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향은 남향만 빼곤 온통 산이다. 산이 삼면을 둘러친 기슭에 마을이 있다. 군대용어로 '와지선'에 깃든 셈이다. 길이 끝나는 극지로, 버스가 '빠꾸'해서 오던 길로 나가도록 되어 있다. 막차만 다녀가면 온 고을이 깊은 정적에 잠긴다. 거마 통행도 버스 다니는 한길이 유일하다. 그래 어떤 도둑놈의 새끼가 용달차를 몰고 와 이집 저집 창고 고추자루를 훔쳐갈 적에도 청년들이 초입 방공호를 지키고 있다가 잡을 수 있었다. 현장에서 피해품 회수 후 귀싸대기 몇 번 붙인 뒤 보냈다 한다.
송방이나 주막도 없다. 가끔 부뚜막 물독을 채우다가 물통을 놓쳐 우량 통성냥을 적시면 밤길 십리를 걸어 성냥을 사 와야 밥을 지을 수 있었다. 아랫집에서 빌리면 됐지만 <閨中七友>에 언급되는 것들이나 성냥 같은 건 빌리러 다니는 게 아니라고 했다. 우리 충청도 부여에선 '비사표 우량 성냥'이라고, 논산에 공장을 둔 제품을 즐겨 썼는데, 뚜껑에 날개 돋힌 숫사자가 갈기를 날리며 도약하는 그림이었다. 그거 하나로 겨우내 썼다. 썰매 타러 갈 때 성냥개비 낱개랑 유황 귀퉁이를 뜯어 혼나기도 했지만...
나는 약관에 이를 때까지 네 번의 큰 충격을 받았는데, 그 때 뇌에 데미지를 입었는지 성질이 좀 다혈질적이다. 가령 감정이 돋으면 그 감정을 제어하는 뇌의 다른 기능이 약간 떨어지는 상태에 있지 않나 추정이 되는 바이다. 세 번이나 높은 나무에서 떨어졌는데 세 번째 추락 땐 노송 가지에 앉아 구르다가 가지가 부러져 후두부부터 지면과 충돌하는 바람에 삼십분 쯤 기절해 있었다. 친구들 도움으로 간신히 집으로 오긴 했으나 며칠동안 골이 울려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 네 번째 충격도 컸다. 부모님 몰래 권투한다고 읍내 체육관에 갔다가 관장이 경험이 있느냐 물어 뒷산에 샌드백 걸고 일 년 가량 쳤다 한 게 전부인데 글로브 끼워 스파링을 시키는 통에 5분 가량 그야말로 샌드백처럼 맞았다. 그때도 사흘 가량 고생했다. 어찌나 골이 울리는지 버스 계단도 오르내리기 힘들었다. 위와 같은 연유로 뇌에 충격을 받아 성격이 급하고 말이 빨라진 것 같다. 말이 빠른 상태에서 화가 나면 혀를 더듬는다. 마음이 앞서니 자연 헤매는 것이다. 이런 건 치유 안될까? 한때는 버스 유리창 혹은 <선데이서울> 귀퉁이에 스피치 노이로제 어쩌고 하며 치료해준다는 문구도 있더니 요샌 통 안 보인다.
그래도 날 사랑해준 소녀들이 있었다. 손 잡은 애들도 열 명은 되는 것 같고, 극장에 앉아 영화감상까지 했던 소녀들도 너 댓 된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특수부대까지 면회 와 원통의 밥집에서 선지국에 소주를 사준 아이도 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누구 하나 밉지가 않다. 다들 예쁘고 착했다. 인연이라는 게 정 따로 몸 따로여서 아무리 애뜻해도 결혼까진 보장받을 수 없는 것 같다. 애초부터 그런 걸 염두에 두지 않았던 탓일까? 그 중 한 '소녀'는 대전으로 시집 갔는데 책을 엄청나게 읽었다. 작년 12월 중순에도 전화했더니 연초 정했던 책 100권 읽기 목표를 달성했노라 해서 깜짝 놀랐다. 연중 책 100권을 읽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참고로 그녀 남편이 대전 유명서적 도매상 이사다. 신간서적을 자주 가져온다고... 훗날 고향에 집 지으면 문학서적 1천권을 기증받기로 했다.
대전의 그녀 얘길 왜 하느냐 하면 그녀만큼은 변함이 없어서다. 나 역시 별 다른 흔들림이 없다. 그래 배우자는 달라도 마음은 여전히 첫사랑 시절의 애뜻함을 잃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알아서인지 내 성격을 잘 이해해준다. 통화 중 내가 이상한 동창을 들먹이며 '그 새끼는 술 취하면 꼭 미친놈 같아'라고 해도 딱히 반감을 갖지 않는다. 그녀가 말하는 내 성격은 '열정적이며 소신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 말을 잘 새기면 집착력이 강하다는 뜻도 될까? 편집광적인 면도 없지 않으리라. 비타협적이라는 소리도 들을지 모른다. 아군과 적병이 쌍벽을 이룰 수도 있다. 과거 문교부 시절 교과서에서 '많은 사람과 깊게 사귀는' 게 이상적이라 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다.
문학적 측면으로 얘기하면, 가령 '한국 시인 김소월' 시집도 읽고 나면 겨우 한 두 편만 머리 속에 남는다고 한다. 어느 시집이든 독자에게 한 두 편의 작품으로라도 각별히 기억될 수 있다면 그 시집은 성공한 거다. 그마저도 안되는 시집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꾸준히 애뜻한 존재로 인식될 수 있다면 그의 삶도 헛되진 않으리라 믿는다. 그리하여 세상의 참된 인연이 무엇인가를 새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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