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초,
정확히 말해 4월 4일 밤, 고향집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 우리 밤나무밭 가운데 있는 묘 임자가 인부들을 데리고 와 묘를 수리하는데 묘역을 넓히면서 아무 말없이 밤나무 40그루 가량을 도벌(盜伐)했다는 말씀이셨다.
"그래요?"
밤에 고향집에 내려가 자고 아침에 가 보니 밤나무 산을 굴삭기로 까뭉개어 일대가 훤하다. 인부들한테 주인을 물으니 자신들은 일만 할 뿐 누가 묘 주인인지 모른다는 대답이다.
"그런 식으로 말씀 마시고, 제가 부여 나가 일을 보고 오는 동안 대표자를 한 분 정해 놓으세요."
부여 나가 어머니 일을 봐 드리고 인근 나물전에 계시는 큰어머니까지 모시고 은산으로 향했다. 면사무소 부면장님더러 묘역 확장공사에 대한 신고가 있었는지 물으니 금시초문이라며 펄쩍 뛰신다. 계제에 농협 직판장 들러 홍삼 드링크제 두 박스를 사다가 책상 옆에 놓고 나왔다. 곧 마을 초입에 도착하니 이미 부면장님이 면직원 몇과 현장에 나와 이것저것 조사를 하고 계셨다. 우리 동네 신임 이장 협우 형님도 있었다. 언덕을 올라 현장에서 몇과 악수를 나누고 밤나무 벌목에 대한 책임 문제를 따졌다.
묘 주인이라 말하는 남자는 40세 전후로 예의가 밝았다. 의외였다. 나는 공들여 지은 밤나무를 주인 허락없이 베어낸 만큼 어머니가 서운해하시지 않을 정도의 보상을 하라고 했다. 그러던 중 사위라는 놈이 50대 중반의 면상떼기로 어머니를 향해 '당신' 어쩌고 소리를 쳐 이쪽에 있던 내가 '저건 어떤 씨발놈이야?'하면서 팔뚝을 걷자 그 집 여자들이 '우~' 달려들어 나를 한쪽으로 밀었다.
"아저씨, 왜 이러세요? 좋게 잘 말씀하시다가 왜 이러세요?"
하소연하는 표정들이 역력했다. 하긴 식목일이자 한식날이었으니 서로 좋은 게 좋을 것이었다.
"나도 원만히 하려는 겁니다. 젋은 사람이 우리 어머니더러 소릴 지르니 그러죠."
여자들은 다시 아까 그 놈에게 달려가 서둘러 봉합하는 눈치였고, 그때 처음의 40대 전후 남자가 봉투지를 내놓으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30만원 담았습니다. 이것 받으시고 할머니 좀 진정시켜주세요."
"10만원만 더 담으세요."
"음..."
그렇게 하여 40만원 짜리 봉투를 받아 어머니께 드리고 일을 매듭지을 수 있었다. 나는 저쪽서 조사중인 부면장님께 다가가 현장을 수습하겠노라 하고 분위기를 정리해나갔다.
"그럼 이만 가도 되는 거유?"
부면장님 일행은 언덕을 내려가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덩달아 이장 형님도 없어지고...
나는 묘 주인이 건네는 맥주와 떡을 먹고 마저 화해를 한 후 경사지를 내려왔다. 일이 잘되어 마음이 편했다. 어머니는 아버지 돌아가신 후 사람들이 늙은이를 무시한 처사라 하셨지만 모든 게 순리대로 처리되자 달리 말씀이 없었다. 나는 그날 오후 고향집을 출발해 인천으로 향했다.
4월 10일,
어머니께서 다시 전화를 하셨다. 신대리 오토바이 대리점 주인이 와서 아버지 오토바이를 가져가면서 15만원을 내놓더라는 것이다. 순간, 15만원 소리에 화딱질이 나며 '15만원 밖에 안 주더라구요?'했다.
"오토바이 주인, 그 사람, 그러니께 성남 네 둘째 외숙모 오빠되는 사람이 15만원이면 잘 쳐주는 거라면서 내놓고 가져갔다"
어머니는 아무 것도 모르는 눈치셨다.
"알았습니다."
어머니를 통해 들은 신대리 오토바이 대리점으로 전화를 걸었다. 일단 신상을 소개하고 대뜸 오토바이 가격에 대해 따졌다. 깨끗이 닦아 되팔면 최하 80만원도 가능하다 싶었던 오토바이다. 내가 따지자 저쪽 목소리도 액센트를 바꿨다.
"15만원이면 잘 쳐 드린 겁니다. 요즘 누가 그런 오토바이를 삽니까? 저나 하니께 사 드린 겁니다."
