'도 시켰다. 그뿐인가? 목봉 메고 연병장 축구골대 돌아오기 선착순도 있었다. 연병장을 뛸 때면 통증이 어깨를 따라 척추로 파고들었다. 재수없이 선두 주자가 넘어지면 끝장이었다. 전우들은 부상 당하는 것보다 차라리 맞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부대 앞산 중턱 바위 돌아오기 선착순 시키는 대대장도 있었다. 그는 몽둥이 들고 맨몸으로 뛰어오며 부하들을 독려(?)했다. 목봉군단이 휩쓴 지형은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산을 내려올 땐 미끄러져 내리는 목봉 따라 구르느라 저마다 난리가 아니었다. 잘못하면 뒤에서 덮치는 목봉에 압사 당할 형국이었다. 이런 식의 난황을 거친 군인들은 더욱 강해졌지만 부상 같은 부작용 또한 컸다. 

 

훗날 목봉은 군사정권의 산물이라 하여 완전 폐기된 걸로 안다. 지금 와서 생각해도 단결심이나 전우애와는 거리가 멀었다. 문득, 목봉 메고 '어머니 은혜'를 부르던 가슴 아픈 추억들이 떠오른다.

 

 

 

 

 

2004년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3리 연화동 전적비*를 참배하는 필자

 

 

 

 

* 연화동 전적비는 1996년 강릉 잠수함 무장공비들을 소탕하다 순직한 703특공대원들을 비롯한 각급 장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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