"뭐라구요? 제가 갖다가 인터넷에 올려도 40-50만원은 받습니다. 그 오토바이 CT-100 아닌가요? 무사고이고 운행 킬로수도 짧구요. 고장난 부품 하나 없습니다."
그러자 금세 또 말투가 꺾였다.
"기다리세요. 제가 내려갈 일이 있으니 오늘이나 내일 찾아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일정대로 당일 밤, 고향에 도착하여 오토바이 대리점을 찾아가니 이미 불을 끈 상태였다. 고향집에 들어가 자고 이튿날 오전에 재차 들렀다. 전화 통화에서 느낀 것과는 달리 주인은 노인이었다. 50대 중반쯤으로 생각했었는데 뜻밖이었다.
"오토바이 문제로 전화드린 사람입니다."
말이 끝나자 남자의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시선이 꼬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 무슨 말투가 그렇습니까? 내가 돌아가신 어른과는 사돈되는 사람입니다. 얼마나 덕인이셨는데... 내 여동생이 무범이 처남 배우자입니다. 듣자하니 직업이 OO이라면서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입도 반사적으로 열렸다.
"외숙모 오빠이시면 처음부터 경우를 지키셨어야죠. 멀쩡한 오토바이를 15만원에 가져가놓고 무슨 말이 많습니까? 제가 이곳에 업무 보러 왔습니까? 어디까지 아버지 오토바이 문제를 해결하러 온 것입니다."
"오토바이는 15만원 이상 못 드려유."
"그려요? 그럼 15만원 드릴테니 다시 내놓으세요."
"어제 가져오자마자 면사무소에다 번호판 반납하고 화산 사는 사람에게 되팔았습니다."
"그 사람한테 전화하세요. 가지러 가겠습니다."
"......"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지는 꼴이었다.
"당신 외삼촌이란 사람이 작년에 술 먹고 와서 날 때린 거... 그거 땜에 아직도 서운한데... 어머니께선 사돈지간임에도 전화로 내 여동생이 나쁜 년이고, 동생년이 사주혀서 발생한 일이라 하시니... 서운해도 한참 서운합니다. 내 나이가 금년 칠십이 넘었어요."
"무범이 외삼촌이 아저씨를 두들겨 팼는지 아저씨한테 두들겨 맞았는지 제가 그걸 어찌 압니까? 전 오직 아버지 오토바이 때문에 왔다니까요."
"그래, 어떻게 해드리면 될까요?"
"경우에 맞게만 해주세요."
오토바이집 주인은 지갑을 꺼내 보란듯이 쫘악 벌리면서 푸른 지폐들을 모두 꺼내 세었다. 5만원이었다. 그는 내실쪽을 향해 누굴 부르더니 봉투지 한 장을 받아 그 돈을 가지런히 넣었다.
"현재 제 전재산입니다. 노인네가 15만원이 서운하셨던 모양인데 이 돈이라도 갖다 드리세요. 제가 미안합니다."
봉투를 받으며 마무리했다.
"어머니가 서운하신 게 아니라 제가 서운했습니다. 멀쩡한 오토바이를 달랑 15만원 주신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이 정도로 됐습니다. 돈을 따지기 전에 아저씨의 진심을 알았으니 돌아가서 어머니께 잘 말씀드리지요."
나는 그 돈을 어머니께 드렸다. 그러면서 그만 서운한 감정을 씻으시라 말씀드렸다. 사실 어머니는 내가 격앙된 어조를 띠는 바람에 오토바이 시세를 아셨을 뿐이다.
4월 11일 오후,
아랫집 동호 아버님을 찾아 뵙고 인사드렸다. 수 년 전부터 치매 등으로 고생하시는 중이다. 지석이더러 두유(荳乳) 한 박스 사 오라 심부름 시켜 24,000원 짜리 대형 세트로 갖다 드렸다. 어르신은 안방에 모로 누우신 채 손님이 누군지도 모르시고 대신 동호 어머니께서 따뜻이 맞아 주셨다.
당일 낮엔 은산 다녀오다가 지용이네 텃밭에서 일하시는 지용이 어머니를 뵈었는데 차에서 내려 인사드리는 날 보시다가 지팡이를 놓쳐 주저앉으셔서 댁까지 부축해 모셔다 드렸다. 어지럼증이 심해 지팡이 없인 한 발짝도 힘들다는 말씀이셨다.
이번에 새로 들은 이야기! 친구 형수가 바람을 피워 형님한테 귀싸대기 얻어맞고 고막이 터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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